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 몰라도, 문제 접고 답만 외워``
▶ 주입식 초치기, 필기시험 전원합격
7월5일 첫날 교장의 인사말 뒤 곧바로 필기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둘째날부터 아침 수업이 6시로 당겨졌다. 하교는 그대로 오후 5시. 두세시간마다 10분간 휴식시간이 있었고 점심시간은 30분이 주어졌다. 사흘째인 7월7일 DMV에 가 필기시험을 치르는 속전속결 초치기였다. 온종일 예상문제를 풀고 또 풀었다. 즉석에서 채점하고 틀린 답안을 고쳤다. 숙제도 많았다.
사이사이 회사홍보나 안전운전 영상물 상영, 보험가입 안내 등이 있었다. 문제를 풀다말고 차례로 불려나가 신체검사(혈압/시력/소변/병력 등)와 체력검사(계단 오르내리기/ 트레일러 오르내리기, 쇠뭉치 들었다 놓기, 짐 밀고 당기기 등)를 받았다. 더러 이도저도 아닌데 호출받아 한참만에 돌아오는 이들도 있었다. 도중에 자취를 감춘 건 대개 이들이었다. 전과조회, 약물검사 결과 때문이었을 게다.
나는 거기서 한국교육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절감했다. 그림자는 교실영어의 한계였다. 용어도 분위기도 생소한데 어찌나 빠른지, 게다가 슬랭은 왜 그리 많이 섞는지, 도무지 따라잡지 어려웠다. 다들 재밌다고 깔깔대는데 혼자서 벙 찐 표정이기 일쑤였다. 귀로 이해하기를 거의 포기하고 눈치로 때려잡기(주변사람 따라하기)를 택했다.
시험 스트레스는 네이티브 스피커들에게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한숨과 푸념(주로 F워드 욕설)이 심심찮게 튀었다. 인스트럭터는 정신없이 몰아치는 한편으로 “여러분 모두 합격된다, 걱정말고 따라오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내가 물었다. “나처럼 영어가 서툰 사람도?” 재담꾼인 그는 대답했다. “당신이 영어를 못하면 내가 한국어를 배워서라도 합격시킨다.” 그러면서 “한국어로 왼쪽은 뭐냐, 오른쪽은 뭐냐”고 물었다. 가르쳐줬다. 다음날인가 어느 계기에 그는 클러치를 밟으며 기어를 바꾸고 핸들(스티어링 휠)을 좌우로 돌리는 시늉을 하면서 나를 힐끔 보더니 얼추 비슷하게 “완쩌우, 아른쩌우” 했다. 그러나 그뿐, 농담과 슬랭이 뒤섞인 속사포 강의에 내 귀는 속수무책이었다.
한국교육의 빛은? 엄밀히 빛은 아니다. 위력이 맞다, 좋든 궂든. 한국교육의 병폐라는 주입식 교육의 위력 말이다. 필기시험은 일반지식(General Knowledge) 에어 브레이크(Air Brake) 콤비네이션 비히클(Combination Vehicle) 3과목이다. 20~55문항씩인데 합격선은 70%, 과락도 있다. 사지선다형 객관식이다. 문제 유형이나 순서를 달리한 반복 모의고사. 네이티브 스피커들도 전문용어와 전문지식 때문에 많이들 힘들어했다. 낙제자들이 수두룩했다. 한국식 찍기교육은 본격적인 빛을 발했다. 인스트럭터는 차례로 문항을 읽고는 학생들에게 돌아가며 답을 읽게 했다. 그리고 무조건 외우라 했다. 이틀동안 같은 과목 다른 유형의 문제풀이를 그렇게 신물나게 했다. 거듭할수록 낙제자는 줄었다. 어떤 문제를 두고 누군가 이거 잘못된 것 아니냐고 했다. 인스트럭터는 “답만 외우라”고 잘랐다. 나도 영 이해가 안되는 건 그렇게 했다. 뜻을 알건 모르건 정답율이 높아졌다.
7월8일(목), 모두들 DMV로 가 시험을 쳤다. 학교에서 푼 예상문제와 대부분 같았다. 변형된 문제가 있기는 했다. 인스트럭터 말대로 나는 주저없이 답만 보고 낯익은 걸 찍었다. 운좋게 단번에 붙었다. 떨어졌다 해도 걱정할 건 없다. 시간제한은 없다. 시험은 삼세번이다. 그냥 삼세번이 아니다. 즉석채점 뒤 틀린 답안을 표시해주니 그것만 바로잡아 다시 치면 된다. 여럿이 그렇게 붙었다. 세번 떨어져도 끝은 아니다. 돈을 내면 또 삼세번 기회가 주어진다.
붙기보다 떨어지기가 더 어렵다. 이틀공부 뒤 사흘째 전원합격. 물론 신체검사/전과조회 등 때문에 그 이전에 퇴교당하거나 개인적 이유로 시험을 거른 이들은 빼고서다. 실제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출신의 젊은 여자는 수험료 67달러가 없어 DMV에 갔다가 시험을 못쳤다. 그 뒤로 그는 보이지 않았다. 베트남계 웬투안은 처음 2번 떨어지자 삼세번 도전을 안하고 집에서 보충공부를 한 뒤 다음날 혼자 가서 시험을 쳐 합격했다.
7월9일(금), 에티오피아여자와 웬투안 등을 뺀 합격생들은 다들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전날 DMV에서 받은 합격증(운전교습 허가증)을 꺼내들고 기뻐하는 이들도 있었다. 깜짝 해피뉴스가 우리를 더욱 기쁘게 했다. 그날 방과후 숙소이동, 레드 타일 인에서 홀리데이 인으로 바뀌었다. 퀴퀴한 냄새에 수북한 먼지에, 그 옛날 여인숙 같은 레드 타일 인에 비하면 홀리데이 인은 비까번쩍 호텔이었다. 나는 룸메이트가 먼저 떠난 덕에 이틀동안 홀로 썼다. 홀리데이 인 체크인 때 맨 뒤에 섰는데 마침 홀수여서 또 독방차지였다. 방배정은 2인1실 기준이다. 부부나 연인이 아닌 한 남녀는 따로다. 레드 타일 인은 흡연실 비흡연실 따로다. 홀리리데이 인은 전부 비흡연실이다. 미리 짝을 지어 한 방을 달라 하면 대개 그렇게 해준다. 나머지는 순서대로다.
필기시험 합격에 이은 숙소이동, 그것은 뭔가 격상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처음 맞는 토요일 단축수업과 일요일 꿀맛휴식, 그 해방감까지 어우러져 학교에서도 숙소에서도 대개들 환한 얼굴이었다. <계속-정태수 기자>
◇필기시험 예제풀이
아무리 족집게 과외라 해도 시험은 시험이다. 특히 영어가 서툴다면 예습을 해두는 게 좋다. DMV에서 Commercial Driver Handbook을 구해 섹션 1부터 6까지 숙독하고 인터넷 검색어에 CDL test를 쳐 연습문제를 반복해서 풀어보면 도움된다. 단순히 시험용이 아니다. 실전에 요긴한 것들이다. 무작정 답만 외워 합격한 뒤 잊어버리기엔 아까운 내용들이다. 핸드북은 DMV 인터넷에서 프린트할 수도 있다(www.dmv.ca.gov/pubs/comlhdbk/comlhdbk.pdf).
필기시험은 문답지(위)와 과목별 예상문제집(바탕). 처음에는 어렵지만 DMV 직원이 채점 뒤 틀린 곳에 표시를 해주니 정답을 숙지해 다시 치면 대부분 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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