만화가 하림 선생의 여행기를 직접 그린 삽화와 함께 연재한다. 하림 선생은 지난 4월에 12박13일의 일정으로 터키의 이스탄불과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이집트, 그리스의 아테네 등지를 둘러봤다. 하림 선생은 1980년대 초 한국만화가협회장을 지낸 한국 만화계의 원로로 부산일보와 스포츠서울에 1년 이상 기행만화를 연재하기도 했다. 1985년 도미해 현재는 버지니아 주의 고도(古都) 윌리엄스버그에 거주하고 있다.
제임스 본드의 첩보 무대로
4월9일 오후 1시쯤에 터키의 이스탄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터키는 한반도의 약 3.5배 크기에 인구는 약 6,800만 명쯤 되는 큰 나라다. 수도는 앙카라이지만 역사적 유적이 많이 모여 있고 상업경제의 중심지이기도 하며 많은 관광객이 매일 들끓는 이스탄불이 훨씬 더 많이 알려진 인기 있는 도시다.
터키의 97%되는 땅이 동쪽에 있고 보스포러스라는 운하처럼 좁은 바다는 사이에 두고 3%밖에 안 되는 땅에 이스탄불이 있다. 그 이스탄불 쪽을 유럽이라 하고 동쪽의 큰 땅을 아세아라고 칭하니 터키는 서양과 동양(유럽과 아세아)를 다 공유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온 세상에 잘 알려진 나라인 것만은 사실이다.
오래전에 007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주인공 제임스 본드가 소련 KGB를 상대로 박진감 넘치는 첩보전을 전개했던 무대와 배경이 바로 이스탄불이었다. 그때부터 관심이 많았던 그 이스탄불을 내가 실제로 밟고 섰으니 감개가 무량할 수밖엔 없었다.
길 양쪽에는 터키의 국화인 튤립 꽃이 만발해 있었다. 버스가 달리는 오른쪽은 넓고 푸른 바다가 있고 왼쪽 켠에는 그 옛날엔 제법 제몫을 했을 낡은 성벽이 계속 이어져 있었다. 약간 경사진 길을 올라가는데 길이 너무 좁으니깐 다른 버스보다 1미터가 더 길고 크다며 자기 버스자랑을 했던 멋진 콧수염의 운전기사는 커브 길을 돌때마다 단번에 시원스럽게 돌지 못하고 일단 핸들을 돌렸다가 약간 뒷걸음을 한 후에 다시 전진해야만 하는 번거로운 수고를 더 해야만 했다. 그 좁고 불편한 길을 넓힐 수 없는 이유는 오랜 세월동안 보존돼온 유적들이 좌우에 즐비해 도로확장을 위해 어느 것 하나도 없애든가 건드릴 수도 없는 딱한 사정이 있었다.
신성한 지혜의 소피아 성당
그 좁은 길을 간신히 올라가니깐 아주 넓은 곳이 나타나는데 그곳이 바로 유명한 슐탄 아흐멧 광장이다. 그곳에 큰 성 소피아 성당 건물이 있는데 그 맞은편엔 훨씬 더 큰 슐탄 아흐멧 사원(일명 블루 모스크)이 웅장한 모습으로 위세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 또 뾰족탑, 기념탑 등도 우뚝 서 있고 대리석 등으로 잘 만들어진 조각품들도 산재해 있으며 한가운데쯤에는 화려한 분수대가 있고 기념품 파는 상점들과 지붕이 없는 대형식당도 있다.
성 소피아 성당의 소피아(Sophia)는 지혜란 뜻으로 ‘신성한 지혜의 성당’이라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 장장 91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교회의 역할을 했는데 나중에 481년 동안은 사원의 역할로 변모됐다가 1953년부터는 역사박물관으로 명맥을 유지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고 한다.
내부의 화려한 벽화와 그림, 디자인들을 햇빛이 알맞게 받아들여서 속이 훤히 밝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창문들은 대단히 지혜롭게 건축됐으니 보는 이들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의 상은 아득한 옛날의 천연 색감으로 된 모자이크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그대로 오늘날까지도 찬란하게 보존돼 있으니 건축미술의 신비스러움과 황홀함에 나를 도취되도록 하였다. 또 예수님을 향한 나의 영적인 감화와 감동이 솟구쳐서 가슴이 뭉클해지니 한참동안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세계 최대의 아흐멧 사원
성 소피아 성당의 양쪽 맞은편에는 전 세계의 이슬람 사원 중에 제일 크다고 자랑할 수 있는 슐탄 아흐멧 사원(Blue Mosque)이 있는데 성 소피아 교회에 대한 이슬람 세력의 우위를 상징하기 위해 더 크게 더 웅장하게 지어졌단다. 터키에서는 모든 종교가 자유라고 하는데 이슬람교가 90% 이상 차지했고 그 파워는 엄청나게 크고 막강하다. 이슬람식 기도를 하루에 다섯 번하도록 매번 알려주는 우렁찬 목소리가 여기저기에 설치된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 귀가 따갑도록 들려왔지만 성당의 종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슐탄의 아흐멧 사원 내부를 구경하기 위해 들어갈 때 나는 다리가 너무 아파서 분수대 옆에서 쉴 테니 여러분은 다녀오시라고 가이드와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1978년경 중동에 있는 어떤 회교국의 이슬람 사원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 본적도 있지만 블루 모스크 등 많은 이슬람 사원의 그림이나 사진들을 통해서 내부 분위기를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이슬람 사원은 기둥이나 벽 등 모든 것에 청색(또는 녹색) 나뭇잎의 작은 무늬가 그려져 있고 문틀, 문살 등의 조각들도 대개 닮은꼴이고 비슷한 색상으로 꼼꼼하고 가득 차 있다. 작은 기둥이든 큰 기둥이든 막론하고 아주 작은 나뭇잎 그림 무늬들로 무조건 빽빽하게 가득 채워져 있으니 그것을 그리고 만든 사람들의 수고와 정성은 칭찬받을 수 있겠으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여유롭지 못하고 넉넉함을 느낄 수 없다. 그 넓고 큰 건물의 체통이 답답하고 좀 옹졸하고 따분해 보이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영화 ‘벤허’의 전차 경기장
슐탄 아흐멧 광장의 한쪽 켠에는 트리포드 기둥, 데우도시우스 뽀족탑, 콘스탄티누스 기둥, 잘 장식된 건물 속에 있는 독일 분수 등 많은 역사를 간직한 기둥과 탑이 우뚝 서 있는데 그 중에서 관심이 높았던 것은 이집트의 파라오 왕을 기리기 위해 옮겨왔다는 이스탄불에서 가장 오래된, 기원전 150년 데오도시우스 탑이다. 아직도 선명한 이집트 상형문자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는데 꼭 그 글씨 내용은 알고 싶지 않았지만 그냥 보기엔 좋았다.
그런데 더욱 관심이 쏠린 것은 그 자리가 옛날 전차 경주장이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로마황제 세비루스에 의해 힘 장사나 검사들이 싸워서 직접 죽느냐, 사느냐를 놓고 잔인한 싸움을 했던 검투장이 세워졌었는데 비잔틴 황제인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검투경기는 없어지고 말이 이끄는 전차 경주장으로 바뀌고 10만 관중을 수용하는 경기장으로 만들어졌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곳이 바로 할리우드의 불후의 명작 ‘벤허’라는 영화 속에서 찰턴 헤스턴이 전차를 타고 질주할 때 많은 관중의 환호소리와 열광했던 바로 그 자리라니 감격스럽기만 하다. 그곳은 또한 왕위 계승을 놓고 벌어진 수많은 전쟁무대로 이용되기도 했었고 성 소피아 성당 건물의 일부가 그곳에서 터진 관중들의 폭동으로 불탔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로마시를 불태우고 시를 읊었다는 네로 황제도 그 전차 경주에 출전했다는 뜻밖의 애기를 듣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했다.
어쨌거나 많은 전설과 숨겨졌던 흥미진진한 역사의 뒷얘기를 간직한 곳이 이스탄불이다. 호텔에서 터키의 첫날밤을 묵게 됐는데 터키국기에 표시된 손톱 달과 별이 혹시 밤하늘에 보이지 않을까 창밖을 살피려다가 너무 졸려 포기하고 꿈나라로 직행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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