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자들 도움 필요할 때 KCCEB 있었다
▶ 타인의 어려움 돕다 이민 클리닉으로 발전, 중국계 자원봉사자 리처드 시우
70년대 이민 법 개정과 함께 대대적으로 시작된 한국인의 미국이민은 1980년대 그 절정에 달했다. 이에 발맞춰 KCCEB는 공식적으로 이민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됐다.
1990년도에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원 봉사 이민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토요 이민 클리닉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초기 KCCEB에서 봉사한 대표적 이민 변호사로 샌프란시스코 연방이민법원의 중국계 조렌 라이온스 판사를 꼽을 수 있다. 약20년간 KCCEB 이민 클리닉에서 자원 봉사를 했다.
KCCEB의 이민 프로그램은 한인사회의 요구를 적절히 반영하면서 시대에 따라 서비스를 조금씩 달리해 왔는데 2011년에는 프로그램 강화와 함께 이민자 통합 증진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바꾸게 됐다. 개명은 두 가지 큰 의미를 지닌다.
첫 번째는 KCCEB가 미 연방이민국 공식지정 인증절차(BIA accreditation)를 마친(허가pending) 북가주 유일의 한인기관이 됨에 따라 더욱 공신력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게 됐다. 두 번째는 이민사업의 궁극적 목표인 한인사회의 권익신장을 통한 한인 생활향상에 그 목표를 둔다는 점이다.
이같이 KCCEB의 성장에는 많은 숨은 자원봉사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리처드 시우(Siu)씨는 중국계 교포로 지난 20여년간 토요 이민 클리닉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공헌자다. 그는 이번 ‘제35회 연례 만찬’에서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커뮤니티 자선공로상을 수여하게 됐다. 시우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봉사에 대한 열정과 KCCEB의 90년대 상황을 조명해본다.
◇오클랜드로 이민 왔을 당시 상황은 어때나.
▲1956년도에 가족이 난민으로 이민을 왔다. 난 당시 한살이었다. 싱가포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처음 살던 곳은 오클랜드 차이나타운에서 버스를 타고 5마일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부모님이 동네 귀퉁이에서 조그마한 식료품가게를 운영했었다. 전형적인 이민 가족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클랜드 북부지역에서 자랐고 원래는 백인 지역이었는데 흑인계 미국인이 차츰 많아졌다. 그 뒤 중국계를 비롯한 동양계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60년대 초반 유년 시절을 보냈으니깐 그때쯤 이민법(1965년)이 슬슬 생기기 시작하던 때였다. 당시엔 진짜 많은 이민자들이 밀려들어오던 때였다. 주민들 간에 끊임없는 갈등이 있었다. 시민권리 운동이 일어날 무렵이었고, 이민법이 생기던 시기였고, 정치적인 상태와 제3세계에서 시민운동 저항운동이 일어났다. 다소 폭력적인 시민운동도 일어났던 시기였다. 반전운동이니 제3세계 스트라이크, 다인종문화, 노동, 지역운동 지원 등으로 시민운동이 여기저기 일어나던 시기였다.
◇어떻게 이민자들의 문제나 이민자 클리닉에 관계하게 됐나.
▲1972년 UC버클리대에 입학후 여러 가지 시대 상황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여러 활동에 관여하게 되었다. 학생운동 같은 활동을 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사회현상을 엿볼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로선 무척이나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그러한 사회운동이 활발한 때였다. 중국계 진보연합의 멤버이기도 했다.
당시 스탠포드 법학과 출신들 친구 중에서 부모들이 이민문제로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냈고 부모의 시민권 진행 절차를 도와주다보니 도움이 타인에게 확대되고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민 클리닉 초기의 모습은 어때나.
▲텔레그래프와 35번가에 있던 빌딩을 이용했다. 고속도로 바로 옆에 붙어있던 빅토리아 식 건물이었다. 1996년도에 국회에서 이민법 개혁이 한 차례 있었고 정부에서 그 당시 상당히 큰 복지법 개정이 있었다. 시민권을 취득해야만 복지혜택, 푸드 스탬프, 현금 지원부분 등의 공공 혜택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개정 내용이다 보니 엄청난 인원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시민권 취득을 하려했다. 신청자가 가장 많았을 때는 한번에 45명이나 밀어닥쳐서 시민권 신청을 했다. UC버클리에서 한국말을 잘하는 많은 법학과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생 등 의 자원 봉사 덕에 운영이 가능했다.
◇그 시기에 지금 연방 법원 판사인 조렌 라이온씨도 학생으로 자원봉사를 했나.
▲조렌은 생화학과 학부생이었다. 처음에 이민자 인터뷰 준비를 많이 도왔던 것이 생각난다. 이 친구가 백인이다 보니 항상 인터뷰어 역할만했다.(웃음). 그후 조렌이 이민관련 업무가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 즈음에 로스쿨을 가기로 마음을 먹고 이민관련 변호사가 되는 계기가 됐다. 그런면에서 보면 우리가 봉사했던 이민 클리닉이 이 친구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최근 드림법안이 캘리포니아에서 통과됐다. 연방정부에서 어떤 결정을 할지 이민자 모두가 지켜보는 사안이다. 드림법안에 대해 말해 달라.
▲드림법안은 정말 중요한 현안이다. 물론 단계적 수순이지만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한 걸음이 될 것 이다.
몇 년 전 조렌이 필리핀에서 온 사람들의 이민 재판 케이스에 대해 얘기한 게 생각났다. 자녀가 미국 출생은 아니지만 아이가 어렸을 때 이주해왔다. 부모가 사기혐의로 강제추방 명령을 받을 상황이 됐다.
드림법안은 바로 이런 상황에 적용됩니다. 이 아이들이 여기에서 지낸다면 부모들도 여생을 여기서 보낼 수 있도록 해주는 법안이다. (그런데 이 법안이 실효되기 전이어서)이 가족들은 끝내 모두 추방돼 아이들은 전혀 기억에도 없는 필리핀의 어느 곳으로 돌아가야 했다는 것이다. 나도 1살 때 미국에 와서 싱가포르가 어떤지 전혀 기억을 못한다. 그러한 상황은 정말 이 가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줄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런 상황들은 많았다.
드림법안은 이러한 상황을 경감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법안들은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야한다. 긍정적인 소식은 뭔가 새로운 것들이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되면 미전역으로 확산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거다. 이런 전례들을 고려할 때 희망을 한 번 가져볼 만하다.
◇혹자는 자원봉사에 세가지형태가 있다고 한다. 물질적 도움, 전문 지식이나 기술로 도와 주는 것, 시간을 나주어 주는 것 등이다. 자원 봉사는 시간과 전문지식 또는 기술을 종합한 자선의 방법이라고 본다. 20년이 넘도록 자원 봉사로 몸소 이를 실천한 사람의 입장에서 자선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자신이 먼저 사전을 좀 찾아봐야할 것 같다.(웃음) 사전적 의미는 ‘모든 인간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헌정하거나 도모하는 것’ 이라고 나와 있다. 난 ‘자선’은 자신이 커뮤니티 전반의 일원이라는 것을 깨우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나 커뮤니티 모두 기본적으로 선한 것으로 보고, 그 지점에서 시작해서 인간 본연의 선을 연장시키고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사회 전체를 그런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꾸고, 북돋워 주면서 서로 돕고, 서로 지지해주고, 힘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의 연속,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자선의 의미이다.
그런 면에서 KCCEB의 이민 클리닉은 나에게 감사한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고 감사를 표하고, 타인을 위해 봉사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인터뷰: 이윤주 관장
자료수집 및 기사보조: Angela Lee (이수진)
KCCEB에서 봉사자로 오랫동안 활동한 중국계 리처드 시우씨가 KCCEB 직원들과 이민클리닉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KCCEB 초창기 이민클리닉에서 이민자들의 귀와 입의 역할을 해주었던 자원 봉사자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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