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이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외쳤던 기미년(1919년)의 함성은 국경일 ‘삼일절’을 만들어 전해져 왔지만 그 감격과 의미가 국민들 가슴에 실감 있게 고동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아, 새 하늘과 새 땅이 눈앞에 펼쳐지누나. 힘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누나...”로 이어지는 독립선언문의 마지막 부분은 마치 성경을 읽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최남선 선생은 기독교신자는 아니었으나 상동교회 전덕기 목사 댁에 오래 살면서 성경을 배우고 자유의 이념과 비폭력정신을 몸에 익혔다.
물론 33인 중 이상재 선생 같은 무저항주의자, 길선주 목사 같은 사랑의 사도가 있어서 만세운동을 비폭력으로 일관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만일 삼일 만세운동이 폭력시위였다면 세계에 미친 호소력이나 후세에 남긴 정신적 영향은 매우 축소되었을 것이다.
독립선언문 서명자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다. 당시 기독교인은 조선 인구의 1.5%(26만명) 밖에 안 되는 매우 작은 집단이었는데 정말 놀라운 일을 해냈다. 사학자 이만열 교수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약 1,400군데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는데 사건 내용이 사료에 남은 곳은 323지역이다.
그 중 78지역이 교회가 중심이 되었고 천도교 중심이 66곳, 기독교와 천도교가 합동으로 거사를 일으킨 곳이 42곳이다. 따라서 조직적으로 움직인 323지역 중 120곳이 교회가 중심이 되어 삼일만세운동을 계획하고 거사를 일으켰다.
지금 기독교 인구가 한국에 1,000만 명이 넘는데(24%) 과연 민족의 선구자가 되고 있는지 반성할 일이다. 기미년에 불태워진 교회당이 80개 교회에 달하고, 기독교 계통학교(Mission School) 8개교가 파괴 되었으며, 교인 3,373명, 목사 54명, 전도사 127명, 장로 63명이 감옥에 갇혔다.
당시 어린 여학생들을 십자가에 알몸으로 매달아 인두와 칼로 고문한 기록이 생생하게 남아있다(박은식의 한국독립사). 조선의 크리스천 여학생들은 자유와 해방을 외치며 죽어갔다. 신앙의 힘이었다. 조선에 들어온 예수 바람은 곧 새 시대의 바람이었으며 개화의 바람, 인간 해방의 바람이었던 것이다.
종교 잡지(Religious Report)가 미국의 기독교인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은 변화를 싫어하는 경향이 많다. 그리고 그 이유로서 제시된 사항 중 상위권은 다음과 같았다. “이전에 해 봤다” “교회는 사회와 다르다” “비용이 많이 든다” “시간과 인력이 부족하다” “해 봐야 안 될 것이다”
21세기에 진입하면서 한국과 세계는 ‘개혁의 큰 소용돌이’ 속에 들어가 있다. 개혁이 발전의 토대가 된다. 무엇이나 변화가 있고 새 것이 시작되려면 진통의 아픔이 있지만 그것은 새 세계를 위하여 꼭 필요한 진통이다.
세균학을 개발한 루이 파스퇴르는 “내가 연구에 바친 시간보다도 내 학설을 의사들에게 납득시키는 시간이 더 걸렸다”고 고백하였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지식도 당시 의학계는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나빠지는 습관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이 변화를 싫어하는 현상을 교회도 가지고 있다. 바깥일에 흔들리기를 꺼리는 것이다.
신생국가 미국의 발전상을 배워 늙어가는 유럽의 나라들을 계몽하기 위하여 당대 최고의 철학자 프랑스인 알렉시 드 토크빌 교수가 100년 전에 미국을 방문하였다. 그의 보고서는 미국의 자원과 어장에 무게를 두지 않고 당시 미국교회의 강단(설교)을 주목하였다.
“미국의 강단은 정의의 불꽃이었다. 설교자들은 선과 정의를 외치고 있었다. 미국은 위대한 나라가 될 것이다.”
이 철학자는 위대함이란 자원과 기술, 군사력의 강대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정의에서 온다는 것이다.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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