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괜찮네, 이삼천 벌기도 어려운데``
▶ ``그 고생 하면서…많은 건 아니네``
나는 ‘운전치’다. 운전경력 12년이 다 된 요즘도 “지지리 못하네” 소리를 이따금 듣는다. 초기엔 물론 더했다. 놀리는 말을 되받으며 내 스스로 둘러댄 우스개도 여럿이었다. 길위의 모세, 프리웨이에서 제한속도를 너무 지켜 내 앞뒤 차량행렬이 쫙 갈라지기 일쑤였으므로. 우회전 전문가, 비보호 좌회전만 하면 될 걸 우회전을 거듭해 꾸역꾸역 돌아갔으므로. 장군차 운전병, 잠든 뒷좌석 장군님이 깰까봐 조심조심 모는 운전병 같았으므로. 틈새주차는 노상 골치였다. 회사주차장에서도 들락날락 진땀빼다 “지금 트럭 몰아?” 농을 듣고 “내 마일리지 3분의2는 주차장에서 올린 것”이라고 웃어넘긴 적도 있다.
출퇴근 운전도 어설픈 내가 밥벌이 운전을? 게다가 트럭을? 소형트럭도 아니고 감히 대형트럭을? 이 시리즈의 타이틀이 ‘기자의 체험기’여서 생생체험 현장르포를 위한 반짝교육 및 위장취업으로 비쳐질지 모른다. 아니다. 10년 20년은 몰라도 단 몇년은 실제로 트럭운전을 할 요량이었다. 나 역시 ‘돈과 일’ 때문이었다.
“Easy! … Big Money!"
운전젬병인 주제를 아는지라 물어보면서도 자신없어하는 내게 중국계 축구친구 마위만이 거듭 던진 이 말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경력 8년째인 그는 축구연습 때 직접 트랙터를 몰고와 나를 운전석에 앉아보게 한 뒤 겁나는지 물었다. 내가 괜찮다고 하자 그는 또 권했다. (용어 바로잡기 : 대형트럭을 흔히 트레일러-일본식 발음으로 추레라-라 하지만 잘못된 말이다. 트레일러는 뒷부분 짐싣는 화차를 뜻한다. 앞부분 견인차량은 트랙터다. 트랙터와 트레일러가 연결된 차량의 정식명칭은 콤비네이션 비히클이다. 줄여서 콤보다. 트레일러 2개짜리는 더블, 3개짜리는 트레블이라 한다. 견인부분과 짐싣는 부분이 한몸인 일반트럭은 스트레잇 트럭이다.)
인터넷을 뒤졌다. 드라이버를 뽑는 회사도, 드라이빙 스쿨도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C.R. Englnad(www.crengland.com)를 택했다. 회사지원 무료교육에, 전원취직 보장에, 교육기간 짧고, 실직걱정 없고, 수입 짭짤하고…. 이쯤에서 “나도 해볼까?” “과연 정말일까?” 하는 분들을 위해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부득불 내 주관적 판단이 스며있음을 밝혀둔다.
첫째, 무료교육은 사실이 아니다. 외상이지 공짜가 아니다. 17일간 교육비 2,995달러를 회사에서 융자해주고, 면허취득 및 정식입사 뒤 주급(대체로 55달러씩, 이자율 18%)에서 공제한다. 사정이 여의치 않은 이들에게 당장 부담없는 교육은 매력이다. 나도 그랬다. 유료학원의 경우 4,5천달러 든다. 유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다른 회사들도 많다.
둘째, 전원취직 보장은 사실이다. 물론 CDL 취득시다. 그럼 CDL 취득율은? 17일의 교육기간 끝까지 남는 사람은 거의 100% 합격한다. 끝까지라니? 끝까지 안남거나 못남는 이들이 많다. 7월5일 입학생 약 100명 중 끝까지 남은 이들(CDL을 취득하고 England에 수습사원, 즉 스튜던트 드라이버로 채용된 이들)은 30명도 안됐다. 나머지 70여명은? 스스로 관뒀거나 모종의 결격사유가 발견돼 퇴교당한 이들이다. 결격사유는? 신체검사, 특히 약물검사에서 많이 탈락된다. 입학원서 검증에서 걸러지지 않은 부적격 사유-주로 범죄전과, 음주운전 등 중대 교통법규 위반-이 발견돼 퇴교당하는 이들도 다수다. 입학 첫날 신체검사가 있었고 다음날부터 하루가 다르게 학생이 줄었다. 피닉스의 택시기사 출신 트래비스는 보름동안 같이있다 실기시험 바로 전날 자취를 감췄다.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셋째, 실직걱정 없다는 건 한편 맞고 한편 틀리다. 유명인의 성대묘사로 웃음을 선사하곤 했던 인스트럭터 마이크는 “C.R.England에서는 창사이래 단 한명도 해고당한 운전사가 없다”면서 덧붙였다. "Never Ever!" 불황이나 다운사이징 등에 따른 통상적인 해고가 없었다는 말이다. 사고를 내 회사에 큰 피해를 입히거나 주요 법규위반 등으로 면허가 취소되면 해고다.
역산하면 간단하다. 이 회사의 전체 드라이버는 약 6,000명이다. 회사지정 운전학교는 미 전역에 4곳이다. 매주 월요일 약 100명씩 입학한다. 총 400명 안팎이다. 도중에 우수수 탈락하고 CDL을 따 채용되는 인원이 4곳 합쳐 매주 약 100명이다. 조수생활 때 내 트레이너를 맡은 엘리손도에 따르면, 그중 스튜던트 드라이버 3개월을 마치고 수습딱지를 떼는 이들은 절반가량이다. 그래도 연간 신규채용이 약 2,500명이다. 전체 운전자가 6,000명인데 신규채용자가 2,500명? 회사성장에 따른 자연증가는 요즘같은 불황에도 10%가 넘는다고 한다. 그래봤자 600명 남짓이다. 그렇다면 연간 근 2,000명이 회사를 떠난다는 계산이다, 해고든 퇴사든. 대단한 밀물썰물이다.
넷째, 교육기간은 후원회사에 따라, 해당학원에 따라 다르다. 스튜던트 드라이버 근무기간을 교육에 포함시켜 4~6개월 걸리는 곳도 있다. 보름만이니 열흘만이니 초단기 CDL 취득을 내건 학원도 있다. 십중팔구 유료학원이다.
다섯째, 짭짤한 수입 역시 보기나름이다. 내가 1,2년 경력을 쌓은 뒤 예상수입(월 5,6천달러정도)을 말했더니, L씨는 “그거 괜찮네, 요새 2,3천불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하면서 “000 선배님 잡 때문에 애먹으시는데 한번 해보시라 해야겠다”고 했다. 이 시리즈를 쓰리라 마음먹은 데는 “한인사회에 그런 사람 많을텐데 신문에 한번 써요”라고 한 L씨의 말이 큰 힘이 됐다. 반면 K씨는 “그 고생 하면서 그거 받으면 많은 건 아니네”라면서 “차라리 스몰비즈니스를…” 했다. 비즈니스를 하자면 수월찮은 밑천이 든다. 게다가 된다는 보장도 없고 수완도 없는 나는 L씨의 생각에 가까웠다. <계속-정태수 기자>
◇운전학교 입학요건 : 만 21세 이상. 최근 7년간 음주운전기록 없어야. 최근 1년간 교통법규 위반기록 없어야(면허정지/취소자 자동탈락). 신체검사 약물검사 통과돼야. 중범죄 전과자 불가 등.
◇입학시 지참물 : SS 카드 원본. 운전면허증. 등록비(50달러). CDL 응시료(67달러). 신체검사비(35달러). 한달치 용돈 및 음식비(숙박비는 무료지만 식사는 각자해결). 비시민권자 경우 합법 노동허가서. 필기도구 세면도구 침낭 등.
주요도로 곳곳에 있는 트럭전용 스테이션. 대개 주유소 편의점 샤워실 세탁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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