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민족 사회 하와이에서 영상매체를 통한 방송 경영인으로 미주 한인 이민사에 한 획
한류열기가 뜨거운 하와이에서 한국의 문화와 음식은 이제 하와이 로컬 주민들에게 더 이상 낯선 외국 문화가 아니다. 이런 하와이 한류의 중심에는 한국 드라마의 열기에 불을 지핀 공중파 한국어 텔레비전 KBFD와 다양한 한국 음식과 주방용품 및 식재료를 판매하며 한국 음식문화를 로컬사회에 알리고 있는 팔라마 마켓이 자리하며 주내 경제계에 그 뿌리를 깊게 내려가고 있다. 영상매체를 통한 한국문화를 알리는 일과 식품, 유통업을 통해 한국의 식문화를 알리고 있는 이들 두 업체의 또 다른 공통점은 1세대 창업주를 능가하는 2세들이 그 경영능력을 발휘하며 사업의 다각화를 이루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민 108주년을 맞아 부모세대의 땀과 노력을 밑천삼아 부모를 능가하는 경영수완을 발휘하며 하와이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경제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2세들을 조명해 본다.
<편집자주>
-본인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 해 달라, 하와이에는 어떻게 정착하게 됐나?
한국전쟁이 끝난 1950년대 중반쯤 부친(정계성 회장)이 미 본토의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 떠나던 중 하와이를 잠시 경유해야 했던 때가 있었고 당시 미국의 영토이면서도 많은 동양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이 곳에 많은 관심을 가지셨다고 한다.
-부모님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다면, 지금의 성공 스토리를 일궈내기 위해 어떠한 어려움들이 있었나?
아마도 이 질문에 답하려면 책 한권 분량을 써도 부족할 것 같다.
종종 부친께 자신과 KBFD의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을 써 볼 것을 권유해 보기도 한다.
누구도 처음 창업했을 당시의 어려움,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사업이 존속될 수 있도록 유지해 나가기 위한 노력에 대해 잘 알지 못할 것이라 생각된다.
하와이 한인들은 이 곳의 소수민족 중에서도 소수민족으로 분류될 정도로 하와이 전체 인구의 2% 정도밖에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당시 KIKU 텔레비전은 하와이의 일본인들을 위한 자국어 방송을 송출하며 이미 주류사회에서 자리잡은 일본인 단체나 업체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다.
반면 인구수나 부유층이 많은 중국인들도 자신들만의 방송국을 갖지 못한 상태였고 필리핀계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 수준이면 굳이 사업가가 아니더라도 단 2%의 인구를 바라보고 방송국을 개설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으리라.
텔레비전 방송국을 운영하려면 막대한 자본이 들지만 이 시장에서의 광고수입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재정적인 면에서 실현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판단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부친께서는 무엇보다도 로컬 사회에 한국문화를 알리고 방송매체를 통해 한인동포들간의 결속력을 다져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일반 미국인들이라면 한국에 대해 너무나도 모르던 80년대 당시 온 가족이 합심해 부친의 리더십에 의지해 방송국을 이끌어 나갔고 이러한 아버지의 선견지명과 노력이 오늘날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본다.
-유년시절은 어떠했나?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철학이나 가치관은 어떤 것이 있나?
내가 가진 첫 일자리는 8살 때 시작했던 신문배달이었다. 이를 통해 노동의 값어치와 저축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역시 가족이고 다음으로 KBFD뿐만 아니라 하와이의 여러 비영리단체들에게 이익을 환원하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부친의 가업을 잇길 원했나 아니면 다른 계획이 있었나?
1990년에 대학을 졸업했을 당시 KBFD는 방송을 시작한지 고작 4년째 접어들고 있었고 운영면에서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보기에도 사업을 오래 유지할 수 없었을 것 같았지만 가족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앞서 이후부터 계속 KBFD와 함께 해 왔고 가업을 물려받는다기 보다는 형제들과 함께 파트너십의 형태로 회사를 운영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방송 일에서 매우 보람을 느끼고 있고 KBFD가 하와이 한인사회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여러분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앞으로 KBFD-TV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생각인가? 개인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기술은 나날이 발전해 나가고 있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사업모델만을 고수한다면 업계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KBFD-TV는 3월24일 저녁 7시부터 방송되고 있는 ‘코리아 매니아’와 같은 자체제작 프로그램을 앞으로도 늘려나갈 계획이다. 불법 해적판 영상물이 인터넷상에 넘쳐나고 있는 가운데 이처럼 우리 고유의 콘텐츠를 개발해 나가야 할 시기라고 본다.
-회사를 운영하는 것 외에 다른 해보고 싶었던 일이 있었나?
대학을 졸업해 아시아지역의 선두를 달리는 금융업체에서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다른 친구들처럼 금융업에 종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2008년 세계적인 금융대란 사태를 봤을 때 그러한 선택을 내렸더라면 크나큰 좌절을 맛보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 말고는 텔레비전과 영상 엔터테인먼트 부문의 사업이 내가 아는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 중에서 25년간의 방송경력, 그리고 12년간 영화계에서 일해왔다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것은 나만의 이채로운 경력이자 재산이다.
-아버지에 대해 경쟁심을 느낀 적이 있나? 부친이 이룩한 것들을 어떻게 뛰어넘고 싶은가?
부친께서는 내가 지금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고 앞으로 KBFD가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며 아버지가 이루고자 했던 꿈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 목표이다. 아버지대의 사업운영과 지금의 다른 점은 이전에는 한인사회에만 사업을 집중해 왔지만 지금은 로컬 외국인들에게도 어필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나의 인생철학은 한인사회를 위해 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KBFD가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확대해 나가 다양한 계층의 시청자들을 끌어들여 주민들간의 문화적 차이를 좁혀 나가야 한다는 것을 지론으로 삼고 있다.
또한 현재 미주한인 최초의 주문형 방송 시스템을 도입한 KLIFE를 따로 개설해 직접 운영하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은 채널을 추가해 나갈 계획이다.
KBFD 외에도 하와이 국제영화제 명예회장, 칼럼니스트, 그리고 지역 내 유수 업체들의 비즈니스 컨설턴트 등의 활동을 통해 사업을 발전시켜 나갈 생각이다.
<김민정기자>
<사진설명: 지난달 KBFD 개국 25주년 행사장에서 부친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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