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원기 목사 “다음 세대의 제자 길러야죠”
20주년 맞은 저먼타운 소재 ‘휄로쉽교회’
MD·VA 양 캠퍼스에 2,500명 성도로 성장
메릴랜드 저먼타운에 위치한 휄로쉽교회가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교회 이름 ‘휄로쉽’은 ‘뉴 커버넌트 휄로쉽(New Covenant Fellowship)’의 약자. 김원기 목사(56)가 워싱턴 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한인 침례교회인 ‘워싱턴한인침례교회’를 담임하다 물러나 설립한 휄로쉽교회는 30대 중반의 젊은 나의 담임 목사를 포함 온 성도가 보여주는 복음에 대한 열정과 헌신 때문에 출발 당시부터 돋보였었다. 교회는 그 후 빠른 성장을 지속, 2010년 현재 출석 교인이 메릴랜드 캠퍼스가 2,000명을 훨씬 넘어서고 버지니아 캠퍼스도 지난해 200여명에 육박하는 교회가 됐다.
휄로쉽교회는 얼마 전 20년사를 발간하고 기념 성회를 열어 커뮤니티와 기쁨을 함께 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시작할 때 ‘700명의 교인 보다 70명의 제자를 키우겠다‘고 말했는데 정작 제자가 7명이 안되는 것 같다”고 20년사에서 밝히기는 했지만 ‘꿈은 지금도 살아있다‘는 20년사 제목처럼 김 목사의 목회 여정은 50대 중반인 지금 본격 궤도에 진입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뜻밖의 말들을 쏟아놓았다.
“목회자의 꿈을 내려놓고 선교 마인드를 가지십시오. 내일의 리더십을 위해 목회자는 내려 놓아야 합니다.” 기대만큼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만족스런 목회를 해왔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김 목사는 “어떤 확실한 결과를 바라보며 달려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대신 자신을 ‘ 과정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평가했다. 그가 꿈꿨던 제자도 수치적으로 어떤 목표를 달성한 사람이 아니라 복음적인 삶을 사는 사람, 즉 변화된 삶을 사는 사람을 의미한다. 자녀들이, 아내가, 직장 동료가 인정하는 삶을 살면 된다. 주님과 만났던 첫사랑을 과거의 훈장처럼 자꾸 얘기하는 사람은 곤란하다. 더 깊은 사랑으로 나가야 한다. 목회라는 것도, 교회 공동체도 그렇게 계속 서로에게 도움이 되면서, 서로를 지켜보면서 이어지는 것이다.
휄로쉽교회에는 김 목사와 30년 혹은 35년 동안 신앙생활을 함께한 신자들이 많다. 이들은 어려움과 환희를 함께 겪어 온 형제자매 들이다. 그런 면에서 자녀 세대들을 잘못 키우지는 않았다는 자부심이 있다.
한인 커뮤니티가 휄로쉽교회를 어떻게 바라본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김 목사는 “잘 모르는 사람들은 조금 ‘과격한’ 이미지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 보다는 ‘순수하게 복음 열정에 붙들린 교회’라고 봐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건강한 이민교회의 모델이 되고 싶었다. 자랑이 될만한 통계에는 관심이 없기에 20년사를 만들면서도 교회의 속사정을 그대로 공개했다. 위기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를 했는지 보여주고자 했다. ‘원칙’ 대로 하면 두려울 이유가 없다.
김 목사가 몇 년 전 출간한 목회 보고서의 타이틀이 ‘진실이 있는 목회를 하고 싶다’였다. ‘진실’은 ‘integrity’의 번역이었는데 사전적으로는 ‘성실‘ 정직’으로도 바꿀 수 있지만 꼭 맞는 느낌은 주지 못한다. ‘처음 뜻한 바를 끝까지 해내는’ ‘신뢰감을 주는’ 이라는 뜻이 더 적합하다.
물론 몇 번의 고비도 있었다. 20년 목회를 하면서 두 번 정도 도전과 변화를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타성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응답을 주지 않으셨다. 김 목사는 “휄로쉽교회를 섬기라고 부르신(calling) 하나님이 ‘이제 그만하라(uncalling)’는 확신을 주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그때 마다 다시 부임하는 심정으로 마음을 다잡았고 목회의 기쁨이 새롭게 밀려들었다.
워싱턴 지구촌교회를 담임하다 한국에 돌아가려는 이동원 목사에게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이민교회의 자존심이다”라고. 이민교회에서 자라 목회하고 있는 입장에서 이민 자녀들을 지켜주는 것은 바울이 헬라파 크리스천들을 섬겼던 마음과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민교회의 미래가 무조건 밝다고 믿는 건 아니다. 목회자들이 확신을 잃어가고 있고 강단에서 강력한 복음 메시지가 들리지 않는다. 모여서 예배드린다고 다 교회는 아닌데도 외양의 거룩함과 화려함에 미혹돼 있다. 다행히 세계를 제패한 여자축구 대표팀처럼 한인 크리스천들의 잠재력이 대단하기에 그나마 희망적이다.
김 목사는 지금도 중고등부 학생들을 제자를 키우고 있다. “담임 목사가 함께 시간을 보낼 만큼 너희는 중요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다. 그렇게 하니까 지금도 최고의 학부를 졸업하고 의사, 변호사가 되려다 선교사로 헌신하는 젊은이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들에게 지금도 영어로 설교하면 먹힌다. 20주년 선교대회 때는 성도 가운데 45명이 장기 선교사로 서약했다. 이들은 순간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고 오랫동안 기도해온 사람들이었다. 김 목사의 비전을 알고 기쁨으로 따라와 준 사람들이었다. 김 목사는 교회와 관련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절대 표결에 부치지 않는다. 다수를 얻는다 해도 소수가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동의할 때까지 기다린다. 성도들과 그런 관계 속에서 신뢰를 쌓았기 때문에 중직들과도 꾸밈없고 막힘없는 대화를 나눌 때가 많다.
16살 때 이민 와 27살에 목사가 된 후 지금까지 걸어온 목회의 길이 30년. 함께 했던 신도들 가운데 노년층에 접어들려는 2세도 없지 않을 만큼 긴 세월이다. 이들은 자식 따라서 이민 온 노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세대다. 실버 미니스트리에 대한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 있고 앞으로 김 목사는 이 분야에 주력할 계획이다.
“사실 우리 교회는 ‘위험한(dangerous)’ 교회입니다. 성도들이 내가 설교에서 또 어떤 말을 할까 두려울 때가 있다고 합니다.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비전이 툭툭 튀어나오니까 우스개로 하는 말입니다. 건전한 의미에서 ‘위험한’ 교회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휄로쉽교회가 어떻게 발전해갈 지 아무도 모릅니다. 성도들에게 꿈과 확신을 심어주면 됩니다. 우리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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