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외 TVㆍ신문 등 언론의 관심은 온통 이집트 국민들의 반정부 시위에 집중되고 있다. “도둑놈 무바라크는 물러가라”고 외치는 시위대들과 그들을 저지하는 이집트 군과 경찰을 보면서 무바라크보다 더 부패하고 악질적인 김정일 정권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북녘 땅의 내 동포들에 대한 답답한 마음과 한편으론 언젠가는 내 형제, 내 동포들이 일어나 “도둑놈 김정일, 김정은은 물러가라”고 외칠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교차한다.
무엇보다 “도둑놈 무바라크는 물러가라”고 외치는 시위대들을 보며 부러운 마음이 더 크다.
부모와 처자식도 남겨 두고 홀로 북한을 나온 지 20년, 중국에서 잡혀 강제 송환된 후 조국을 배신했다는 죄로 정치범이 되어 북한 정치범수용소 중 하나인 제 15호 관리소(함경남도 요덕)에서 들어간 지 30년이 지난 지금의 북한을 보면 그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그들은 노동당에서 내놓는 거짓과 선전에 속으며 살고 있고 혹여 조금이라도 진실을 아는 자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다.
이집트 반정부 시위대가 외치는 “도둑놈 무바라크”를 보면서 나는 무릎을 쳤다. 빈곤과 실업에 허덕이는 이집트 시민들은 지도자와 그 측근들의 사치생활에 화가 났구나! 그러나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과 그 추종 세력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알 턱이 없다. 텔레비전이라고는 조선중앙방송 하나뿐이며 주파수가 고정되어 있는 라디오만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북한이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배가 고파 죽기 살기로 중국으로 넘어가는 탈북자들을 통해 외부 정보가 흘러들어 가고 있고 TVㆍ라디오를 통해 몰래 한국 방송을 보고 듣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감히 누가 “도둑놈 김정일은 물러가라”고 외칠 수 있을까? 저 땅에 무시무시한 정치범수용소가 존재하는 한 누구도 수령 독재체제에 맞서 싸울 용기를 낼 수가 없다.
나 혼자만 수용소라는 지옥에 떨어진다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 반독재 투쟁을 벌이는 용기를 내어 보겠다. 그러나 내 부모, 내 자식, 내 손자, 손녀까지 수용소에 보내진다는 그 공포 앞에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자도 돌아서게 될 것이다.
그것이 연좌제이다. 1972년 김일성의 연설 “종파분자나 계급의 적은 그 자가 누구인지를 막론하고 그들의 종자를 3대에 걸쳐 완전히 그리고 반드시 제거하여야 한다”는 것에 따라 아직까지도 시행되고 있다. 내가 수용소에 있었을 때 아무 잘못 없이 끌려 온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장본인’이라 놀려댔었다. 수용소 안에서는 정치범은 ‘장본인’이었고 정치범의 가족들은 ‘비장본인’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차라리 나는 정치범 장본인이니 억울하지도 않지만 그 아이들은 도대체 무슨 죄가 있다고 끌려온다 말인가! 이름조차 들어 본 적 없는 친척이 반동이라는 이유로 수용소로 끌려와 평생을 꼬리 없는 짐승으로 살아야만 하는 정치범수용소가 있기 때문에, 연좌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21세기에 북한에서는 수령세습독재가 가능하다.
북한에 정치범수용소만 없어져도 북한의 민주화는 절반 성취된 셈이다. 국제사회가 북한에 정치범수용소 사찰단만이라도 보냈으면 현재 북한의 3대 세습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북한 독재 정권의 아킬레스건은 바로 정치범수용소이고 연좌제이다. 북한 주민들 스스로 수용소를 없애고 연좌제를 없애라고 말하는 날이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리가 도와주어야 한다.
국제사회와 유엔이 연좌제를 없애라고 요구해야 북한 주민들 중 용기 있는 자들이 뭉칠 수 있을 것이다. 장마당으로 모인 북한 주민들이 ‘도둑놈 김정일ㆍ김정은은 물러가라’고 외칠 수 있을 것이다. 저 먼 땅 이집트에서 반정부 시위를 보면서 북녘 땅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상상해 보는 것은 나만의 헛된 바램일까?
김태진 북한 정치범 수용소 해체본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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