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임진년 한인 이민 109주년을 맞이하여, 이덕희 이민사 연구가가 한국의 오래된 여권에 관한 글을 연재한다. 1월13일 미주한인 이민의 날에 즈음해 1월 한달 간 매주 수요일 4번에 나누어 연재되는 글에는 흔히 접할 수 없는 사진들도 포함된다.
<편집자 주>
여권이야기 <1>
여권은 구약성경시대 기원전 450년경에 이미 사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느헤미야 2장 7절에 페르시아 왕국 (현재의 이란)의 느헤미야라는 사람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하여 유대 땅으로 갈 때에 왕이 느헤미야에게 증서(편지)를 주어서 그가 경유하는 곳의 군주에게 보여 주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 증서는 국가(국왕)가 소지자의 신상을 밝히면서, 이 소지자가 다른 국가의 영토를 여행할 때에 지체 없이 그리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요청하는 것으로, 지금의 여권이다.
여권(旅券)의 영어 단어 패스포트(passport)가 ‘항구를 통과한다 (pass port)’에서 기인했다는 설과 불어의 ‘도성 문(portes)을 통과한다’ 는 것에서 기인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어떻든 여권이란 국경선 통과증인 것이다.
그렇다면, 왕인 박사가 일본에 갔을 때 (서기 410년) 백제의 여권을 가지고 갔을까? 혜초 스님이 당 나라로 유학 갔을 때 (서기 716년경) 신라가 발행한 여권을 가지고 있었을까?
신라나 백제에서 여권을 발급했는지, 어떤 형태의 여권을 발급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백제와 일본의 관계는 그야말로 내 집 드나들듯이 다닐 수 있었던 관계였기 때문에 여권이 필요 없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또한 신라와 당과의 관계도 여권이라는 증서가 필요 없었던 관계였을까?
1883년 8월 15일에 미국에 파견한 조선의 첫 외교사절단인 보빙사 (단장 민영익) 단원들이 여권을 소유했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소유했더라면, 이들의 여권이 외교관 여권이었을까? 보빙사의 단원이었던 유길준은 2개월 후 다른 단원들과 함께 귀국하지 않고 마사츄세츠 주 마니필드 소재 더머학교에 입학함으로서, 한인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 되었다. 유길준이 조선의 여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의 신분을 증명할 어떤 증서를 가지고 있었을까? 1886년 9월에 서재필이 펜실바니아주 윌크스베이 소재 해리힐맨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이름을 필립 제이슨으로 바꾸었는데, 그가 조선 여권을 가지고 있었을까?
서재필은 1888년 6월초에 이 학교를 졸업하면서 한인 최초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다. 아시아인이 미국 시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952년 이민법이 통과됨으로서 시작 되었는데, 어떻게 서재필이 1888년에 미국 시민이 될 수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그 후로 그는 미국 여권을 가지고 한국과 미국을 오갔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여권은 언제 그리고 누구에게 발급되었을까?
현존하는 오래된 한국 여권은 20세기 초 대한제국이 발행한 것으로 하와이에 있다. 1882년 5월에 조선과 미국이 조미통상수호조약을 맺은 후 조선은 영국 (1883), 이탈리아 (1884), 러시아 (1884), 불란서 (1886), 오스트리아-헝가리 (1902), 벨기에(1901), 그리고 덴마크 (1902)와 조약을 맺음으로써 ‘은둔의 나라’에서 서양 국가와 통상하는 개방된 국가가 되었다.
조미통상수호조약이 체결된 지 20년 후인 1902년 11월 5일에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는 미국의 영토 하와이로의 이민을 허락하면서, 미국인 데쉴러가 설립한 동서개발회사로 하여금 하와이 이민을 관장하도록 하였다.
또한 고종 황제는 16일에 궁내부 지령 90호로 궁내부 부속의 수륜원(水輪院)이란 기관을 확장하고 그 안에 유민원(綏民院)이라는 기구를 두도록 하였다. (한자 綏 는 ‘수’ 또는 ‘유’로 발음하는데, 당시 윤치호의 일기에 ‘유민원’으로 발음하여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유민원에서 해외로 유학이나 유람을 가거나, 농업, 공업, 상업 관계의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여행권을 내주고 또 해당 여행자들에 대한 단속규정을 엄격히 정하는 일을 관찰하도록 하였다. 1주일 후인 11월 23일에 고종황제는 당시 포훈원 총재 (지금의 보훈처장) 민영환을 유민원 총재에, 그리고 통신원 총판 (지금의 체신부 장관) 민상호를 부총재로 각각 직무를 겸임하도록 하였다.
유민원 설립 이전 1880년에 이미 조선의 함경도 관리가 중국 국경선을 넘나드는 사람들에게 ‘집조(執照)’를 발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에 여러 차례 수재가 있었고, 또 해마다 흉년이 들게 되면서 굶주린 백성들이 줄을 이어 도문강을 건너 중국의 황무지인 지금의 질린솅(吉林省 길림성) 지역을 개간하러 왕복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청나라를 왕복하면서 농사짓는 조선인들이 많아지게 되자, 함경도 관리가 이들에게 ‘집조’를 발급하였다고 중국 청나라 조선열전에 기록되어 있다. 그 집조에는 소유자가 어느 곳에, 얼마 크기의 땅을 개간한다는 것까지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조선 관리가 청나라에 가는 조선인들에게 발급한 여권(증명서)이었다.
이 집조는 남아있지 않아, 어떤 형태였는지 알 수 없지만, 한 장의 한지(韓紙)에 붓으로 쓴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집조라는 단어는 증명서라는 뜻으로, 지금도 중국의 질린성 옌지(延吉 연길) 지역 조선족(한인)들은 ‘증명서’ 또는 ‘증서’ 대신에 집조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계속>
<사진설명: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여권은 20세기 초 대한제국이 발행한 것으로 하와이에 있다. ‘ 사진은 김순권의 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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