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폴레옹이 대포 발사 스핑크스 코 납작하게 해”
세계 최대의 건조물 피라미드
4월14일. 이집트 수에즈 운하의 지중해 쪽에 있는 포트사이드 항에 크리스털 호가 닻을 내렸다. 우리 버스에 미스 정이라는 아가씨 가이드가 탔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데 15시간이 걸리지만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게 되면 60일 걸린다.” “이집트의 기름 값은 싸지만 중고차 값마저도 너무 비싸서 자가용 탈 엄두도 못 낸다.” “수에즈 운하 개통식에 베르디가 가극 아이다 중의 개선 행진곡을 기념으로 작곡했다” “2차 대전 때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을 가졌던 독일의 롬멜 장군과 영국의 몽고메리 장군과의 사막에서의 탱크 전투 격전지가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 등 지식과 상식과 종교적으로도 풍부한 머리를 갖고 있는 가이드 미스 정은 쉬지 않고 포트 사이트에서 카이로 쪽으로 달리는 버스에서 너무 설명을 잘 하니깐 마음에 쏙 들었다.
녹색과 논밭도 가끔 보이는 푸른 길을 약 2시간 달리다가 나일강을 건너니깐 서쪽에 피라미드의 꼭대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이 만든 세계 최초, 세계 최대의 건조물인 피라미드는 이집트 전국에 94개가 있다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쿠프 왕의 피라미드다, 235만2천개에서 268만개쯤 되는 2.5톤 내지 10톤 무게의 화강암으로 쌓아올린 피라미드가 눈앞에 보이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루 10여만 명이 총 20년 동안 연인원 2억 내지 3억 명이 동원되었다고 하니 수학적 머리가 둔한 나는 그저 놀랠 뿐이다.
이집트인들은 옛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해 뜨는 나일강 동쪽을 삶의 곳, 해지는 서쪽을 죽음의 곳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왕의 무덤인 피라미드도 나일강 서쪽에 있으며 현대의 공동묘지도 모두 나일강 서쪽에 있다고 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재봉틀로 바느질 할 때 그 재봉틀 싱거 미싱 상표에 스핑크스 그림이 금박으로 찍혀 있는 걸 보고 스핑크스에도 관심이 많았었다.
인간의 얼굴에 몸은 사나운 짐승으로 된 스핑크스는 아라비아 어로 아부루푸루(공포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왕릉을 지키는 충성된 묘지기로 오랜 세월을 지내왔다. 신이 인간을 흙으로 빚어 만들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어서 생명이 있게 했다는 신화 때문인지 나폴레옹 침략군 등은 스핑크스의 코를 대포로 쏴서 스핑크스의 기를 꺾었다는 해석을 듣고 오랫동안 스핑크스의 코가 납작하고 보기 싫게 생겼다고 했던 의문이 풀렸다.
한때 국력이 막강하고 잘 살았던 이집트도 세월이 흐르고 힘이 약해지니깐 스핑크스의 코도 납작해지고 피라미드에 덮였던 화강암 17만개를 터키와 아랍 침략자들이 벗겨가고 피라미드의 꼭대기에만 조금 남아있게 해도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다.
낙타 탔다 죽을 뻔
피라미드의 주변에는 낙타가 많고 당나귀도 있다. 관광객 상대로 한번 타고 사진만 찍는데 1달러이고 타고 일어서서 사진만 찍는 데는 2달러, 낙타 타고 한 바퀴 도는데 20달러라고 한다. 동물원에서 낙타를 본 적이 있지만 가까이에서 낙타를 보는 건 처음인데 동물원서 멀리 있는 낙타를 봤을 때는 항상 껌을 씹듯이 되새김질 하면서 조용하니깐 착해 보이고 낭만적으로 보였다. 근데 가까이서 보니깐 이빨 한 개도 징그럽게 크고 침까지 질질 흘리면서 커다란 눈으로 노려보니 겁이 좀 났지만 주인이 고삐를 잡고 옆에 있으니깐 한번 타보기로 했다. 그냥 타고 일어서서 사진만 찍기로 하고 집사람은 뒤에 나는 앞에 탔다. 주인이 일어서라고 고함지르자 길다란 목을 앞쪽으로 길게 내밀면서 앞다리는 무릎을 꿇은 상태인데 뒷다리부터 먼저 일어서니 앞의 나는 작은 손잡이 하나만을 두 손으로 꼭 붙들고 앞쪽이 절벽처럼 돼서 곤두박질칠 것 같아서 비명을 지를 뻔했다.
간신히 일어섰을 때 딸이 재빠르게 사진을 찍기가 무섭게 빨리 내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낙타가 심술을 부리는지 앞발부터 먼저 무릎을 꿇고 내 키보다 높은 뒷다리는 나중에 앉으니 또 한 번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 칠 정도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가 무사히 살아난 것을 감사해서 1달러를 더 얹어 3달러를 주고 앞으로는 낙타라는 짐승 곁에는 절대로 안 갈 것을 굳게 맹세했다.
1달러 손 내미는 장교의 슬픔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고대로부터 여러 가지 인연으로 얽힌 나라인 것 같다. 이스라엘의 요셉은 일 잘하고 신망이 두텁더니 이집트의 총리 자리에 까지 오르고 왕이 요셉을 믿고 옥새까지 맡길 정도였으니 대단한 일이다.
모세가 노예생활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간 얘기는 성경 속의 출애굽기에 기록된 대단한 사건으로 지금도 이집트에서 제일 오래된 모세를 기념하는 교회가 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왕이 많은 책을 다 읽고 읽을 책이 없어서 무슨 책이든 가져오라고 명령했더니 성경책을 가져갔단다. 77명이 번역한 것을 읽어본 왕은 재미있고 너무 좋아서 하나님 믿는 종교를 인정하고 10만 명이 넘는 노예를 석방하고 나일강변 땅에서 농사를 짓게 했단다.
요셉과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성 가족은 헤롯왕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 가서 머물렀던 성스러운 장소에 아기 예수 기념교회가 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교회 정원에서 차례를 기다릴 때 1달러만 달라고 구걸하는 사람도 많았고 볼펜을 달라는 아낙네도 있었다. 우리네는 쓰다가도 버릴 수도 있는 볼펜이 그들에게는 돈이 되는 모양이다.
기관단총을 든 군인도 많았는데 그늘 밑에 앉아있는 의젓한 군인이 있어 옆에 가앉았더니 자기는 책임 장교라 한다. 그래서 집사람한테 기념사진 한 장 찍으라고 카메라를 주고 그 의젓한 장교와 사진을 찍었는데 나지막한 목소리로 1달러만 달라고 하니 한심스럽게 보였으나 상 밑으로 내민 손이 불쌍해서 줘버렸다.
무희와의 선상 춤을
이집트에서 잊지 못할 추억은 나일강 선상 레스토랑에서 식사 후 흥겨운 음악 가락에 맞춰 몸을 비비 꼬면서 배꼽춤 추는 반나체의 무희가 하필이면 나한테도 오기에 나도 그녀를 맞아 흔드는 게 예의인 줄 알고 둔탁한 내 몸을 잠깐 흔들었던 주책스러운 일은 두고두고 추억 속에 남을 것 같다.
아침에 포트사이드 항에 우리를 내려놨던 크리스털 호는 우리가 이집트를 관광하는 동안에 서쪽으로 이동해 알렉산드리아 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이에 있는 정유공장의 수만 개의 전등불과 부두의 불빛이 함께 어울려서 대낮처럼 밝게 비치는 속에 우리를 배에 올랐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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