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생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을 위하여 유가족과 친지들은 고인을 기리는 추모 의식을 갖는다. 모임을 갖는 형태도 여러 가지다. 미주 한인들의 장례는 주로 기독교 의식으로 하고 참여하는 사람들은 검은 옷을 입고 고인과 유가족에게 예의를 갖춘다.
삶을 힘들게 살다간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매 순간 순간을 보람 있게 살다간 사람 등 여러 가지로 인생을 마치겠지만 참석한 사람들의 수에 따라서 고인의 사람 됨됨을 평가하기도 한다. 엄숙하게 검은 띠가 둘러져 있는 신문 부고 광고를 보면 어떻게 살다간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부고 내용은 비슷하다. 추모 예배시간, 발인 예배, 영결 예배 순서 등이다.
오래 이곳에 살면서 우리의 것과 미국의 부고를 비교하게 된다. 19세기 이전 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도 친지들에게 가족의 사망을 알릴 때 지금 우리가 하는 식이었다. 망자의 이름, 생년월일, 사망일 그리고 유족이 포함된 부고장을 보내거나 신문에 광고를 게재했다.
19세기에 접어들며 영국 런던 타임스 편집국장 존 딜레인이 신문에 정기 부고란을 신설한 것이 지금 미국 신문의 정기 부고란의 출발점이 된다. 그는 그저 간단한 장례식 안내보다는 고인의 생애 등 자세한 이야기를 싣자고 했다.
이런 특이한 발상은 광고 수입 증가 이외에 구독자도 많이 늘게 했다고 한다. 더 타임스는 상업적인 광고보다 품위있게 고인을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렇게 시작한 신문 부고는 인테넷 발전과 함께 광고 모양도 지금 까지 여러 형태로 바뀌게 된다.
역시 영국에서 시작한 광고가 되어서인지 유명한 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지도 일주일에 한번씩 부고 광고를 한 페이지 전면에 싣는다. 더 재미있는 것은 영국 의사협회에서 회원들에게 살아있는 동안 본인의 부고를 작성해 놓으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이런 전통을 받은 미국 신문도 영국에 뒤질세라 부고 광고에 신경을 쓴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의 일요판 광고는 4 페이지가 넘는다. 읽어 보면 미국 사회의 흐름을 알 수 있다. 광고 형태도 참 여러 가지다. 짧은 부고가 있는가 하면 장장 여러 칼럼에 실리는 것도 있다.
젊었을 때 사진도 실리지만 생전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낸 사진이 실리거나 군대에서 제대한 사람들은 군복 입은 사진과 함께 예전의 계급을 나타낸다. 경찰이나 소방관도 제복을 입은 사진이 실린다.
부고를 읽으면 그 사람의 한평생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출생지와 가족 상황, 유치원 이름으로 부터 최종 학교 졸업연도, 그리고 사회에 진출한 경력도 자세하다. 그 이외에 종교, 봉사 활동도 자세하게 알린다.
그런가 하면 지난주 일요판에는 마린 카운티에 살다가 작고한 사람의 부고가 큼직한 사진과 함께 광고면의 절반을 차지했다. 마치 그 사람의 자서전을 읽는 것 같았다. 평생을 보람 있게 살다간 사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여러 해 동안 주류 신문 부고란에 난 우리 동포는 몇 사람이 없다. 그중에서 인상이 남았던 것으로 크로니클지 편집국장 비서를 역임했던 쌔미 리 박사의 여동생 이야기가 기억난다. 그냥 비서가 아니었고 편집국장과 함께 언론계에 막강한 영향력이 있었던 우리 동포 이야기였다.
우리도 지금의 전형적인 부고 방식에서 벗어나 고인이 한세상을 살다 떠나는 길을 아름답게 배웅하며 그의 인생을 조명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자서전 같은 부고를 읽으며 새로운 충격과 도전에 마주 친다.
나는 가끔 마음이 울적할 때 나보다 먼저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오늘의 나를 보게 된다. 우리 동포 신문도 이런 자서전 같은 부고 칼럼 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보람이 있겠다. 아마 상업성도 있겠지만 갓 이민 온 사람들이나 그늘 진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거울도 될 것이다. 부고는 슬픈 이야기만 전하는 게 아니고 세상을 떠난 사람의 생을 알리며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길잡이도 된다.
이종혁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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