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까지 선교연합(UTD), ‘라이프찌히 선교 컨퍼런스’
무너진 베를린 장벽 앞에서 하나된 한반도 염원
“내 백성을 가게 하라...”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켰던 하나님의 마음이 북한 동족을 향해서도 다를 수 없다고 믿는 한인 크리스천들이 탈북자 구출과 남북통일을 위해 부르짖고 있다. 미국에서는 2,500여 한인교회들이 가입한 ‘미주한인교회연합(KCC)’이 몇 년 전부터 통곡기도회를 주도해 왔고 얼마 전에는 ‘그날까지(Until The Day·UTD) 선교연합’이 만들어져 보다 북한의 개방과 개혁, 통일 후를 대비한 보다 효과적인 북한선교전략을 세우고 협력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 UTD가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독일 통일의 발화점이었던 구 동독 라이프찌히 성 니콜라이교회에서 선교 컨퍼런스를 열었다. 갑자기 유럽에 몰아닥친 한파로 기온은 섭씨 영하 15도 주위를 맴돌았지만 라이프찌히 시내와 베를린 북한대사관 앞에서 ‘내 백성을 가게 하라’고 외치는 한인들의 함성과 기도에는 애통함이 스며있었다. 비록 나흘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어도 참석자들은 그 기도 때문에 동토의 북녘 땅 밑으로 남북을 잇는 통일의 냇물이 흐르기 시작했다고 믿고 있다.
동서독 통일에서 배우는 교훈
‘라이프찌히 선교 컨퍼런스’에 참여한 인원은 총 62명. ‘그날까지’와 ‘KCC’ 대표 간사로 있는 손인식 목사가 담임하는 LA 베델교회 소속 교인들은 물론 독일, 체코, 영국, 프랑스로마, 등 유럽 주요 국가와 멀리 한국에서도 달려왔다. 70대의 권사부터 10대 청소년까지 모두 자비로 온 사람들이다. 라이프찌히, 쾰른,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등 아무래도 독일에 있는 한인교회 목회자들이 많았다. 유럽 밖에서 온 참석자들은 대부분 1월31일 출발해 하루를 넘긴 2월 1일 빠리나 프랑크푸르트 등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고 주최 측은 각기 다른 도착시간에 맞춰 공항을 나가는 수고를 했다. 1일 저녁 가질 예정이던 전야기도회는 일부 팀들의 도착 시간이 늦춰져 취소됐다.
컨퍼런스가 본격 시작된 2일 새벽. 6시 5분전에 짙은 어둠을 가르고 참석자들이 니콜라이교회 앞으로 모여들었다. 주최 측이 제공한 두툼한 외투를 입었지만 추위는 맹렬했다. 6시 정각이 되자 종소리가 울렸고 큰 교회 문이 열렸다. 웅장한 기둥들이 늘어서 있는 교회 안에서 손인식 목사의 사회로 역사적인 예배가 시작됐다. 첫 설교를 맡은 사람은 미주한인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인 송정명 목사. 무너진 예루살렘의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옛 선지자 느헤미야의 음성이 송 목사의 목소리를 통해 북한 재건의 사명을 잊지 말라는 호소로 들렸다.
첫 강의는 게르다 에얼리히 씨가 맡았다. 70대 독일 할머니인 그는 3년 째 북한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모든 인간의 기본권인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혼자 외롭게 시작한 싸움에 원군들이 생겨났고 여론의 주목도 받을 만큼 알려지게 됐다. 그는 동서독 통일 후 오히려 살기가 나빠졌다고 불평하는 동독 주민들이 있다는 질문에 “애굽을 탈출한 후 수없이 불평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과 같은 것”이라며 남북통일이란 명제가 어떤 것보다 중요함을 강조했다.
크리스티앙 퓌러 목사는 독일 통일의 배경에 교회가 있었고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분명히 했다. 1982년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5시에 가진 기도 모임은 7년이나 이어졌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한 달 전인 10월에는 7만명이 운집하는 대 집회로 불어났다. 총기로 무장한 경찰은 언제든 발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퓌러 목사는 “결국 기도로 동서독은 하나가 됐다”며 그 하나님은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한인들의 기도도 들으실 것이라고 말했다. 퓌러 목사는 강의 후 한인들과 라이프찌히 시내를 함께 돌며 침묵 시위를 벌였다.
그날까지 광장을 점령하라
둘째 날 니콜라이교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교육관에서 계속 특강이 이어졌다. 첫 세미나를 인도한 사람은 이용희 교수(가천대학교). 에스더기도운동본부 대표인 그는 첫 세션에서 주민이 굵어죽는 상황에서도 김일성 시신을 안치하는 금수산 궁전을 3억달러를 들여 조성하는 북한을 한 국가가 아니 ‘광신 집단’으로 규정한 뒤 북한 주민들을 구출하는 일은 유대인을 구출한 쉰들러처럼 한인이라면 당연한 사명으로 여겨야 함을 역설했다. 이 교수는 또 ‘나꼼수’ 등 신매체를 이용해 거짓 정보로 한국사회를 장악해 가는 세력을 경계해야함을 지적한 뒤 월남 패망 당시 공산주의자들이 국회와 정부에 깊숙이 침투해 있었던 것처럼 대선을 앞두고 종북주의자들의 준동을 반드시 막아야 함을 역설했다.
오후 세션에서 손인식 목사는 KCC와 ‘그날까지 선교연합’의 출범 이유를 자세히 소개한 뒤 북한 선교에 전념하는 단체들의 협력을 강조했다. 손 목사는 “교회가 이제 야성을 회복하고 광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연합 사업은 참가자들이 스스로 힘을 뺄 때 힘을 모으게 된다”고도 했다. 손 목사는 무엇보다 “죽어가는 동족이 있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죄”라며 ‘그날까지’ 전세계의 모든 광장과 거리에서 기도의 합창을 이어가자고 호소했다.
오후 순서는 선교 컨퍼런스를 지휘하고 있는 김성환(미국명 샘) 변호사의 KCC 평화 행진 소개, 박상원 목사(기드온동족선교회)의 북한선교의 미래 특강, 박정동 목사의 저녁 집회 등으로 이어지며 마무리됐다.
내 백성을 가게 하라
셋째 날. 새벽예배 후 한식당 ‘킴’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한인들은 버스에 올랐다. 라이프찌히를 벗어나 한 시간 조금 넘게 달리면 나타나는 곳이 비텐베르그. 종교개혁의 아버지 마틴 루터가 교황청에 던지는 95개 논제를 내걸었던 교회당이 있는 곳이다. 목적지는 베를린이었지만 한인들은 비텐베르그에서 ‘거짓’에 대항해 일어선 신앙 선조들의 정신을 배웠고 교회의 시대적 역할도 고민했다.
다시 얼마를 버스로 달리자 브란덴부르그 성문이 나타났다. 성문 저편은 1989년 장벽이 무너지기 전 서 베를린이었다. 인근 월남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한 한인들은 곧장 성문 앞으로 걸어가 시위를 준비했다.
“북한 주민 학살을 중단하라!” “북한 주민에게 자유를!”
북한대사관을 향해 출발한 평화 시위대의 목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높아졌다. 독일에서 거리 선교를 하는 미국 여성, 영어가 유창한 독일 청년 등이 가세하며 시위대의 기세는 더욱 높아졌다. 경찰은 친절을 베풀어 예정됐던 짧은 코스를 택하지 않고 행인들이 많은 번화가로 시위대를 인도했다.
동독과 가까운 사이었던 북한의 대사관은 건물이 제법 컸다. 현재의 건물 옆에 있는 유스호스텔이 원래 대사관이었다는데 지금은 세를 주고 있었다. 굳게 닫힌 철문 앞에서 시위대의 구호는 수그러들지 않았고 “제발 북한 주민들을 탄압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샘 김 변호사의 음성에는 눈물어린 절박함조차 묻어났다. 시위는 예상 보다 길게 이어졌고 한인들은 언제 또 올지 모르는 북한대사관 앞 보도에 마지막으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자비가 북녘 땅에 임하기를 기도했다. 아들 예수가 북한에도 오시기를 절규했다. 동족들이 진정한 자유함을 얻을 때까지 평화 행진과 기도를 멈추지 않겠다고 서원했다.
오후 5시 30분. 라이프찌히로 돌아오는 버스 안은 조용했다. 고단한 몸을 이기지 못한 한인들 다수가 잠에 떨어졌고 일부는 이제는 자유의 땅으로 바뀐 구동독의 들판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들었다.<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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