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반의 초청을 받았다. 그들이 알고 싶은 것은 ‘해방’과 ‘독립’의 뜻이었다. 역사교사의 설명을 들었지만, 그 뜻이 분명치 않았던 모양이다. 필자가 ‘나라를 잃었다’ ‘나라를 찾았다’는 체험을 알려주자 학생들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아마 갖가지 상념이 오락가락하였을 것이다. 그 역사적인 사건은 단지 14일 어제와 15일 오늘의 다름이었다. 아니, 1945년 8월 15일의 오전과 오후의 차이였다.
이날 아침부터 정오에 중대방송이 있겠다는 예고가 있어서 교사 전원이 교사실에 모였다. 이윽고 정오가 되자 일왕의 방송이 있었는데, 잡음이 심해서 분명히 그 내용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일본 교사들이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몇 명 안 되는 한인 교사들은 묵묵히 서 있었고. 교장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일본은 전쟁에 졌다”고 말하더니 훌쩍 교장실로 들어갔다.
거리에 나가자 한복 입은 사람들이 길을 막고 두둥실 춤을 추고 있었다. 어디 감춰 두었던 것인지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때서야 나는 친구와 함께 마음 놓고 웃었다. 무거운 직장 분위기 때문에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거리에는 한복과 함께 한국말이 터져 나왔다.
오전의 일본거리는 오후의 한국거리로 변했다. 이것이 바로 해방된 한국의 모습이었다. 그 동안 주인의 자리를 잃었던 국토와 문화를 되찾은 기쁨은 만세 부르고, 춤추고, 노래 부르고, 서로 껴안고, 서로 손잡고 지칠 때까지 온 몸으로 새 희망을 맞았다. 올해 8.15 해방은 제66주년이 된다.
그 이후 온 국민이 새 나라를 만들기에 힘을 모았다. 국가는 일정한 영토와 국민이 있고, 주권에 의한 통치 조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사연이 있어서 한국 남쪽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된 것은 1948년 8월15일이다. 그러니까 올해 제63주년 기념일을 맞이하게 된다.
새로운 나라가 탄생하였다는 것은 해방과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 일이었다. 압제에서 벗어나 유엔이 인정하는 명실상부한 독립국가가 됐다는 것은 새로운 지평이자 도전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조선어(한국어)를 공부한 일이 전연 없다. 해방 후 강습회를 쫓아다니며 한국말과 한글을 배웠다. 그 때 결심한 것은 “일본어를 한 마디도 섞어서 말하지 않겠다”였고 이를 실천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대학수준의 일본어를 말하고 읽고 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린이들에게 한국어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어렸을 때 배운 것은 일생을 좌우한다.
이 시대는 타민족까지 한국어를 배운다. 코리안 아메리칸이 한국어를 멀리한다면 결국 자기 부정의 뜻이 된다.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발견이고. 이는 ‘나’에 대한 이해와 사랑으로 이어진다.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은 이웃 사랑, 나아가서 인류 사랑으로 발전하는 토대가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한국학교 교육은 끼리끼리 똘똘 뭉치는 배타적인 민족교육과는 다른 활짝 열린 교육이다. 미국은 각 민족이 가지고 들어온 문화를 보태서 더 풍부하고 다양한 문화를 만들고 있다. 우리 문화를 살리는 것이 미국문화에 공헌하는 길이 된다.
한국의 ‘8월15일’은 두 가지 경사가 겹치는 날이다. 즉 해방 기념일인 광복절이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일이다. 그 시대의 생활이 점차 잊혀지고 있다. 우리 집안일을 다른 사람 마음대로 했다고 생각해보자. 그게 바로 일제 시대였다.
일제강점기 말의 창씨개명, 일본어 상용 정책은 한국인의 정신을 말살해 버리려는 것이었다. 현재 미국에서 미국 이름과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생활을 편하게 하는 도구이고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한국말과 한국문화를 이어가는 일이다. 8월15일이 우리를 깨우친다.
허병렬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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