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에서 미국여성과 결혼한 아들이 구정을 맞아 부인과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를 찾아와 세배한 것을 둘러싸고 며칠 전 어느 모임에서 오복이 화제가 된 것을 본적이 있다. 원래 오복(五福)이란 말은 유교의 5대 경전 중 하나인 서경에 나오는 것으로 첫 번째가 오래 사는 수(壽), 두 번째가 넉넉한 살림의 부(富), 세 번째가 몸과 마음이 편안한 강령(康寧), 네 번째가 남에게 많은 것을 베푸는 유호덕(攸好德), 다섯 번째가 사고 없이 살다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고종명(考終命)이다. 한국에서는 과거 집짓는 상량식을 할 때 이 오복을 종이에 써서 기둥 밑에 파묻기도 했다. 현대인의 눈, 특히 미국에서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고종명’을 빼놓고는 전통적인 ‘오복’의 내용이 현실에 맞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오래 사는 것(壽)? 글쎄 그것이 아프지 말고 오래 살아야지 중병에 걸린 채 오래 살면 뭐하나. 부(富)도 그렇다. 가난하면 자식 신세 져야했던 옛날에는 복이었지만 소셜 시큐리티나 웰페어 등 최소 생활비를 정부에서 주는 미국에서는 돈 있는 사람을 ‘복 받은 사람’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돈 있으면 편리한 점은 있으나 없어도 그만이다. 오히려 돈 있으면 쾌락주의를 지향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부부사이가 파경으로 달릴 가능성도 있다. 또 유산상속 때문에 가족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마음 편하게 사는 강령(康寧) - 미국서는 웰페어(극빈자 생활지원비) 받으면서도 마음 편하게 지내는 사람이 많아 어울리지 않는다. 남에게 베푸는 유호덕(攸好德)도 미국사회에서는 자원봉사 활동이 활발해 오복으로 불리기에는 좀 약하다. 그럼 이민사회의 오복은 무엇인가. 미국 이민생활에서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복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첫째는 건강이다. 이민생활에서 고생 고생해 어깨 좀 펴고 살만해졌을 때 중병을 얻거나 세상 떠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아프면 돈이고 뭐고 백약이 무효다. 맛있는 것을 먹을 수도 없고 꿈에 그리던 여행도 할 수가 없다. 더구나 스트로크(중풍)나 알츠하이머에 걸리게 되면 가족들에게 말할 수 없는 폐를 끼치게 되고 간병할 사람이 없는 경우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짐을 짊어지게 된다.
두 번째는 효자를 둔 부모다. 용돈 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부모에 대한 관심이다. 사회복지 제도는 자녀들의 부모 무관심을 부채질 한다. 또 이민사회에서는 자녀들의 결혼문제가 부모들의 큰 골칫거리이기 때문에 장가시집 무난히 가주는 것도 효자에 속한다.
세 번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나이 들어서도 하는 사람이다. 일하는 것도 부럽지만 하고 싶은 일을 직장이나 사업을 통해 하는 사람은 정말 복 받은 사람이다. 일 못하면 취미생활에라도 열중할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한 다음 무엇을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다.
네 번째는 남에게 존경 받으며 사는 사람이다. 나이 들어 존경 받으며 산다는 것은 인격을 인정받는다는 것을 뜻하며 나의 가치를 남이 높이 평가 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생말년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지 않고 존경받으며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돈만이 재산이 아니다. 돈은 많은데 존경받지 못하는 사람이야말로 불쌍한 사람이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역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고종명(考終命)이다.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암으로 고통 받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복중의 복으로 꼽힌다. 마음이 통하는 좋은 친구를 갖는 것도 복임에는 틀림없으나 그것은 오복에는 좀 약하고 육복(六福)에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복 받았다”는 말에는 남이 부러워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오복’ 정의는 내가 보는 나의 행복이 아니라 남이 보는 나의 행복을 기준으로 평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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