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최근 영국을 방문 “앞으로 두 달이 고비”라며 식량지원을 요청한 것을 비롯, 북한은 국제사회에 대대적인 식량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도 북한정부 자료를 인용, 108만6000톤의 식량이 부족하다며 취약계층 610만명을 위해 당장 43만4000톤의 식량지원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북한과 WFP의 주장에 대해 많은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즉, 근래 북한의 국제사회에 대한 전방위적 식량 요청은 2012년 강성대국 선포와 관련 식량을 비축해 놓으려는 속셈 아니냐는 것이다. 이러한 의혹의 근원은 북한이 식량수급 상황에 대해 객관성 있는 통계 자료를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당국은 지원 요청에 앞서 자신들의 식량 실태에 대한 정확한 자료부터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기구가 식량 실태를 자유롭게 조사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여야 한다. 대북지원에 나서고 있는 국제기구나 국내 민간단체들도 식량사정이 열악하다는 주장에 앞서 신뢰할만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가 3월말 탈북자 500명을 상대로 한 긴급조사에 따르면 ‘유엔이나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이 누구에게 분배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3.6%가 군대라고 답했으며 당 간부(69%), 정권기관(48.8%), 평양시민 등 특권층(38.8%) 순으로 답했다. 반면 취약계층 및 아동이라는 응답은 겨우 2%에 불과했고 임산부의 경우는 0%로 나타났다. 이는 그동안 영유아 및 임산부 등 취약계층을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한 물자의 상당부분이 군부나 당 간부들의 몫으로 전용된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대량아사가 우려되기 때문에 지원해야 한다는 식의 맹목적인 지원 주장은 적절치 못하다. 더욱이 북한의 천안함-연평도 도발로 우리 국민들이 받은 상처가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군인도 북한 주민이니 군량미로 전용되더라도 지원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상식선을 벗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약계층들을 상대로 한 인도적 지원은 적극 고려되어야 한다. 이들은 북한 체제의 정당성 여부와는 별도로 우리가 민족적, 인도적 차원에서 돌봐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결핵, 뇌염, 말라리아 등 전염성 질병에 대한 긴급 의료 지원은 신속히 모색되어야 한다.
이런 부분은 전용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영유아 등 취약계층이 실제 수혜를 받기 때문이다. 최근 통일부에서 천안함 폭침 이후 엄격한 원칙을 적용해왔던 대북 지원과 관련, 모니터링이 가능한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일부 허용한 것은 적절한 조치로 여겨진다.
한편 응답자의 77.8%가 지인들이나 이웃들이 외부지원에 의해 배급받는 것을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대북 식량지원의 분배 투명성 문제와 관련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감시 요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받은 물자까지 반납시키는 경우가 있다는 응답자가 29명이나 돼,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전달되는 지원물자를 다시 빼앗아 가고 있다는 의혹이 확인된 셈이다. 지원기구나 단체들은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분배 투명성 문제를 지금보다 몇 배는 더 강화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할 것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일관되게 인도적 지원과 정치적 문제를 분리해 적용,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북한 주민들을 동포로, 통일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면 더욱 적극적이고 대대적으로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
다.
그러나 북한이 중국처럼 개인농을 허용해 일거에 식량문제를 해결했던 좋은 선례를 따르지 않고, 수백만의 죽음에도 별다른 개혁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즉 북한이 핵개발과 군사도발을 앞세우는 선군정치를 버리고 인민의 삶을 중시하는 선민정치로 전환하지 않고 ‘묻지마 식’ 지원만을 요청한다면 한국과 국제사회의 대답도 싸늘할 수밖에 없다.
한기홍
북한민주화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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