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비전 긴급 구호팀장을 지냈던 한비야씨가 30일 본사를 찾았다. 작년 9월 9년간 일했던 월드비전을 물러나 보스턴 소재 터프츠 대학교(Tufts University) 국제법 및 외교학 전문 대학원에 입학했던 그는 2년 코스를 일년 만에 끝내버렸다. 한국에 가면 6개월 동안 백두대간을 종단하며 쉼을 가질 예정이란다. 험난한 산행을 대비해 근력을 키우고 있다는 그는 여전히 활기차 보였다.
워싱턴에는 이틀 밖에 머물지 못하지만 매우 중요한 일이 있다. 그는 월드비전 코리아데스크가 31일(토) 저녁 7시30분 메릴랜드주 하노버에 있는 빌립보교회(송영선 목사)에서 열리는 ‘한 생명 살리기’ 캠페인에 주 강사로 초청됐다. 이날 한씨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왜 미주 한인들이 제3세계 어린이들을 도와야 하는지 호소할 예정이다. 찬양가수로 잘 알려진 이은수 목사, 최명자 사모의 찬양과 한씨의 활동을 담은 동영상 상영, 박준서 월드비전 아시아개발담당 부회장의 메시지도 있게 된다.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존경받는 여성으로 꼽힐 만큼 유명해진 한씨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 이번 집회에서는 어떤 내용으로 메시지를 전할 계획인가?
- 내가 현장에서 겪은 경험이 주가 될 것이다. 본대로 느낀대로 말하겠다. 현재 5명의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지 알려주고 싶다. 월드비전에서 일하면서 모든 것을 본 만큼 후원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등 후원자들이 궁금해하는 부분들을 설명하는 기회도 갖겠다.
▲월드비전에 합류하기 전부터 여행을 많이 한 사람이다. 그전의 경험과 어떻게 다른가?
-똑같이 죽어가는 아이들을 봤어도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의 입장에서는 희망이 있었다. 불쌍한 아이들을 세상에 알리고 삶을 지속하도록 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관객이 아니라 현장에 주인공으로 서 있는 것은 영광이었다. 재난에 처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현장에서 보니까 그게 아니었다. 그들도 빨간 피가 나오는 사람들이다. 이번에 우리의 후원금이 그들의 운명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데도 안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인간도 아니다. 나는 굉장히 마음이 약한 사람이다. 여전사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나는 내 일이 너무 힘들고 괴롭다. 부모가 죽은 아이에게 질문을 던지고 코멘트를 따야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 왜 내가 이런 일을 하는지 답답할 때도 있었다. 한국에서 수능이 치러지는 날은 우리 집에 수험생이 없는데도 나는 하루종일 마음이 떨린다. 우리는 고통 당하는 사람과 같이 슬퍼하고 같이 즐거워해야 한다.
▲ 월드비전 가족이었던 사람으로서 이 기관을 소개한다면.
-시스템이 너무 좋은 큰 기구다. 또 그 좋은 조직을 십분 활용하는 구호기관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10년, 15년씩 개발지역(ADP)에서 봉사하며 많은 사람들을 살린다. 게다가 월드비전 직원들은 불같이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다. 거의 다 반 미친 사람들 같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명령 한마디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이다. 월드비전에 처음 들어가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있을 때 아프간 전쟁이 발발했는데 이런 말을 들으며 현장에 투입됐다. 워낙 강렬한 메시지여서 언젠가 책을 쓰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제목으로 쓰고 싶었다. 정말 특별한 에너지가 있는 사람들이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2대 월드비전 회장이 설립 40주년 연설에서 한 말이다-편집자 주). 내가 월드비전을 만난 건 은총이다. 난 천주교인이지만 아무 갈등도 없다. 보스턴에서는 천주교회와 월드비전이 함께 행사도 한다. 이왕 후원하려면 잘하는 단체에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그리고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 돈만이 아니라 기도와 정성, 마음이 종합 세트로 가야한다. 돈을 주고 나서 ‘쎄게’ 기도도 해주면 좋겠다.
▲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기로 결정한 동기는 뭔가?
-재난 현장에 오래 있었던 탓에 정책과 실제가 맞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현장을 모르고 설계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경험들이 구호 정책에 잘 반영되도록 학계와 정보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나도 인도적 지원 활동과 시스템에 대해 제대로 배웠다. 최고 수준(Top Notch)의 교수들이었다. 그들도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했다. 온세상을 함께 잘 사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놓였다. 내 경력을 살려 이런 분들과 현장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 싶다. NGO에 오래 있었으니 앞으로는 UN이나 정부 등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발전한 한국은 특히 좋은 해외 원조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세계에 좋은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 구체적인 향후 계획은 뭔가?
-대학원을 일년 일찍 끝내는 바람에 시간 여유가 생겼다. 6개월은 백두대간을 종단하며 심신을 쉴 계획이지만 등반을 할 수 없는 겨울에는 중국어를 배울 생각이다. 중국어를 한국말처럼 하고 싶다. 중국이 부상하면 과거 소련처럼 미국과 대립 관계가 될 것이라는 걱정이 많은데 꼭 그렇지는 않다. 인도적 차원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위협적인 존재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국제사회가 중국의 힘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중간에서 ‘버퍼링’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중국어를 배우는 또다른 이유는 매우 재미있기 때문이다. 재미 없으면 난 못한다.
▲ 미주 한인 청년들에게는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젊음이란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시기 아닌가? 전반전에서 1, 2골 먹었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 없다. 내가 기대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큰 꿈을 꾸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모르는 ‘메이저 리그’ 세계에 직접 가보라. 많은 경험을 해보라. 가슴 뛰는 일을 찾아야 한다. 엄마, 아빠가 정해준 꿈 말고.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많은 청년들을 만났다. 멋있는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절대 나약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커서 무슨 일을 할지 매우 궁금하다. 큰 기대를 걸고 있다(한씨는 이 말을 꼭 강조해 달라고 부탁했다).
▲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고 싶은가? 원하는 대로 제대로 가고 있는가?
-얼마 살지 않았는데 무슨 평가를... ‘제대로 가고 있느냐’는 질문을 ‘행복한가’로 바꾼다면 그렇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만족한다. 가치있고, 소중한 것이 뭔지 알게 됐다. 목숨을 버려도 되는 일이 뭔지... 모두가 행복하고, 모두가 성공하기를 원한다. 앞으로도 행복하게 잘 살 것이다. 젊은이들이 왜 날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난 백수일 뿐이다. 다만 미래를 향한 도전과 열정, 자유로움이 젊은이들에게 매력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이런 마음은 절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문의(917)284-3579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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