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서부 2회왕복 실전운전 12박13일
▶ 3명 교대로 밤낮없는 1만여마일 행군
17시간 같은 17일이었다. 17개월 같은 17일이었다. 간신히든 무난히든 CDL(상업용 운전면허)을 받았다. 스튜던트 드라이버로 입사원서에 사인하고 수습사원 오리엔테이션을 받은 7월21일(목) 저녁, 홀리데이 인 수영장 옆에서 파티를 벌였다. 맥주나 소다를 곁들여 즉석구이 스테익과 치킨을 먹으며 왁자지껄 얘기꽃을 피웠다.
교관의 말투를 흉내내며 웃기는 친구, 주행연습 때 깜박 후진기어를 넣어 사고낼 뻔한 순간을 깔깔대며 풀어놓는 친구, 좀 쉬고 싶은데 다음날 새벽에 샌디에고로 간다며 입맛을 다시는 친구, 트레이너(스튜던트 드라이버의 운전교관)를 배정받지 못했다며 언제 어디로 갈지 궁금해하는 친구, 트레이너가 여자라고 하이파이브까지 해가며 키득대는 친구….
나는 하루 더 쉬고 7월23일 낮 12시에 인디애나로 떠날 예정이었다. 그렇게 하나둘 ‘정처 없는 임지’로 흘어질 것이었다. 첫 등교 때 회사측이 승용차 이용을 만류하고 버스표를 보내주는 건 면허취득 뒤 속개되는 ‘돈벌이 만행’ 때문이었다. 그래도 자가용을 이용한 친구들은 야드 한켠에 장기간 세워놓고 가야 했다.
내 트레이너 엘리손도는 텍사스 출신 히스패닉계였다. 숙소로 찾아와 나를 픽업한 그는 출발에 앞서 곧장 현장교육을 펼쳤다. 기름때 얼룩진 트럭용 지도책을 뒤져가며 샌버나디노에서 앤디애나까지 노선(I15N, I76E, I80E 등)을 익히게 했다. 트럭에는 또다른 실습생 마이크가 있었다. 필라델피아 출신으로 댈러스 운전학교를 마친 이 20대 백인청년은 수습 3주째였다.
바스토우부터 내가 운전했다. 내 생애 첫 돈벌이 운전이었다. 누가 얼마나(거리/시간) 했는지는 차내 전자시스템(퀄컴)에 의해 보고되고 기록된다. 이를 기초로 주급이 산정된다. 나는 마일당 12센트, 엘리손도는 40센트가 넘었다. 최초의 12센트를 위한 출발. 학교에서 하던 대로 2단에 놨더니 스타트가 안됐다. “화물을 실었을 때는 1단으로.” 두번째 현장교육이었다. 두어시간쯤 지나 라스베가스로 넘어가는 고갯길은 나를 더 시험했다. 속도가 자꾸 떨어졌다. 그에 맞춰 기어를 제때 낮춰야 했다. 잘 안됐다. 그러다 멈춰버렸다. 다시 출발했다. 십리도 못가 또 엔진이 멎었다. 운전대는 마이크에게 넘겨졌다. 2주 뒤 나도 저럴까 싶게 그는 능숙했다.
라스베가스의 맥도날드에서 점심 겸 저녁을 때웠다. 프렌치 프라이즈까지 남김없이 해치웠다. ‘밥’ 문제는 조수생활 12박13일(7월23일~8월4일)은 물론 집 떠난 날 저녁참부터 내내(7월3일~7월23일) 골치였다. 컵라면과 햇반은 금방 동났다. 학교생활 때 아침제공 모텔에 묵었지만 새벽등교라 먹은 적이 별로 없었다. 점심은 식당차에서 햄버거나 버리토 아니면 핫도그를 사먹었고, 저녁은 주로 숙소인근 서브웨이에서 해결했다. 조수생활 때는 밤낮없이 달리는 트럭을 3명이 번갈아 운전하니 식사시간도 수면시간도 제각각이었다. 그래선지 뒷일도 고역이었다. ‘잠’ 문제도 보통 아니었다. 엔진소음과 담배연기(엘리손도와 마이크는 담배나 시가를 물고 살았다) 속에 달리는 침대 위의 잠은 늘 어설펐다. 엘리손도와 마이크는 잘도 잤다. 소음을 뚫고 코고는 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남가주에서 유타 콜로라도 네브라스카 아이오와 일리노이 거쳐 인디애나까지 2박3일, 사흘만에 나는 샤워를 했다(하이웨이 중간중간 트럭전용 스테이션에 샤워실과 세탁실이 있다. 공교롭게 수면시간과 겹쳐 때를 놓쳤다). 인디애나에서 트레일러를 바꿔달고 오하이오 거쳐 펜실베니아까지 1박2일, 뉴저지로, 시카고로, 다시 콜로라도로, 이번에는 로키산맥을 넘어 오리건으로, 콜롬비아 강을 건너 워싱턴주로, 또 펜실베니아로.
번잡한 곳이 아니면 평지운전은 별로 어려울 게 없었다. 산길은 달랐다. 실습동안 나는 5차례에 걸쳐 20시간 가까이 산길운전을 했다. 거의 언제나 힘들었다. 8월1일, 펜실베니아발 켄터키행 밤샘운전 시작직후 나는 다리밑 커브길을 타고 하이웨이에 진입하다 가드레일에 뒷바퀴가 긁히는 사고 아닌 사고를 냈다. 뒤이어 웨스트 버지니아로 넘어가는 산길을 오르다 두어시간만에 차가 섰다. 설익은 다운쉬프팅 때문이었다. ‘현대’의 주식을 갖고 있다면서 처음부터 살갑게 대해줬던 엘리손도는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설명하며 험한 산길을 능숙하게 요리했다. SF 깔끄막길 같은 경사도 8% 내리막을 씽씽 달리면서 그는 비바람 눈보라 허리케인 토네이도 등 악천후 경험담을 들려줬다. 내가 지레 겁먹은 시늉을 하면 “잘할 거에요, I-84 웨스트(오리건으로 갈 때)에서 아주 잘했잖아요” 하고 격려해주곤 했다. 아슬아슬 산길에서의 재잘재잘 차내수업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던 8월2일 새벽 2시쯤(동부시간), 난데없이 걸려온 전화 한통 때문에 나의 돈벌이 운전 커리어에는 쉼표가 찍혔다. 만사 제쳐두고 북가주로 돌아와야 했다. 엘리손도의 보고를 받은 인사담당자는 얼굴 한번 못봤는데도 오래된 친구와 헤어지는 것처럼 아쉬워했다.
숙소에서 19박20일, 도로에서 12박13일, 길 위의 300시간 중 땅을 밟아본 건 40여시간, 총 주행거리 1만여마일, 그중 마이 드라이빙 2천여마일, 지나친 곳을 포함해 25주…. 떼다 만 걸음을 멈추고 나는 돌고돌아 8월5일 새벽에 집으로 돌아왔다. 33일만이었다. 그 사이에 좀체 변동없는 내 몸무게는 7파운드나 줄었다. 수습사원 오리엔테이션 다다음날인가 50몇달러였던 내 샐러리카드의 잔고는 500몇십여달러로 늘었다. <끝-정태수 기자>
◇앞으로 내 CDL은?
언제 어떻게 쓸지 모른다. 어렵게 땄으니 쓸 일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어렵게 땄지만 쓸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교차한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어쨌든 어려울 때 써먹을 보험에 든 것 같은 기분이다. 때가 되면 위험물 취급차량이나 버스운전 자격도 취득할 생각이다. 해당부문 필기시험만 통과하면 기존 CDL 뒤에 인증표시를 해준다. 특히 ‘위험물…’은 취업 잘되고 샐러리 높은 보증수표라고 한다. 일정한 경력만 쌓으면 객지로 떠돌지 않고 출퇴근하면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많다. 돌봐야 할 자녀가 없다면 부부가 장거리전담 팀드라이버로 일하는 것도 좋다. 월 1만달러 이상 수입은 무난하다. 그렇다고 장밋빛 환상은 금물이다. 상당한 체력과 정신력, 집중력과 주의력을 요한다. 면허취득과 현장실습은 꽤 팍팍하다. 혹시 몰라 밝혀두면 내 몸무게가 7파운드 빠진 건 음식 등 달라진 생활패턴과 시쳇말로 ‘조수생활 뺑뺑이’ 때문이었다.
수습사원 입사 뒤 받은 사원ID카드, 샐러리카드, 연료카드(왼쪽부터). 바탕은 클래스A 임시면허증과 신체검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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