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우남 숭모회, 광복65주년 하와이 연말 특별행사 준비
2005년 3월16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우남 이승만 대통령 숭모회’가 하와이대학 한국학센터에서 발기인 총회를 갖고 발족했다.
그후 5년이 지난 요즘 우남 바로알기 운동이 한국과 미국의 대학가에서도 그 불씨가 지펴지고 있다.
하와이 동지회 지원금이 종자돈이 되어 설립된 인하대학교가 최근 대학설립자 이승만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을 위해 동상 철거 27년만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을 다시 세우기로 했다.
그런가 하면 이 전 대통령이 박사학위를 받은 미 뉴저지주 프린스턴대에는 ‘이승만 홀’ 설립이 추진되고 있어 하와이에서 시작된 우남 이승만 재평가 작업의 결실이 후손들에게 미칠 영향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하와이 우남 숭모회 김창원회장은 “해외독립운동 요람지 하와이, 미주한인이민 종가 하와이 한인사회가 앞장서 우남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립정신과 애국정신을 후손들에게 제대로 알리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 가시화 되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며 “오는 12월5,6일 양일간 하와이에서 광복65주년을 마감하는 뜻깊은 행사를 준비하는 등 이 같은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와이 우남 숭모회는 인하대학교 우남 동상 재건을 위해 지난 수년간 학교측과 함께노력해 왔었다. 이 같은 노력의 결실로 최근 조선일보 인터뷰를 통해 인하대 이본수 총장은 “동상이 끌어내려질 당시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이 대통령의) ‘교육자’로서의 선구자적 측면과 혜안(慧眼)을 학교 구성원들이 빨리 이해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혀 앞으로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조선일보 보도에 의하면 인하대 동창회 이응칠(62) 회장은 “이화여대나 고려대 등 다른 대학들도 설립자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동상을 세우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은 “독재자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을 세울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인하대학교내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은 1979년 2월 인하대 인경호(湖) 인근에 세워졌다가 4년 만인 1983년 10월 일부 운동권 학생들에 의해 철거됐다. 동상은 현재 학교 측에서 원형대로 복원해 보관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 동상은 하와이 동지회에서 보낸 성금 5만달러로 인경호 옆에 높이 3.4m로 세워졌었다. 당시 3m짜리 화강암 석대의 추념문에는 “하와이 이민의 한 많은 눈물을 받아 본교 창립에 크게 이바지한 초대 대통령”이라고 쓰였었다.
인하대와 이 전 대통령 인연은 19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하대 총동창회 50년사’에 따르면, 1903년 하와이에 사탕수수 재배 노동자로 떠난 100여명은 1913년 자녀교육을 위해 하와이에 한인 기숙학교를 설립했다.
이들 이민자의 90%는 인천 출신이었다. 그때 하와이 동포들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교장으로 초빙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 학교에서 교육사업을 펼치다 1918년 한인기독학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1919년 이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에 선출됐고 학교 운영에 전념하기 어려웠다. 학생들은 미국 공립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한인기독학원 학생 수는 계속 감소해 1947년 폐교됐다.
그러자 한인 동포들은 1950년 “한인기독학원 판매대금을 조국의 대학 설립기금으로 보내고 싶다”는 뜻을 이 전 대통령에게 전했다.
국책사업으로 공과대학을 설립해 기술자를 양성할 계획을 갖고 있던 이 전 대통령은 1952년 12월 피란지 부산에서 김법린 문교부 장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천에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MIT)와 같은 최고 수준의 대학을 설립하고 싶다”고. 인천은 다수 하와이 동포들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공업단지가 들어서는 등 공대 설립의 장점이 많았다. 이에 문교부는 1953년 국무총리와 각 부처 장관, 서울대·연희대(현 연세대) 총장 등 인사 47명으로 학교 설립위원회를 만들었다. 한인기독학원(9만7124㎡) 매각대금 15만달러, 정부 국고보조금 6000만환, 국내 기업인 등의 민간기부금 2774만환과 국민성금 등으로 2억5000만환(당시 약 430만~440만달러)을 마련했다. 인천시는 부지 41만3223㎡를 무상 제공했고, 1954년 드디어 ‘인하공과대학’이 개교했다. ‘인하’라는 이름도 인천(仁川)과 하와이(荷蛙伊) 앞글자에서 따왔다. 이 전 대통령은 1960년 하야(下野)할 때까지 매년 인하대 입학식과 졸업식을 찾았다.
그런가 하면 역시 조선일보 보도에 의하면 프린스턴대 한국 동문회 김종석 회장(홍익대 교수)은 12일 “광복 65주년과 이승만 대통령 박사학위 취득 100주년을 기념해 프린스턴대 교내에 건국 대통령의 흔적을 만드는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며 “다음 달부터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모금운동을 시작해 기금이 마련되면 프린스턴대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60년 성공의 역사를 연 건국대통령으로서 재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가 근대 교육을 받은 프린스턴대에는 어디에도 흔적이 없다”며 “동문회 차원에서 올해 초부터 이 운동을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1906년부터 미국에서 유학한 이승만 전 대통령은 조지워싱턴대 학사와 하버드대 석사를 거쳐, 1910년 ‘미국의 영향을 받은 중립론’이란 논문으로 프린스턴대 총장 우드로 윌슨(Wilson·미국 28대 대통령)으로부터 철학박사(국제법 전공) 학위를 받았다.
<사진설명: 하와이 한인기독교회에 세워진 우남 동상에 탄신일 축하 레이를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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