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여.
세상의 모든 모순 위에서 당신을 부른다.
괴로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아라
순간적이 아닌 인생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게도 지난 몇 해는 어렵게 왔다.
그 어려움과 지친 몸에 의지하여 당신을 보느니
별이여. 아직 끝나지 않은 애통한 미련이여.
도달하기 어려운 곳에 사는 기쁨을 만나라.
당신의 반응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나도 당신의 별을 만진다.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중에서>
꼭 만나고 싶은 시인, 맨 윗줄에 마종기 시인이 있었다. 그의 시를 한 편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감동 아니면 전율, 아픔 아니면 눈물을 부르는 그의 시들은 자신의 상처와 우리의 상처를 함께 꿰매고 싸매어 사람을 한없이 착하고 약하게 만든다.
절대로 착하고 약해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 우리는 그의 시를 읽으면서 비로소 감춰놓은 선한 마음 몇자락을 끄집어내 목놓아 울게 된다. 그리고도 이민자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감상의 결을 가진 그의 시는 우리들의 심장에서 다시 살아나고 저며들기를 반복하며 그 무슨 대단한 시인도 줄 수 없는 위로와 공감으로 가슴을 흔드는 것이다.
의사와 시인-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개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 미국과 한국-두 나라에서 모두 성공했고 존경받는 인물, 한국 교과서에 시들이 실려 있고, 이름마저 특이하여 한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시인, 한국일보 문예공모 심사위원을 제1회부터 30회까지 무려 30년 동안이나 맡으면서 미주한인문학계에 특별한 업적을 남긴 문단의 어른…
제1회 고원문학상 수상자로 시상식 참가차 LA를 방문한 마종기 시인을 지난 16일 한인타운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언제나 사진에서 보았던 잘 생긴 얼굴, 자로 잰 듯 반듯한 이목구비가 영화배우처럼 수려한 마 시인은 도무지 72세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젊고 아름다웠다. 인터뷰를 마쳤을 때 무엇보다 감사했던 것은 그의 시를 읽으면서 가졌던 환상과 기대가 조금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좋은 시인, 좋은 의사일거란 나의 믿음을 넘어 ‘좋은 사람’이었다.
-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고원 선생은 평소 아끼는 마음을 가졌던 분입니다. 선생이 발간하는 문학잡지를 돕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고, 장례식에도 참석 못했는데 이번 시상식에 오길 잘 한거 같네요. 사실은 한달 전에 박두진문학상도 수상했는데 시상식엘 못 다녀왔습니다. 박두진 시인은 연세대 의대 시절 나를 현대문학에 ‘해부학 교실’ 추천으로 등단시켜준 은사셨지요. 시상식엔 못 갔지만 상금 1,000만원은 모두 대한문학의학학회에 기증했습니다.
-문학잡지를 돕지 못했다는 말은?
▲내 시를 한편도 드리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원고료 없는 매체에는 작품을 주지 않는다는 철칙 때문이었죠. 40여년 미국 살면서 단 한번도 예외가 없었어요. 아버지의 영향입니다. 아버지가 글 써서 받은 원고료로 나를 학교에 보냈거든요. “글쓰기도 노동인데 노동의 댓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지금도 아버지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상금을 기증한 문학의학학회는 어떤 단체입니까?
▲의학과 문학의 접목을 위해 2년전 내가 창설한 단체입니다. 2002년 은퇴한 후 연세대 의대 본과학생들에게 ‘문학과 의학’을 한 학기씩 강의하고 있어요. 미국서는 80년대 초부터 의대에서 문학강의가 시작돼 지금은 일반화돼있는데 한국서는 처음이죠. 의학은 과학이지만 의사는 인간을 상대하므로 인간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인간을 가장 잘 표현한 학문이 문학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을 아는 의사가 돼야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중요한 과목입니다. 내가 학교 다닐 땐 상상도 못 했던 과목인데, 한국은 요즘 의사들 질이 안 좋아 그런지 학계와 언론에서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문학과 의학이 그런 것처럼, 시인과 의사는 아주 상반된 분야인데 어떻게 두가지를 다 잘할 수 있었습니까?
▲고교 때 문예반, 신문반에서 날렸기 때문에 다들 내가 문과로 갈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버지의 문우들을 보면서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대부분 가난했고 술만 마시면 ‘왜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느냐’고 억지 부리는게 싫었죠. 아버지의 권유로 연대 의예과에 진학했고, 갈수록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커지면서 의사라는 직업에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서울대대학원 마치고 군의관 복무 중 65년 한일회담 반대성명에 참여했다가 구속됐지요.
군인이 정치에 관여했다 하여 중정에 끌려가 심한 곤욕을 치른 후 조건부로 석방됐습니다. 열흘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함구할 것, 유학 준비하던 미국으로 금방 떠날 것, 다시는 돌아오지 말 것 등이었죠. 그렇게 떠나와 도착한 오하이오 시골에서의 인턴 시절 너무 힘들었습니다. 피곤에 절어 늘 피와 죽음 가까이 있다 보니 너무 외롭고 힘들어서 시를 쓰게 됐어요.
매일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보고 부검하는 일, 게다가 문화충격까지 겹쳐 고통스러운 나를 구원한 것이 모국어와 문학이었습니다. 의사노릇하면서 아무도 위로할 수 없는 나 자신을 위해 시를 쓰고 사랑하는 모국어에 빠져 지내는게 유일한 낙이었지요. 시간 날 때마다 산 속에 들어가 시 쓰고, 그렇게 살다보니까 양쪽 다 잘하게 된 듯합니다.
-시가 슬픕니다. 슬퍼서 쓰는지요, 아니면 시가 슬픈 방향으로 가는지요?
▲시가 가는 것 같아요. 미국의 유명한 의사 시인 중에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뉴저지에서 가정주치의로 평생 살았던 뛰어난 시인인데 그가 “외롭지 않은데 외로운 시를 쓴다. 외로움은 인간의 본성이며 누구나 외롭다. 좋은 시는 외로운 존재의 느낌을 시로써 승화시킨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에 100% 동의합니다.
-시는 시인에게 무엇인가요?
▲평생의 위로였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 쓴 것이니까 처음엔 사람들에게 내 시를 이해해달라고 할 수 없었죠. 그런데 갑자기 어느 날 내가 받던 위로를 다른 사람이 받더군요. 개인적인 위로가 보편적 위로도 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러기 위해 감성적 울림을 조심해서 써야겠다, 생각을 많이 하고 보편성 있는 표현으로 나타내야겠다, 뚜렷하고 명확하고 좋은 표현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써왔습니다. 요즘도 표현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서 남의 좋은 시들 많이 보고 있습니다.
-미주 시인들은 어떻게 봅니까?
▲노력과 공부가 약합니다. 한국의 시인들은 쓰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쓴다는 각오로 열심히 쓰고 공부하며 몰두해서 시를 쓰는데, 이곳 시인들은 가만히 앉아서 펜대 굴리면 하루 밤새 시가 나오는 것처럼 안일한 태도를 갖고 있어요. 한국 시인들에 맞서서 나도 당신만큼 노력하고 공부한다고 자부할 수 있는 시인들이 돼야 합니다.
-근황을 들려주세요.
▲1년에 3개월은 한국서 강의도 하고 바쁘게 지냅니다. 플로리다에서 살고 있는데 여름엔 날씨가 좋지 않아 여행을 많이 하고 북부 피츠버그 사는 자녀들을 방문하기도 하죠. 겨울엔 친구들과 한국의 문인들이 많이 놀러옵니다. 가깝게 지내는 신경숙도 얼마전 다녀갔지요. 아들 셋에 며느리가 모두 한인인 것이 자랑이구요, 장남은 피츠버그대 안과의, 둘째는 미시건에서 변호사, 셋째는 피츠버그에서 파이낸셜을 하고 있고 손자 5명에 손녀가 3명입니다.
<글 정숙희 기자·사진 이은호 기자>
#마종기 시인은
아동문학가 마해송과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무용가 박외선의 장남으로 태어나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66년 미국으로 건너와 우리나라 최초의 방사선과 전문의가 되었다. 오하이오 의대 소아과와 방사선과의 임상 정교수로 가르쳤고, 톨레도 아동병원 방사선과 과장과 부원장을 역임했다. 2002년 은퇴 후 연세의대 초빙교수로 ‘문학과 의학’ 과목을 신설, 지금까지 강의하고 있다.
초등학교시절부터 동시를 썼고 1959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그는 의대 재학시절 첫 시집 ‘조용한 개선’을 출간하여 제1회 연세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도미 후에도 계속 시집을 내면서 한국과 미국의 시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국문학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변경의 꽃’,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이슬의 눈’,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하늘의 맨살’ 등 12권의 시집을 냈다. 작년에 나온 시작 에세이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를 읽으면 여린 감성과 눈물 많은 시인의 마음, 그이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다.
시인은 특별히 사랑했던 동생(마종훈)을 94년 강도의 총에 잃고 상심한 마음도 시로 달랬으며, 올해 초 살인범의 사형집행을 반대하는 탄원을 내서 시카고 트리뷴을 비롯한 주류언론에 크게 보도되어 화제가 됐으나 결국 지난 3월 사형이 집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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