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트 롬니는 요즘의 공화당과 코드가 잘 맞는 대선 후보는 아니다. 그러나 2012년 대선이 ‘경제 선거’로 확실해진 요즘, 공화당은 아직 롬니 만한 본선 경쟁력을 가진 후보를 확보하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힘들 것이다.
외모부터 ‘스펙’까지 64세의 롬니는 서류상 ‘가장 대통령답게 보이는’ 후보다. “대통령 후보감을 제작 주문한다면 롬니가 배달될 것”이란 조크가 나올 정도다 :
아버지는 아메리칸모터스의 회장과 미시간 주지사를 역임했고 어머니는 연방상원에 출마했던 부유한 명문가 태생으로 얼굴도 잘 생겼고 하버드 법대 졸업에 더해 하버드 MBA까지 받은 최고의 학력, 세계적 투자자문화사 베인&컴퍼니의 CEO를 역임하고 자회사 베인캐피탈을 설립해 눈부시게 발전시킨 억만장자 기업인, 위기에 빠진 동계올림픽을 구해 낸 유능한 조직위원장, 백악관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주지사 경력, 거기에 고교시절 연인과 결혼해 5명 아들과 5명 며느리, 15명의 손주들을 이끌며 42년 동안 지켜온 행복한 모범가정…
지난 주 롬니가 2012년 대통령선거 공화당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2008년 대선에 이은 두 번째 도전이다. ‘신선한’ 뉴스도 아니지만 지난 2일 그가 출마를 발표하던 뉴햄프셔 주에 새라 페일린이 예정을 앞당겨 도착하면서 미디어의 조명마저 가로채버렸다. 지역신문은 페일린의 ‘명분도 아리송한’ 버스투어는 1면에, 롬니의 출마선언은 3면에 보도했다. 지난 몇 주 모든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의 선두주자로 드러났지만 누구도 별로 ‘존중’해주는 기미가 없다. 미디어는 ‘흥행성’을 쫓아 페일린에 집착하고 공화당은 뜨악한 표정으로 선뜻 손을 내밀지 않는다.
퓨리서치 센터가 분석한 현재 공화당 핵심유권자들을 숫자로 풀어보면 ‘90%가 백인, 51%가 50세 이상, 42%가 복음주의 기독교인’이다. 10명 중 8명이 “정부란 언제나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이라고 규정짓는 극단적 그룹이다. 이 같은 극우보수로 뭉친 티파티가 흔들어대는 요즘의 공화당이 중도파 롬니를 곱게 볼 리가 없다. 2008년 경선에서 1억 달러를 쏟아붓고도 롬니가 중도하차한 요인의 배경도 바로 이들이었다.
4년이 지났지만 롬니를 막아 선 공화당 ‘보수’의 벽은 별로 낮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달라진 게 있다. 이슈다. 전국의 표밭을 압도하고 있는 이슈는 경제다. 바로 성공한 기업가 롬니에게 가장 자신있는 전문분야다.
후보 롬니의 강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높은 지명도와 막강한 자금력, 지난 4년 계속 강화시켜온 원활한 조직…여기에 2012년엔 최고의 자산이 더해졌다. “경제이슈에 대한 그의 지식과 경험은 그의 말에 권위와 설득력을 준다”고 클레어몬트 매키나 대학의 존 피트니교수는 말한다.
경영난 심한 회사들을 인수해 회생시켰고, 뇌물스캔들로 위기에 처한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의 조직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인 흑자로 돌려놓았으며 2003년 매사추세츠 주지사에 취임한 후 30억 달러 적자를 첫 해에 해소했다.
롬니의 두 번째 도전은 출정식부터 달랐다. 4년전엔 아이오와에서 기독교적 가치관을 강조하며 극우보수 그룹에 지지를 ‘애원’하면서 출마를 발표했었다. TV광고 등으로 무려 1천만 달러의 자금을 썼지만 아이오와의 승리는 목사후보 마이크 허커비에게 돌아갔다. 당원만 참여하는 아이오와 공화당 코커스 유권자의 60%는 복음주의 기독교인이다.
이번엔 오픈 프라이머리로 치르는 뉴햄프셔를 출마 선언장소로 택했다. 공화당원 뿐 아니라 민주당과 무소속도 공화경선에 투표할 수 있는 곳이다. 연설의 포커스도 달라졌다. “오바마가 미국을 망쳐버렸다”며 경제정책 실패를 맹공격했다. 마치 후보 수락 연설 같기도 했고 오바마와 대결하는 본선 유세에 나선 듯도 했다.
2012년 대선 표밭의 바람은 2008년 보다는 롬니에게 유리하게 불고 있다. 그렇다고 안심할 처지는 전혀 못 된다. 4년 전 약점들도 사라진 게 아니다. 그의 종교, 몰몬에 대한 이질감도 여전하고 “확실한 보수가 아니다”란 의구심도 가시지 않았다. 경선에선 ‘롬니케어’가, 본선에선 ‘말 바꾸기’가 그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다른 후보들은 주지사 경력이 큰 자산인데 롬니에겐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진보적인 매사추세츠의 공화당 주지사’를 무난히 역임했다면 초당적 타협가로서 크레딧을 받아야 하겠지만 오히려 결정적 족쇄가 되고 있다. 주지사시절 서명한 전주민 의료보험 가입 법이 ‘롬니케어’로 불리우며 공화당의 폐기목표 1호인 오바마케어의 ‘모델’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사 시절 민주당에 양보했던 낙태에서 총기규제까지 사회이슈에 대한 중도적 입장을 4년전 출마 후부터 보수로 선회하면서 입장을 바꾼 그에겐 “어떤 롬니가 진짜 롬니야?”하는 비아냥도 따라 다닌다.
오래전 몰몬 선교사로 프랑스에 파견된 한 대학생이 하이웨이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출동한 경찰은 피흘리며 쓰러져 있는 운전자를 살펴본 후 그의 여권에 “Dead(사망)”라고 써넣었다. 시신인 줄 알고 병원으로 옮겨졌던 21세의 롬니는 그러나 죽지 않았다. 살아서 부도에 처한 많은 회사를 살려냈고 위기에 빠진 올림픽도 구해냈으며 보수적 재정정책으로 진보적 주정부의 적자도 해결했다.
그가 이제 공화당을 위해 백악관을 탈환하고 위기에 처한 미국의 경제를 회생시키겠다고 호소한다. 유권자들은 그에게 기회를 줄 수 있을까. 아니, 기회를 주고 싶다는 신뢰를 롬니는 유권자들에게서 얻어낼 수 있을까.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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