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일러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 많은 것을 꺼려했어요. 결국 그런 성격 때문에 내 아들은 희생자가 되고 말았어요.” 어린 타일러의 모습을 찍은 비디오 필름을 보면서 타일러의 아버지가 자살한 아들을 그리워하는 이 장면은 미국의 중고교 내 왕따 및 폭력문제를 통찰력 있게 포착한 기록영화 ‘불리’(Bully·사진)의 첫 장면이다.
조지아주 머리카운티의 고교생 타일러 롱(17)은 급우들로부터 참지 못할 욕설과 모욕을 당한 뒤 이를 선생에게 알렸으나 마이동풍식의 반응이 나오자 유서를 남긴 뒤 자기 방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나의 중고교 시절을 회상했다. 일종의 ‘성장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학교 폭력은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요즘처럼 심각하진 않았다. 그땐 주먹 쓰는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면서 라이벌 학교의 조직과 싸웠지 같은 학교의 아이들을 못살게 구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 같은 소심한 꼬마도 별 탈 없이 생존이 가능했다.
그런데 요즘은 한국의 학교 폭력문제가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해진 것 같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생 8명중 1명이(응답자 139만명중 17만명) 최근 1년간 학교 폭력을 경험했고 학교에 폭력서클이 있다고 답한 학교가 82%나 됐다. 폭력의 방법도 언어나 사이버 폭력 외에도 공갈협박을 해 돈과 물건을 빼앗거나 구타하는 등 마치 조직폭력배와 같은 수준에 이르러 경찰이 학교 폭력 전담반을 설치했을 정도다.
이 같은 학교 폭력의 포악화에 대한 원인 중 하나를 ‘입시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의 분출’이라고 분석하는 사람도 있으나 내가 보기엔 우리 사회 전체가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인문과 인본주의를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폭력은 인성과 감성의 마비 증세에서 오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아이들의 폭력은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이번 조사에서 특기할 점은 초등학생의 폭력 경험이 중고교생보다 많다는 사실. 나도 초등학생 때 경험했지만 사악하기로 말하자면 철모르는 것들이 더하다.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에서도 이런 성질이 여실히 묘사되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성악설 편이다.
학교 폭력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자신도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던 리 허시 감독이 ‘불리’를 만든 이유도 사람들이 ‘별 것 아니다’라고 여기는 이 문제의 중요성을 사회에 알리기 위해서다.
마치 인물과 성격 드라마와도 같은 이 감동적인 영화는 조지아, 아이오와, 오클라호마, 텍사스 및 미시시피 등지의 학교 폭력 피해자들과 그들의 부모 그리고 선생들을 인터뷰, 학교 폭력문제의 심각성과 함께 그 해결책을 함께 강구해 보자고 호소하고 있다. 5명의 학생과 그들의 가족과 선생들을 학기 동안 따라 다니며 교실과 카페테리아 그리고 가정과 교장실 등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허시 감독은 선생들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다.
아이오와주의 수시티에 사는 병약한 체질의 안경을 낀 알렉스(12)는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내성적인 아이로 툭하면 학교에서 구타와 모욕과 협박과 학대를 받는다고 고백한다. 알렉스는 “학교 가는 것이 너무 신경이 쓰인다”면서 “난 다른 곳에 속한 아이”라고 자조하듯 말한다. 알렉스의 체념한 듯한 모습을 보자니 가슴이 아프다.
오크라호마주 터틀에 사는 켈비(16)는 동성애자여서 폭력의 대상이 되었고 미시시피주 야주카운티의 자메야(14)는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총을 백팩에 넣고 스쿨버스에 탔다가 걸려 구금된 뒤 재판을 받고 풀려났다. 그리고 인터뷰한 가족 중에는 타일러 외에도 학교 폭력을 못 견뎌 자살한 학생이 하나 더 있다. 영화는 이들 피해 학생들의 고백과 함께 해당 학생들의 부모 및 주변 동네사람들의 폭력문제 대처방안을 강구하기 위한 주민회의 그리고 전국 학교 폭력 피해자 부모모임 결성 등도 보여준다.
카메라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폭력피해 학생들의 증언을 통해 학교 폭력의 가공할 결과를 검토하고 과거의 미온적인 대응자세에서 벗어나 부모와 선생과 아이들 그리고 사회 전체가 문제에 대처하는 새 방법을 모색하도록 촉구하는 아름답고 충격적인 영화다.
그런데 ‘불리’가 몇 마디의 F자 상소리 때문에 미영화협회 등급심사위로부터 막상 영화를 봐야 할 연령층의 관람을 어렵게 하는 R등급(17세 미만 관람 때 부모나 성인 동반 필요)을 받아 지금 전국적으로 이 등급을 철회하라는 운동이 일고 있다.
제시 잭슨 목사, 메릴 스트립, 자니 뎁 및 일부 연방의원 등을 비롯한 30만여명의 R등급 철회 요구자들은 등급을 R에서 PG-13(13세 미만 관람 때 부모의 사전지도 필요)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과연 영화가 개봉되는 오는 30일까지 앞뒤가 꽉 막힌 등급심사위가 이 요구에 응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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