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만 달러를 투자한 사업이었다. 30년 가까운 이민 생활의 땀과 노력, 내 전 인생의 모든 것을 건 사업이었다. 그리고 결실을 앞에 둔, 연 1,500 만달러의 매출이 더욱 성장해 나의 마지막 꿈인 1억달러 이상의 대 기업도 곧 이루어지리라는 무지개의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회사는 단 한달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그전까지 숱한 어려움을 겪고 또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오뚜기처럼 재기를 했었지만 이제는 끝이라는 절망 이라는 단어 이외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일본 소설 “야망” 속에 등장했던 숱한 등장인물처럼 나의 파란만장한 인생도 여기서 끝을 내야겠다는 절망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각고의 세월 속에 다시 재기를 하였다.한국인의 이민 역사도 길어졌고 또 사람도 많아져 이런 저런 이민의 스토리도 많아졌다. 그러나 1세대나 2세대의 이야기는 많이 다뤄 졌지만 1.5세대의 스토리는 들을 기회가 별로 없는 차에 17살 때 이민 와 30년 넘게 미국 생활을 한 나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게재하자는 기자의 말에 사실 많이 망설였었다.
요즘 같은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나의 이야기가 좌절하고 희망을 잃어버린 분들이 다시 희망과 용기를 얻고 삶에 재도전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겠다. 나 또한 숱한 어려움과 좌절 그리고 변화와 역경 속에 이민 생활을 해왔지만 항시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집념과 신념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았기에 오뚜기처럼 일어날 수 있었다. 또 옛부터 나이 50이면 지천명이라 했듯 하늘의 높이와 색 그리고 뜻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나이가 되어 더 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이민 시절은 고등학교 2학년에서부터 시작되어 기름기 절절 흐르는 공장직공일부터 아파트 허드레 일을 했던 janitor 일, 대학 때의 Hotel Bell Man, Valet Parker, Bartender, 백화점 점원, 그리고도 학비가 모자라서 3개의 part time 잡을 가졌다. 대학생활 2년 후부터는 너무 많은 일에 학교 공부를 따라가지 못해 받던 장학금이 끊겨 학교를 drop하고 반년간 휴학하며 학
비를 모아야 했다.그리고 다시 대학에 등록하고, 마지막 1년 반을 야간반까지 하며 학기당 6과목씩 택해(미국대학은 과목 credit 에 따라 4 or 5 개의 과목을 학기당 택하게 되어있다.), 결국은 총 3년 반만에 내 입학 동료들과 같이 졸업한 감격에 나 홀로 눈물을 감당치 못했다. 눈물 없이는 표현하기 어려운 틴 에이저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의 어려움은, 지금 생각하면 나의 사업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어려움이었다. 20 대의 직장경험을 토대로 사업을 시작한 사회는 적자생존의 법칙이 존재하는 야생의 밀림 그 자체였었다. 강자만이 살아 남을 수 있었고 온갖 치졸한 권모술수와 또 미국이라는 특수한 다민족 문화 속에 많은 민족과의 갈등과 경쟁, 그리고 같은 한국인끼리의 더 피비린내 나는 드라마틱한 경쟁 속에, 나는 셀 수 없는 나락을 경험했었다.한때는 뉴욕 맨하탄의 전경이 보이는 Whitney Houston 의 이웃으로 Benz 500 sl 을 운전하며, 개인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는 밀리언 달러의 콘도에 살며, 또 몇 개의 유닛을 더 갖고 자칭 나도 자산이 천만이다 호기를 부렸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 밀림의 세계는 나를 또 나락으로 떨어트려 이발소 주인으로 또 델리 맨으로 하염없이 고생을 하게 했다.
그러다 항시 나의 전 인생에 걸쳐왔던 대기업 성취에 대한 욕망에 도전 하고자 음료 사업에 모든 것을 올인했다.Billion Business 를 앞에 두고, Arizona 라는 거대 회사의 포획과 횡포 속에 결국은 깨져, 모든 것을 잃고 파산을 했었다. 그러나 재기의 몸부림을 치는 내게, 피를 흘리며 재기하려고 노력하는 내등에 또 칼을 꽂았던 수많은 사람과 사건, 그래서 이제 인생의 싸움에서 졌다는 패배의식에 사무라이처럼 깨끗이 할복으로 인생을 마치고자 한 적도 있다.
지금 나는 이 글을 쓰며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한다. 그러나 나의 손을 잡고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나를 설득 시키며 내 앞에 앞장을 섰던 아내의 담담함과 용기… (나는 지금도 내 아내에게 항시 “나는 네게 인생의 빚을 졌다고 표현을 한다.” 나와 내 아내는 3남 2녀를 두고 있다) 그때의 나는 죽느냐 사느냐의 갈등과 투쟁의 연속적인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많은 실패와 반복된 실수의 연속 속에서 또 마피아 같은 범죄 조직의 공갈 협 박속에서도 나는 살아남아 이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제는 거대기업인 Arizona Tea 보다도 더 좋은 Iced Tea(Old Boston Iced Tea) 를 만들어 첫 3개월 만에 2,000개의 가게에 판매를 할 정도로 미국 idem 으로 “selling like hot cake” 이라고 표현될 정도의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 그래서 대학 때부터 인생의 좌표가 되었던 20대의 경험을 하고, 30대의 소기업, 40대의 중소기업을 이루며, 50대의 대기업을 이루겠다는 나의 마지막 꿈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즉 이 글 서두를 “coca cola 역사에 도전하며 “ 라는 title 을 정한 이유가 이런 배경이다.
10대부터 시작하고 30년이 넘은 나의 이민생활은 가히 파란만장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항시 용기와 희망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다는 것을 다시 말씀 드린다. 40~50대인 모든이들이 혹시나 인생의 어려움과 실망과 좌절이 있다면 나의 인생경험을 들으시고 토끼년 새해를 맞아 재충전 하셔 재도전하기를 같은 세대로서 조언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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