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댄스, 패션, 요리 등 각 분야를 망라한 외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신드롬이 한국 TV에 몰려와 한국민은 물론 해외 한인들까지 술렁이고 있다. 4월 첫 주말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서바이벌과 오디션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고 오디션 사교육이란 단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모두가 ‘너 죽고 나 살자’는 살벌하기 그지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tvN 서바이벌 ‘오페라 스타’에서 힙합, 록, 발라드, 트로트, 댄스 각 분야 대표가수들이 오페라로 대결을 펼치고 있고 이달 말에는 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의 최종 8명 도전자가 경쟁을 벌인다. 오는 5월에는 김건모 탈락 결정 후 재도전 논란으로 한달 간 잠정 방송 중단되었던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가 다시 방영되며 KBS가 휴먼 서바이벌 ‘도전자’를 5월부터 하와이에서 사전 제작한다. 또 연기자를 뽑는 ‘기적의 오디션’이 준비 중이고 ‘수퍼스타 K 올여름 시즌3’가 시청자를 만난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주마간산 격으로 훑어보면 돈도, 아는 사람도 없이 믿을 것이라고는 자신의 음악성 밖에 없는 사람이 눈앞에서 전개되는 투명한 심사절차에 반해 대거 몰리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가장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를 뽑는다고는 하나 시청률에 목매는 제작자와 프로 담당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출연자들이 시청자의 관심을 끌게 해야 한다.
이왕이면 지독하게 가난하고 왕따였고 상처가 많고 결손가정 출신이면 더 이야깃거리가 풍성해지고 그런 점이 심사위원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것이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무리하게 인위적 캐릭터가 나오기도 하고 연습과정이나 심사평을 공연무대에서 듣게 하는 가혹한 장면을 보면 출연자가 소모품으로 전락했구나 싶어 딱해지기도 한다.
물론 경쟁하고 싸우게 만든 후 1, 2등을 가르는 아슬아슬한 긴장을 즐기고 승자와 패자의 얼굴을 교대로 비춰주며 울고 웃는 그들에게 재미를 느끼는 시청자도 있을 것이다. 이 불황의 시대에 직업 구하기도 힘들고 평소 노래 좀 한다는 말을 듣는 자가 자수성가의 꿈을 안고 도전했다 하자. 심사위원의 쓴 소리 정도야 객관적 평가로 고마운 일이지만 아예 한방에 가버리게 만드는 독설은 순수한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자괴감을 심어주기도 할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1등을 한 후 계속 음악을 할 사람인가’를 선정하는데 단 3분 안에 그것을 느낌, 육감으로 알아내야 한다. 하지만 그들도 실수할 때가 있다. 꼴찌는 탈락시키는 서바이벌이다 보니 순위를 매겨야 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원칙이지만 어떻게 우리 인생이 1등, 2등, 3등으로 가를 수 있으랴. 자칫 점수의 노예가 될까, 그래서 한 번의 오디션으로 인해 평생 즐기고 좋아했을 음악을 포기하게 만드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된다.
물론 이런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감동을 주기도 한다. 영국의 신인 발굴 프로그램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서 휴대전화 외판원 폴포츠가 오페라 가수로 데뷔하고 뚱뚱한 노처녀 수잔 보일이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로 심사위원의 기립박수를 받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수퍼스타 K2 우승자인 환풍기 수리공 출신 허각의 스토리도 시청자의 눈시울을 찡하게 했었다. 온 정성을 다해 노래 부르는 가수, 새로운 것에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은 인간의 지칠 줄 모르는 도전의식을 보여줘 감동을 선사한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이 서바이벌 오디션 열풍이 갈 것인가. 당분간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요즘 이것이 대세라면 출연자들이 우승하여 스타가 되고 돈을 벌고 성공한다는 꿈이 욕망으로 변하지 않기 바란다. 지더라도 하나의 좋은 경험으로 여기고 그동안 잘 놀았어, 꿈은 다시 갖지 뭐 하는 출연자의 마음가짐, 제작자들이 화끈한 자극이 아닌 신선한 충격을 시청자에게 주려고 노력할 때 이런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수명은 길어질 것이다.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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