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2천년전 고난의 길-예수님 탄생과 죽음의 도시 예루살렘에서
경건함이 사라진 베들레헴의 마구간
4월11일. 파도가 높고 배가 흔들리지만 머나먼 낯선 곳의 바다 위에서 처음 갖는 감격적이고 은혜스런 선상주일 예배로 축복 충만하게 받으니 너무 흐뭇했다. 그런데 쿠사다스에 상륙해서 에베소 교회와 누가의 묘, 사도 요한의 기념교회 등을 돌아볼 예정인데 파도가 거칠고 풍랑이 심해서 우리 크리스탈 호가 그곳에 정박할 수 없어 미코노스 섬으로 간다니깐 실망스러웠다.
“그곳까지 가서 에베소에 못 가다니 사도 바울께서도 그 거센 파도를 이기고 에베소로 가셨으니 꼭 가도록 해요!”라는 메시지도 한국에서 날아왔지만 결국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미코노스 섬에 잠시 내려갔다가 선실로 돌아와서 창문으로 보이는 그 섬의 북쪽 선착장 풍경을 시간이 있어 스케치해봤다.
4월12일. 거리가 먼 이스라엘을 향해서 크리스탈 호는 밤낮을 쉬지 않고 남쪽으로 항해했다. 13일 아침 7시경 우리는 이스라엘의 아스돗 항에 도착하고 버스로 예수님이 탄생하신 베들레헴으로 갔다. 그곳은 이스라엘 왕 다윗의 고향이기도 하며 해발 777미터 높이에 있는 오르막길도 많은 오래된 도시인데 나는 다리가 아프니깐 일행들의 뒷켠에 쳐져서 거우 따라가다가 예수님이 탄생하신 귀한 장소에 가서는 남들의 뒤에서 발돋움하고 마구간의 성모 마리아에게 안긴 아기 예수의 모습을 봤는데 그 순간, 문득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크리스마스 때 많이 불렀던 성탄절 노래가 생각났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는 거룩하고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였는데 2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시골장마당의 한복판처럼 떠들썩하고 조금도 엄숙함과 거룩함도 없는 천한 모습으로 보이니 슬프고 섭섭하기를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가이드
베들레헴에서는 약 10킬로미터쯤 북쪽으로 가면 예루살렘이 된다. 무장한 이스라엘 군의 검문소에서 버스가 멈추고 약 60세쯤 된 유대인 여자 가이드가 버스에 올라왔다. 어디를 가도 한국인 현지 가이드가 있지만 가는 곳마다 그 나라의 가이드도 함께 동행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대부분의 가이드들은 한국인 가이드가 안내할 때면 묵묵히 옆에 앉아 있었지만 그 유대인 여자는 한국인 가이드의 마이크를 빼앗다시피 차지해 들고 영어로 쉴 새 없이 떠드는데 심지어는 이스라엘 중학교 선생의 봉급은 얼마씩 받는다는 등의 별의별 소릴 다하다가 버스가 멈추자 내려가 버렸다. 그리고 1분도 못돼서 버스가 또 멈추고 50세쯤 된 대머리 남자 가이드가 올라왔다. 한국인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관할에서는 팔레스타인 가이드가, 이스라엘 관할에서는 유대인 가이드가 안내를 맡게 돼있다고 한다.
그 남자 가이드는 아무 말도 않고 조용히 앉아만 있다가 어느 지점에서 조용히 버스에서 내려갔다. 그리고 그 유대인 여자 가이드가 또다시 버스에 탔다.
예루살렘은 원래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간직한 곳인데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세계 3대종교의 성지가 모여 있으니 좀체 평화로운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도시의 여지저기 어디든지 빈틈없이 주택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데 그 집들의 옥상이나 지붕 위에는 커다란 물탱크가 있다. 그것은 태양 전지판으로 물을 끓여서 스팀 난방 장치를 위해 설치한 것인데 그 물탱크의 색이 검은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의 집이고, 흰색의 물탱크는 유대인들의 집이라고 하니 그것만 봐도 평화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골고다 언덕에서의 상념
성지순례의 최고 정점은 예수님이 빌라도로부터 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에서 죽으신 골고다 까지의 예루살렘 구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약 1,500미터의 길로 라틴어로 비아 돌로로사(Via Dolorasa) 라고 하는 고난의 길, 죽음의 길이 될 것이다.
그 길은 모두 14개 처소로 구별되는데 제1처 안토니아 요새로 빌라도가 예수께 유죄선거를 한 곳이다. 제2처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받고 채찍질 당한 곳, 제3처 예수님이 첫 번째 쓰러짐, 제4처 예수님이 마리아(어머니)를 만남. 제5처 키리네의 시몬이 십자가를 진 예수님을 도와줌. 제6처 예루살렘 여인이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주니 수건에 예수님의 얼굴 형상이 새겨짐. 제7처 예수님이 두 번째로 쓰러짐. 제8처 예수님이 예루살렘 여인을 위로. 제9처 예수님이 세 번째로 쓰러짐. 제10처 예수님의 옷이 벗겨짐. 제11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힘. 제12처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둠. 제13처 예수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짐. 제14처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안장됨.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고난의 길을 가신 제14처 중에서 무덤교회에는 예수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지고 향유를 발랐다는 검은 판(한국에서는 그것은 염한다고 함)에서 많은 사람들이 쓰다듬고 엎드려 통곡하는데 그대 눈물을 흘리지 않는 관광객이 없는 것 같았다.
그 고난의 길, 슬픔의 길 양쪽에는 상점들이 끊임없이 있는데 예수님의 거룩하신 발자취에 먹칠하는 것 같아서 짜증스럽고 못마땅하게 느꼈다.
통곡의 벽에서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서쪽 벽이 통곡의 벽이다. 높이 16미터에 평균 1톤이 넘는 돌을 쌓아 헤롯왕이 60여 년 동안에 걸쳐서 지은 성벽인데 추후 70년 로마에 의해 멸망당할 때 돌 하나 남기지 말고 싹 무너뜨렸다고 했는데도 지금까지 통곡의 벽 쪽만 남아 있다. 유대인들이 그곳에 와서 민족이 분산된 것을 슬퍼하고 성전이 폐허가 된 것을 애통하게 생각하면서 울었기에 통곡의 벽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인식을 할 때도 그 벽 앞에 모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소원성취를 빌기 위해 쪽지에 적어서 성벽의 바위틈에 넣고 빌고 있다.
그곳에는 주로 검은 모자에 양쪽 귓가에 곱슬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흰 와이셔츠에 검은 색의 길다란 가운을 입고 가죽 서류 가방을 꼭 들고 있는 유대인 랍비들은 그 뜨거운 햇볕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고집스럽게 그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으니 한치의 양보도 없고 고집스러워보이는 유대인들의 앞날이 왜 그런지 걱정스러워보였다.
예수님의 탄생부터 죽으심까지의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은 관광객들이 쏟는 돈으로 살면서 잘했다 못했다의 잡음 속에 살고 있지만 어쨌거나 인류의 구세주를 탄생시키고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곳임을 만인이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곳인 것만은 사실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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