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열린 제84회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에서 ‘아티스트’라는 프랑스의 흑백 무성영화가 작품상을 탔다. 영화에 관심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예상되었던 일이라고 하지만, 요즘 대부분의 영화들이 최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성영화가, 흑백영화가, 프랑스 영화가, 그것도 80여 년 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최고의 작품상을 탔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갑자기 무성영화란 말인가? 이 영화에 작품상이 주어졌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번 오스카상이 예년과 달리 특이했다고 할 수 있는데, 특이했던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아티스트’와 함께 작품상을 경합했던 마틴 스코세지 감독의 ‘위고’도 옛날 프랑스 무성영화 시대의 선구자인 조르주 멜리에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다.
3D와 디지털 파워가 극성인 이 시대에 구시대의 애널로그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남우조연상은 1965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왔던 노장 배우 크리스토퍼 플러머에게 돌아갔다. 플러머는 올해 나이가 아카데미상의 나이보다 두 살 아래인 82세로 아카데미 사상 최고령의 수상자가 되었다.
여배우 메릴 스트립이 주연상을 탄 것은 그녀가 그동안 17번이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었기 때문에 전혀 놀랄 일이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특이한 것은 스트립이 이전에 오스카상을 탄 것이 30년 전인 1982년이라는 사실이다. 애니메이션 부분에서도 3D로 제작된 다른 후보작들을 제치고 2D의 ‘랭고’가 상을 타게 된 것이 특이하다.
아카데미상이 갑자기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다. 그래서 영화평론가들은 이번 오스카상이 “역사와 과거에 대한 경의, 감사, 존경의 표시”였다고 말하고 있다. 최첨단 기술의 대립각으로 아날로그 정서를 내세워 추억과 향수와 복고를 크게 평가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런데 요즘 추억과 향수와 복고를 내세우는 것은 영화뿐이 아닌 것 같다. 과거를 향유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파고드는 이른바 노스탤지어 브랜딩(Nostalgia Branding) 또는 레트로 마케팅(Retro Marketing)이라는 것들이 영화, 가요 등 연예계를 비롯해서 의상과 헤어스타일 패션, 유통, 식품, 주거, 그리고 자동차, 전자업계에 이르기까지 우리 생활 전체에 폭넓게 퍼지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 몇 십 년 사이 IT(정보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정치, 경제, 사회 등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서 실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한마디로 애널로그 문화에서 디지털 문화로의 변천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그런데 디지털 문화에서는 사람들이 직접 만나 대화하고 교류할 기회가 없어져 인간적인 요소가 결핍되기 쉽다. 디지털 문화의 몰 개성화 때문에 사람이 이제 더 이상 사회적 동물이 아니라는 말도 하게 된다.
추억과 향수와 복고를 찾는 것은 몰 개성화, 인간성 상실에 대한 저항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디지털 시대를 살면서 애널로그를 동경하게 된다. 아직도 동네마다 야드세일, 거라지 세일이 벌어지고 수퍼마켓에서는 아직도 할인 쿠폰으로 물건 값을 깎고 대금을 개인수표로 지불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터넷이나 e메일로 쉽고 빠르게 카드를 보낼 수 있지만 지금도 탱큐카드에 직접 사인하고 봉투에 넣어 우표를 붙여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기능 위주의 디지털 시계보다 옛날 애널로그 문화를 그대로 대표하는 바늘 달린 애널로그 손목시계가 패션, 디자인 등의 측면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때때로 역사와 과거에 대한 경의와 감사와 존경을 표시할 필요가 있다. “과거로부터 배운다” 또는 “역사를 모르면 미래가 없다”는 깨우침의 말을 자주 상기해야 한다. 예전에 있었던 것들을 존중하고 감사할 때에 진정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지난 일을 너무 쉽게 그리고 빨리 잊는다는 우리이기에 온고지신(溫故知新) 즉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깨닫는다는 생각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야 하겠다.
장석정/ 일리노이주립대 경영대 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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