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先조의성명ㆍ한미공조 뒷전..엿새뒤 YS와 첫통화
오바마, 즉각 MB와 심야통화..절제되고 조율된 대응
한미관계의 변화, 북핵해법 시행착오의 교훈 반영``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지금까지 보여준 초동 대응은 17년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빌 클린턴 행정부의 대응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94년 7월이나 2011년 12월 모두 북한 최고 지도자의 사망을 북한 매체 보도를 통해 비로소 처음 알았다는 것과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 한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위기관리 대응 매뉴얼은 뚜렷한 차이를 나타낸다.
오바마 행정부는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를 뒤흔들 돌발사태를 맞아 미국내 여론은 물론 한미공조를 우선하면서 신중하고 조율된 대응으로 상황을 관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22일(현지시간) "미국은 김일성 사망때와 비교할 때 동맹 및 우방과의 논의, 국제공조를 바탕으로 훨씬 치밀하고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동안의 한미관계, 북핵수준, 외교안보팀의 인식 변화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두 대통령 가장 먼저 취한 행동 차이 = 빌 클린턴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을 비교하면 이 차이는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당시 G7(선진 7개국)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이탈리아 나폴리에 머물던 클린턴 대통령은 현지시간으로 1994년 7월9일 새벽 5시 30분께 김일성 사망을 보고받았다.
그로부터 불과 3시간여가 지난 후 클린턴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의 사망에 대해 "미국 국민들을 대신해 북한 주민들에게 심심한 애도(condolence)의 뜻을 전한다"는 조의 성명을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일요일인 지난 18일 밤 11시가 넘어 북한 매체의 보도후 김정일 사망 사실을 보고받았고,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그날 자정 이명박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가졌다.
반면 1994년 7월 클린턴 대통령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전화통화는 김일성 사망후 무려 엿새나 지난 14일 밤(서울시간 15일 오전)에야 처음으로 이뤄졌다.
김일성 사망후 미국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조의성명 발표였고, 한국 대통령과의 통화는 엿새 후에나 이뤄졌다. 이에 비해 김정일 사망후 미국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한 일이 한국과의 통화였다는 사실은 17년이 흐르는 동안 북한해법ㆍ전략, 한미관계 수준 등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읽을 수 있는 장면이다.
김일성 사망을 앞둔 시점은 북미관계와 북핵문제에서 매우 중요한 때였다. 김일성의 결단으로 북한이 북미 제네바 핵대화에 나섰고 남북정상회담을 보름여 앞둔 협상의 흐름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이 신속히 조의성명을 내고 대화 지속을 촉구한 것도 후계자 김정일이 김일성의 뒤를 이어 대립이 아니라 협상을 선택하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제1차 북한 핵위기를 통해 국제사회에 처음 북핵문제가 대두됐던 당시만 해도 적극적인 대화(engagement)를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게 미 행정부내 판단이었다. 이 때문에 제네바의 협상 모멘텀을 계속 살려가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가는 `레드 라인(red line.금지선)’을 넘지 않도록 하겠다는 미국의 일방적 의지는 강했지만, 한반도 정세 급변상황을 함께 관리한다는 한미공조에 대한 인식은 희박했거나 뒷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만 해도 동북아 정세를 관리하는데 있어서 미국의 외교안보팀 내부에 한국은 동맹국임에도 불구, `파트너’라는 인식은 약했다는 해석이다.
김영삼, 클린턴 대통령간 관계도 매끄럽지 못했지만, 기본적으로 한미관계가 성숙한 단계가 아니어서 두 정상간 통화가 `한참뒤’에야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7년이 지난 지금 `북한에 속고 속았던’ 북핵 해결과정의 시행착오, 두 차례의 핵실험을 거치며 그때와는 다른 북한핵 수준, 한미관계의 업그레이드 등으로 북한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미국의 인식은 확연히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소식통은 "김정일 사망후 미국 대통령이 자정이 넘은 시간임에도 가장 먼저 한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가졌다는 것은 그 자체가 상황을 앞으로 어떻게 관리하겠다는 것인지를 나타내는 중요한 메시지"라고 말했다.
◆`나홀로’ 발표 vs 협의하느라 늦게 발표된 `조의’ 성명 = 조의 문제에 대한 대응도 그때와 지금은 달랐다.
김일성 사망당시 미국은 대통령 명의의 조의 성명을 `홀로’ 발표했다. 반면 한국은 아예 모든 조문과 조의 표명행위를 금지함으로써 남남갈등이 증폭되는 사태를 초래했다.
클린턴 대통령도 김일성 조의 성명으로 미국내 정치적 논란에 휘말렸다.
당시 공화당 원내대표이던 밥 돌과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과 그 가족들을 고려하지 않은 모욕적인 성명"이라고 비판하며 공식 사과를 요구했고,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성명"이라고 맞섰다.
과거의 교훈때문인지 오바마 행정부는 김정일 사망을 맞아서는 그때와는 다른 접근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나서 "북한 주민들에게 염려와 기도(thoughts and prayers)를 전한다"는 말로 `조의’ 성명을 대신했다.
김일성 사망때 논란이 됐던 `애도’(condolence)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김일성과 김정일을 바라보는 미국내 여론의 온도차도 반영됐다. 두 지도자 모두 `악’(惡)이지만, 김일성은 미소 냉전의 산물로 잉태된 공산주의 북한의 창건지도자라는 인식도 있었던데 반해, 권력을 세습한 김정일은 북한 주민들을 고통스럽게 한 폭군 독재라는 혐오감이 미 의회내에는 강하다.
특히 `조의’ 성명도 미국 독자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한국과의 조율을 우선시했다. 협의없이 `나홀로’ 성명을 냈던 1994년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은 성명이 미 동부시간으로 19일 밤 9시가 넘어서 발표된 점을 의식해 이튿날 브리핑때 "밤늦은 시간에 성명을 내 미안하다"고 출입기자들에 사과하며 "하지만 6자회담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 협의하느라 당초보다 발표시점이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빌 클린턴과 대비되는 오바마의 `절제’ = 김일성 사후 많은 말을 뱉어낸 클린턴 대통령과는 달리 오바마 대통령은 아주 절제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백악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김정일 사후 북한 동향을 수시로 보고받고 있다고 브리핑했고, 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반도 안정과 맹방인 한국의 안보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공개적 언급은 삼가고 있다.
그의 `침묵’은 김일성 사망 당시 클린턴 대통령이 부리나케 조의 성명을 내자들과 만나서는 북한이 미국에 김 주석 장례식에 참석하도록 초청할 경우 응하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핵협상도 빨리 재개되기를 원한다고 직접 밝힌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신 오바마 행정부는 클린턴 장관을 통해 "북한의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전환(transition)을 원한다", "북한의 새 지도부는 한반도 평화, 번영, 항구적 안보를 위한 새 시대를 향해 국제사회와 협력하기 바란다"는 포괄적인 메시지를 내놓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적 언급을 삼가고, 정부 차원에서 함축적 메시지로 대응하는 것은 내년 대선을 앞둔 국내 정치적 측면도 고려됐지만 김정일 사후 북한 문제를 풀어가는 전략적 계산까지도 담겨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일성 사후 클린턴 대통령의 전향적인 움직임은 그 무렵 형성됐던 북미관계 개선 분위기를 적극 추동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었다.
그때만 해도 북핵문제가 외교무대에 처음 등장했고, 미국으로서는 `핵보유 북한’은 방치할 수 없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대통령의어젠다였다고 볼 수 있다.
그 덕분에 그로부터 3개월여후 북핵 제네바 합의가 도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시적인 북미관계 개선에도 불구, 매끄럽지 못한 한미공조, `조문’ 파동으로 인한 남북관계 후퇴, 북한의 약속 불이행 등을 거치며 결국 제네바 합의는 파기되고 북핵문제는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소식통은 "지금은 1994년 처음 북핵문제가 등장했을 때와는 다른 국면"이라며 "하루빨리 북한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생각보다는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한미공조를 비롯,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는 것을 훨씬 중시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고 말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당시 클린턴 대통령과는 달리 침묵하는 것은 북한 문제가 조급하게 달려든다고 당장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고 보고, 신중하게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전략을 가다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연합뉴스) 성기홍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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