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교포’ 출신 연예인들이 상종가를 치고 있다. ‘나는 가수다’로 국민요정으로 등극한 박정현부터 한예슬 등 미국 출신들이 한국 연예가를 휩쓸고 있다. 해외파 중에는 워싱턴 출신들도 톱스타 반열에 오른 이들이 꽤 된다. 그룹 ‘동방신기’의 아이돌 스타 믹키유천에서부터 가수 이현우와 제이는 가요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대표적인 워싱토니언. 연기자 중에는 최근 혜성처럼 떠오른 이필립과 신소미가 워싱턴 토종이다.
한국 연예계를 주름잡다 워싱턴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가는 이들도 많다. 이대근, 원미경 등 왕년의 스타에서 워싱턴의 이웃사촌이 된 이들이 주인공.
한국 연예계에서 화려한 꽃을 피우다 활동하다 자녀교육 등을 위해 워싱턴에서 제2의 인생을 열고 있는 연기자는 이대근, 원미경, 이구순, 최성준, 권미혜 등.
영화배우 이대근(李大根)은 버지니아와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1982년 가족과 함께 도미한 그는 워싱턴DC의 YWCA회관 구내매점을 운영하며 자리를 잡았다. 세 딸 중 큰 딸은 식품의약국(FDA) 고위 공무원으로, 둘째딸은 약학박사, 막내딸은 고등학교 교사로 키워냈다. 서라벌 예대 출신으로 60년대 데뷔한 그는 ‘김두한’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감자’ ‘심봤다’ ‘뽕’ 같은 영화에서 호쾌한 액션과 익살스런 연기로 당대의 스타로 군림했다. 연기자의 외길을 걸어온 그도 어느덧 70을 바라보는 나이로 지금까지 미국을 왕래한 것만도 5백 번이 된다고 한다.
이대근과 ‘변강쇠’에서 호흡을 맞춘 원미경(元美京)도 자녀교육을 위해 10년 전쯤 버지니아에 정착했다. 1978년 미스 롯데에 선발되며 TBC 20기 탤런트로 연기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이미숙, 이보희와 함께 8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리었다. 문화방송의 이창순 PD와 결혼한 그는 화려했던 연기생활을 잠시 접고 현재 게인스빌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다. 몇 해 전 헤이마켓의 배틀필드 고를 다닌 딸 예린이가 미술대회에 입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 ‘서편제’에 출연했던 배우 이구순도 90년대 버지니아로 삶의 터전을 옮겨 세탁소를 운영해왔다. 74년 MBC에서 연기를 시작해 극단 신예 대표를 맡았으며 KBS의 ‘우리에게 축복의 기도를’로 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2008년 결성된 워싱턴 방송인동우회 회장이기도 하다.
KBS ‘토지’에 출연했던 연기자 최성준(崔成俊)도 얼마 전부터 워싱턴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역시 ‘토지’에서 서희 역을 맡아 열연했던 최수지는 90년대 말 결혼과 함께 버지니아 비치 인근에 살다 몇해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1965년 KBS TV에 특채돼 탤런트로 활동하며 인기 드라마 ‘여로’에서 태현실의 시누이로 출연했던 권미혜도 몇년전부터 아들이 있는 버지니아로 이주해왔다.
워싱턴에서 살다 연기를 위해 한국행을 결행한 이들도 있다. 2007년 ‘태왕사신기’를 통해 데뷔한 후 KBS2 TV의 ‘남자이야기’에 출연한 이필립은 이수동 STG사 회장의 아들. 버지니아에서 태어나 조지 워싱턴대를 나왔으나 2005년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탤런트 신소미는 1995년 미스 워싱턴 미 출신으로 90년대 중반, 브라운관을 통해 데뷔했다. 지난해 MBC ‘매일 그대와’에 출연하기도.
가수는 이 시스터즈 같은 원로에서부터 아이돌까지 10여명이 워싱턴과 인연을 맺고 활동 중이다. 한국 진출파로는 동방신기의 믹키유천(본명 박유천)이 가장 성공한 케이스. 그룹 동방신기 멤버이며, 현재 JYJ로 가수 활동을 하고 있다. 배우 박유환이 동생이다. 초등학교 6년 때 가족이민을 떠나 고등학교 2년까지 버지니아에서 살았다. 2003년 KBN 가요제 특별상을 받고 그해 7월 귀국했다.
작곡가 겸 가수, MC로 연예계의 팔방미인으로 통하는 주영훈도 버지니아 출신. 1994년 심신의 ‘내가 처음 사랑했던 그녀’를 작곡하면서 음악계에 발을 디뎠고, 수많은 히트곡들을 작곡했다. 20대 초반 목회자인 부친을 따라 이민을 온 그는, 부친이 시무하던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 찬양대원으로 활동했으며 노던 버지니아 커뮤니티대학을 다녔다. 클라이믹스의 대표이사이며, 탤런트인 부인 이윤미와 함께 의류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인기 가수이자 연기자로로 활동 폭을 넓힌 이현우(본명 이상원)는 메릴랜드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한국으로 진출했다. 중학교 졸업 후 이민온 그는 위튼고교 재학 중 한인 청소년들과 그룹 ‘일방통행’을 결성, 활동하며 음악에의 꿈을 키웠다.
가수 제이(본명 정재영)는 웨스트 스프링필드 고교를 다녔으며 95년 미스 워싱턴 선발대회 선으로 뽑히기도. 노바대학 재즈학과를 마쳤으며 98년 1집 앨범 ‘J:Gold’로 데뷔했다.
아버지는 그룹 히식스 출신인 정희택씨로 가수 정훈희가 고모다. 제이는 최근 경기 일산에 ‘제이스 버거’(J’s burger)라는 햄버거 가게를 냈다.
한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인기를 끌다 워싱턴으로 이주해온 가수들도 있다. 60년대를 휩쓴 이 시스터즈, 가왕 조용필, 트로트계의 송대관, 햇빛촌의 고병희, 80년대 감미로운 목소리로 여성들을 사로잡았던 강인원 등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3인조 여성 트리오 이시스터즈는 64년 번안곡인 ‘워싱턴 광장’으로 이름을 알려 ‘울릉도 트위스트’ ‘남성금지구역’ ‘서울의 아가씨’ ‘목석같은 사내’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날씬한 아가씨끼리’ ‘별들에게 물어봐’ ‘모래 위에 적어본 이름’ 등 숱한 히트곡을 낸 60년대의 스타. 친자매 김천숙, 김명자씨가 주축이 돼 여성보컬 전성시대를 열었다. 70년대 김명자씨의 딸이 장애 판정을 받아 도미했으며 맏언니 김천숙씨는 81년 자녀 교육을 위해 버지니아로 이주했다.
국민가수 조용필은 94년 워싱턴 출신인 웨덜리 안씨(안진현)와 결혼하면서 2003년 부인이 세상을 뜨기 전까지 1년의 절반은 워싱턴에서 생활했다.
트로트계의 영원한 오빠 송대관도 1980년부터 88년까지 워싱턴에서 살았다. ‘해뜰날’로 가수왕까지 올랐지만 이듬해 결혼 후 생계가 막막해지자 처가가 있는 미국으로 왔다. 델리와 수퍼마켓을 운영하며 자리를 잡았으나 혼자 귀국해 ‘네 박자’ ‘정 때문에’ ‘우리 순이’ ‘차표 한 장’ ‘고향이 남쪽이랬지’ 등을 계속 히트시켰다.
80-90년대를 풍미했던 싱어송라이터 강인원과 햇빛촌의 고병희는 결혼으로 워싱토니안이 된 가수들.
강인원은 1989년에 개봉한 영화 <비 오는 날의 수채화>의 음악을 담당하였으며, 같은 제목의 주제곡을 권인하, 김현식과 함께 불렀다. 세시봉 열풍에 힘 입어 2011년 이치현, 권인하, 민해경과 함께 프로젝트 보컬 그룹 컬러스를 결성하기도. 버지니아에 집을 두고 한국을 오가며 연예계 활동을 하고 있다.
1989년 ‘유리창엔 비’로 사랑받은 혼성듀오 ‘햇빛촌’의 멤버 고병희도 결혼과 함께 90년대 말 시가가 있는 워싱턴에 왔다. 얼마 전 귀국한 그는 16년 만에 새 음반 ‘여자’를 발표하며 재기에 나섰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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