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피드로 해안가 언덕 위에 한국 정 부가 기증한 우정의 종각이 있다는 것 은 알고 있었지만 LA 지역에 정착한지 25년이 넘도록 가본 적은 없었다. 지난 8일 해풍에 부식된 종 걸이 교체 및 종 각 설치 35주년 기념 타종식이 있다하 여 종소리도 들어볼 겸 구경 가기로 했다.
밝고 따사한 전형적인 남가주 날씨와 상쾌한 공기, 멀리 카탈리나 섬까지 보 이는 막힘없는 바다 전망을 배경으로 넓은 잔디밭 끝에 한국적 곡선미를 자 랑하는 청기와 지붕의 종각 건물이 서 있었다.
행사 뒤풀이로 전통무용과 두레패의 사물놀이 공연이 있었고 켠에서는 우 정의 종각을 그리는 수묵화 시범도 있 었다. 오랜만에 접하는 한국적인 그림, 율동과 리듬에 넋을 빼앗겨 버렸다.
마지막에 타종행사가 있었다. 아마 일 제시대 때부터의 관행으로 짐작되는데, 행사주관단체 관계자 및 내빈들이 종치 기로 나서서 타종을 하다 보니 동작의 부조화로 혼선이 있었고 그러는 와중에 종소리보다는 몇 번 타종했는지 숫자 세느라 온 신경을 쏟는 등 어수선함이 있었다.
신라시대의 범종을 모델로 고증과 심 혈을 기울여 제작된 우정의 종을 아무 런 사전 지식 없이 즉흥적으로 친다는 것은 소중한 문화 자산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전담 종 치기 자원봉사자들을 선발 훈련하여 타 종 행사 때마다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 하고 싶다.
전통방식에 따른 타종 방법에 따라, 종 소리의 질과 감이 현저히 달라 질 수가 있다고 본다. 얼마나 한국 고유의 종소리를 제대로 내고 잘 감상할 수 있는 지에도 초점이 맞추어 진다면 더 욱 의미 있는 행사가 될 것이다. 전문 적 훈련과정을 거친 전담 종치기가 전 통의상을 갖추고 고증을 거친 전통방 식으로 타종한다면 행사의 격이 높아 질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우리 고유 천년의 소리를 트레이 드마크로 등록한다면, 보호를 받는 동시 에 널리 홍보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MGM 영화의 첫 머리에 나오는 사자 의 표호 소리나, 뉴욕 주식시장의 마감 을 알리는 종소리, 또는 한때 논란이 되 었던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의 배기 음 등과 같이 우리 고유의 종소리에 대 한 권리를 보호 받을 수 있는 장치도 염 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원래 작곡 의도와는 달리, 미국 독립기념일마다 자주 연주되 는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에 삽 입된 대포 소리처럼, 우정의 종소리가 삽입된 창작곡을 한인을 비롯한 전 세 계 음악인들을 대상으로 현상 공모하여, 선정된 우수한 작품들을 우정의 종을 배경으로 연주하는 꿈도 꾸어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연주회가 이름 있는 행사 가 되고 여기서 나오는 수익으로 종각 보존 경비를 자체 조달하는 기대도 해보자.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으로 프랑 스 정부가 기증한 자유의 여신상은 세 계적인 명물로 자리 매김되어 온 반면, 한국 정부가 200주년에 기증한 우정의 종은 샌피드로의 언덕위에 해풍에 녹 슬어 가며 침묵해 있는 형국인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나 여기에는 자유의 여신상에 없는 천년의 소리가 숨어 있다. 침묵에서 깨어나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국의 소리를 들려주어야 할 때 가 된 것 같다. 하드웨어는 이미 준비되 어 있다. 소프트웨어의 부재가 문제다.
예산난으로 종각이 있는 공원 유지도 버거운 LA 카운티에 기대하기 보다는 미주 한인사회와 한국정부가 나서야 할 것 같다.
현재 시급한 것으로 종각의 퇴색한 단청의 복원, 종의 표면 수리 및 청소, 갈매기 등 야생 조류 퇴치설비 등이다. 종각의 내부 종 주위에 개폐가 가능한 유리 보호막을 설치해 보는 방안도 검 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종각의 본래 모 습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풍의 부식작용, 조류의 배설물, 낙서 행위 등으로 부터 종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며 종각의 관리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인신환/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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