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오래 전에 읽었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중국 춘추 전국시대와 그 이후를 그린 손자병법이나 삼국지에는 소위 영웅호걸들의 군웅할거가 묘사돼 있다. 덕장과 지장이 있었는가 하면 간웅도 있었고 패악한 군주를 몰아내는 과정에는 졸개들은 물론 평민들의 피 흘림이 많았다.
혁명에 성공하여 처음에는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하고 평화 시절도 일구는 듯 보이던 것도 잠깐 새 군주도 주색에 빠지든지 간신들의 농간에 놀아나 가렴주구와 폭정을 일삼기 때문에 새 영웅의 반란을 당하는 식으로 역사가 반복된다.
리비아의 카다피 대령이 풍전등화 신세가 되어 곧 권좌에서 쫓겨나거나 비참한 최후를 맞을 것처럼 보이는 것을 실시간으로 BBC나 CNN을 통해 보면서 영웅의 타락과정과 말로를 생각하게 된다. 1969년에 불과 27세의 나이였던 카다피 대위는 당시 리비아의 왕정에 대한 무혈 쿠데타를 영도하여 혁명위원회 의장 자리에 오를 정도로 카리스마가 있던 사람이다. 워낙 리비아가 상충하는 부족사회인데 부족들 간의 이해 조정에 뛰어났기에 권좌에 올랐지만 일단 정상에 오른 다음에는 자기만이 리비아를 발전시켜 국민들을 잘 살게 할 수 있다는 신념에 빠지고 그것은 곧 아집과 독선에 이르게 된 것 같다. 역사학 석사까지 있다는 카다피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배격하는 동시에 정당이나 의회도 없애면서 소위 지역별 인민위원회에 기초를 둔 직접 민주주의 선언서를 주창한 것이 1976년이었다.
그러나 말만 직접 민주주의일 뿐 카다피 1인 독재체제인 것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는 인권도, 자유공명 선거에 의한 공화정치도 없이 김일성, 김정일 독재만 있는 것과 흡사하다. 카다피는 대령이 되면서 그 이상의 군대 직급을 모두 없애버려 아직도 카다피 대령이라고 불린다.
카다피는 여러 차례의 반란 시도에서 살아남은 다음에 외국에 살고 있는 반대자들을 암살시키도록 명령을 내리는 등 1인 독재 체제를 굳혀왔다. 그리고 아일랜드의 반정부군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한다든지 여러 나라에서 반미 그리고 반 이스라엘 세력들을 키워왔기 때문에 미국과 관계가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986년에 베를린에 있는 어떤 클럽에서 미군 세 명이 리비아가 후원하는 테러단에 의해 살해된 다음에 외교관계가 단절된다.
레이건 대통령이 카다피를 ‘중동의 미친개’라고 부른 것도 그 무렵이다.
1988년에는 리비아 테러리스트들이 탁송한 폭탄 때문에 팬앰 비행기가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폭발되어 270명이 죽는 참사가 발생되었다. 두 명의 테러 용의자들을 체포하여 스코틀랜드로 인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엔의 제재 아래 있다가 1999년에야 그들을 송환하여 재판이 있게 된다.
그 무렵 카다피는 테러리스트들을 더 이상 돕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2003년에는 팬 앰 비행기 폭발사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여 피해자 가족들에게 보상금을 지불했을 뿐 아니라 대량 학살무기(WMD)들의 개발 노력을 중단한다고 발표하여 미국과의 국교가 2006년에 회복됐다.
카다피는 약 한달 전부터 시작된 데모에 대해 무자비한 공격을 가하고 있다. 오죽했기에 몇 조종사들이 다른 나라로 망명했으며 주미대사를 포함한 많은 리비아 외교관들이 카다피의 행동은 인종말살정책이라고 규탄했을까. 평소부터 기벽과 광기가 있는 것으로 보이던 카다피의 언행은 단말마의 최후 비명처럼 점점 이성을 잃은 것으로 들린다.
그는 자기가 영국 여왕에 비해 훨씬 짧은 기간 동안만 권좌에 있었는데 엘리자베스 여왕에게는 반대가 없고 왜 자기에게는 반대가 있느냐고 독백하다가는 자기를 몰아내려는 세력은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라덴의 사주를 받았다고도 지껄인다. 리비아 사람들의 피가 더 흘려지기 전에 카다피의 종말이 닥친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
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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