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DL, CDL … 그것이 뭐길래?
▶ <상업용 운전면허: Class A>
경기불황 아우성이 요란하다. 몇년째다. 사업자들도 직장인들도 거개들 한숨이다. 사업을 접은 사람들과 직장을 놓친 사람들의 고통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한숨이 돌파구를 열어주는 것도 아니다. 헤어날 길은 없을까. 밑천없이 배울 수 있고 샐러리가 자못 쏠쏠하며, 게다가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해고불안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대형트럭(세칭 트레일러) 운전은 어떨까. 본보 정태수 기자(비상근 논설위원)의 실전체험기를 몇차례 나눠 싣는다. <편집자>
지난 7월5일(화) 아침 7시, 남가주 샌버나디노카운티 미라 로마의 프라이머 드라이빙 스쿨. 첫 수업이 시작됐다. 17일코스CDL 취득 프로그램이었다. CDL은 Commercial Driver License(상업용 운전면허)의 약자다. 버스운전도 유조차 등 위험물차량운전도 CDL이 있어야 한다. 일반 운전면허는 클래스C, CDL은 클래스A로 분류된다. 각 기수 첫 수업은 매주 월요일에 시작된다. 7월4일(월)이 공휴일이라 화요일로 미뤄졌다.
첫 수업 수강생은 100명쯤 됐다. 옆 교실에서는 이미 CDL을 딴 뒤 이 학교의 스폰서회사인 장거리 운송전문 C.R. England사에 취직하기 위해 모인 이들을 비롯한 30여명이 따로 교육을 받았다. 2,3주째 수강생들은 야드(yard)라 불리는 실기교습소에 모여 훈련받는다.
7월5일 입학생들 면면은 다양했다. 20대에서 60대까지, 나이는 대중없었다. 여자도 서너명 있었다. 인종은 흑인이 절반쯤, 해스패닉이 30명쯤, 백인이 열댓명쯤 됐고, 아랍계도 서넛 눈에 띄었다. 아시안, 특히 동북아시안은 나 말고 딱 한명, 웬투안이라는 40대 후반 베트남계 남자였다.
웬투안은 가든그로브에서 그곳까지(편도 약 4,50분) 통학했다. 자가통학생은 몇명 더 있었다. 샌버나디노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뱅글라데시 출신 청년은 택시를 몰고 등교하기도 했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는 대부분 지정모텔에 묵었다. 학교와 모텔은 차로 약 15분, 운송차량은 12인승 밴 2대였다. 등하교 때 각 2,3차례 왕복하는데 처음 며칠간 맨뒤 짐칸까지 사람을 실었다.
그런 탓에 이른 아침 첫 교실에 땀냄새 사람냄새가 흥건했다. 성명발음이 생소한 이들이 꽤 있어 출석확인만 20분 가까이 걸렸다. 교장의 인사가 따랐다. 의례적 환영사 뒤에 그는 물었다. “여러분 여기에 왜 왔습니까? CDL을 따려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웃음이 일었다. 몰라서 묻느냐는 코웃음으로 들렸다. 교장은 빙그레 웃었다.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는 표정으로 읽혀졌다. 누군가 손을 들었다. 교장은 그쪽을 가리켰다.
“잡 시큐리티(Job Security: 고용안전)."
모자를 눌러쓴 백인청년의 뻔하고도 교과서적 대답에 또 웃음이 일었다. 너도 나랑 같구나 했을 게다. 교장도 웃었다. 그러면 그렇지 했을 게다. 대답의 물꼬는 터졌다. 다른 표현 같은 대답들이 이어지고 겹쳐졌다. 직장(job) 돈(money) 사업(business) 봉급(salary) 해고(fire) 등이 공통분모였다. F워드 욕설이 자주 섞였다.
“트래블링(Traveling: 여행)."
허스키 돌출발언에 침묵이 덮쳤다. 이삼초도 못가 웃음보가 됐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학자풍 노신사에게 눈길이 쏠렸다. 그는 무슨 말을 더 하려다 말고 두툼한 뿔테안경 사이로 교장 혹은 정면을 바라만 봤다. 교장이 대신했다. “그럼요, 미국 구석구석 어디든지 여행할 수 있어요, 쏠쏠한 돈(solid money)을 벌면서.”
그곳은 낭만의 유랑자들 모임터가 아니었다. 현실의 생활인들 모임터였다. ‘돈벌며 여행하기’ 내지 ‘여행하며 돈벌기’의 매력은 금세 사라졌다. (노신사도 자퇴인지 퇴학인지 닷새를 못버티고 종적을 감췄다. 신원조회 신체검사 도핑테스트 등을 거쳐 최종 면허취득까지 남은 사람은 30명도 안됐다.)
왜 CDL인가. 잠시 일탈된 주제는 곧 동력을 되찾았다. 돈 그리고 일, 역시 그것이었다. 얘기는 쉬는 시간까지 이어졌다.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텍사스에서 온 거구의 서지오는 큰눈을 끔벅이며 “벌이 괜찮은 안정된 직장”을 원했다. 앨라배마에서 새크라멘토 북쪽 오로빌로 이주했다는 배불뚝이 청년도, 어린 시절 노바토에서 살았다는 바버라 여사도, 또 누구누구 할것없이 거의다 그랬다. 웬투안은 “직장에서 툭하면 관두라고 해 신물이 났다”며 “나중에 트럭을 사 운송업을 하고 싶다”는 꿈을 펼쳤다. 애리조나에서 온 백인남자 트래비스는 “피닉스에서 택시운전을 하다 해고됐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콜로라도에서 온 20대 중반 케빈-마리나 부부는 “우리 둘이 팀드라이버를 하면 돈을 많이 벌 것”이라고 기대에 부풀었다.
대를 이은 입문자도 꽤 됐다. 22세 청년 존스는 “아버지가 베테랑 트럭운전사인데 연봉이 10만달러나 된다”고 했다. 스틱운전 무경험자인 내게 이것저것 잘 가르쳐줘 뭘 부탁할 때마다 “젊은 교수”라 부르곤 했던 로버트는 “할아버지 때부터 트럭운전 집안”이라며 농익은 솜씨를 과시하곤 했다. 성격파 배우같은 용모에다 늘 귀에 연필을 꽂고다닌 히스패닉계 중년신사는 아버지의 바람둥이 전력을 들추면서 “보나마나 나는 트럭에서 생겼을 것”이라고 좌중을 웃겼다. 왠지 모르게 그의 말은 “암튼 이건 안하고 싶었는데 이 나이에 이렇게…” 하는 넋두리로 들렸다.
교장은 ‘숙달된 조교’였다. 수강생들 속마음을 꿰뚫었다. 회사소개, 학교소개는 간단히 끝내고 돈 얘기로 들어갔다. 면허취득 즉시 회사에 취업되고, 1개월간 1단계 수습운전(스튜던트 드라이버), 2개월간 2단계 수습운전을 하면서 단계단계 운전마일당 몇센트를 받고, 정식사원이 되면 얼마를 받고, 팀드라이버로 장거리를 뛰면 얼마를 받고, 그러면서 스튜던트 드라이버 트레이너를 겸하면 30%를 더 받고 등 칠판에 써가며 ‘뛰는 만큼 더 받는’ 샐러리 체계를 설명했다. 수습딱지를 떼고 약간의 경력만 쌓으면 월 1만5천마일 운전시 5,6천달러 벌이는 우습다는 계산이 나왔다.
나도 솔깃했다. 서툰 영어에 낯선 용어에 답답한 와중에 의욕이 솟았다. 그런데 나는 왜 그 많은 직업중에 트럭운전을? 그 많은 학교중에 왜 그곳을? 지원자격과 절차는? 학비는? 숙식은? 필기시험 준비는? 실기시험 대비 운전교습은? 밤샘운전, 차내수면, 사방팔방 끝없는 질주…트럭운전 24시는? 낭만의 유람? 돈벌이 고행? <계속-정태수 기자>
미국최대 화물운송회사 중 하나인 C.R. England사의 드라이버 구인광고. 신참자들 눈길을 끌기 위해 “NEW”는 글씨체와 색깔과 크기를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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