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엽 한인회장
"춘추 필법(春秋 筆法)의 정신, 정정 당당(正正 當當)한 보도, 불편 부당(不偏 不當)의 사시(社是)에 충실 한다면 100년 기업에로의 발 걸음도 한층 가벼울 것 입니다."
한국일보 하와이 지사 창간 40주년과 미주 본사 창간 43주년을 하와이 동포 여러분과 함께 축하 합니다.
40년전 하와이는 올드 타이머의 이민이 주를 이루었던 시기였습니다.
한국에서 직접 이민오신 분이나, 다른 나라를 거쳐 하와이로 이민 오신 분 등 아직 이민 사회가 조직적으로 형성되지 않은 , 그야말로 미지의 땅에 설레는 마음으로 모험과 개척정신으로 삶의 터전을 일구던 시절 이었습니다.
캐빈 케네디와 메리 무어는 “ 100년 기업의 조건” 이란 책에서 세계 기업의 평균 수명은 13년이며 30년이 지나면 80%의 기업이 사라 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 남으려면, 끊임없는 연구 개발, 지속적인 성장, 건전한 재정과 기업 윤리, 직원과 그 가족에 대한 복리 후생 등에 많은 투자를 하여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1965년도 100대 기업중에서 30년 후인 1995년에 100대 기업에 포함된 기업은 불과 16개 , 16%에 불과 하다고 하며, 세계 최장수 기업은 1,4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일본의 한 건설회사 라고 합니다.
한국일보의 사시(社是)를 보면,
첫째, 춘추 필법(春秋 筆法)의 정신
둘째, 정정 당당(正正 當當)한 보도
셋째, 불편 부당(不偏 不當)의 자세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언제나 사실 만을 보도하고 개인적인 감정이나 비평은 하지 않으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떳떳한 언론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창업주가 사시(社是)를 정했으리라 생각 됩니다.
한국일보는 동포 언론으로서 지난 40년을 뒤 돌아보며, 항상 사시 (社是)에 충실 한다면 100년 기업에로의 발걸음도 한층 가벼울 것 입니다.
다시한번 한국일보 하와이 지사 창간 40주년과 미주본사 창간 43주년을 축하 합니다.
2012년 6월9일
닐 애버크롬비 주지사
"한국일보 하와이는 미주 본사의 네트워크를 통해 미 전국과 세계를 아우르는 보도로 독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고 있으며 또한 온라인 판 신문으로 아름다운 하와이를 세계 곳곳의 독자들에게 소개하며 관광업 발전에도 일조하고 있습니다."
하와이 주민들을 대표해 한국일보 하와이지사의 40주년을 축하하며 귀사의 독자들께도 진심어린 인사의 말을 드립니다. 알로하!
이 지역만의 독특한 다문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하와이 주민들의 뿌리의 상당수는 아시아와 환태평양 일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미 인구통계국이 집계 한 바에 따르면 하와이 거주민으로 한국인 혈통이라고 밝힌 이들의 숫자는 130만명으로 밝혀졌고 그 숫자는 시시각각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특히 한국일보 하와이지사가 독자들에게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신속하게 전달하고자 지난 40년을 노력해 온 점을 치하하고자 합니다.
한국일보 하와이는 한국어를 구사하는 지역 내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미주 본사의 네트워크를 통해 미 전국과 세계를 아우르는 보도로 독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주고 있으며 또한 온라인 판 신문으로 아름다운 하와이를 세계 곳곳의 독자들에게 소개하며 관광업 발전에도 일조하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일보 하와이가 지역 사회에 차지하고 있는 높은 비중과 역할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그 업적을 치하하며 지사설립 4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바입니다. 앞으로도 귀사의 앞날에 성공이 계속되길 기원합니다.
2012년 6월9일
피터 B. 칼라일 호놀룰루 시장
"한국일보 하와이가 한-하와이 전통문화와 유산이 공존하는 중심점이 되어 상호 우호증진은 물론 문화 경제 교류 가교의 역할을 앞으로도 계속 해 줄 것이라 믿습니다.
호놀룰루 시와 주민들을 대표해 귀사의 건승을 기원하며 다시한번 창간 4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한국일보 하와이 창간 40주년에 즈음해 귀사의 전 직원과 발행인, 그리고 독자들에게 심심한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올해로 미주 한국일보 43년, 그리고 한국일보 하와이지사가 창간 40주년을 맞이하면서 귀사는 인쇄면과 새로이 단장된 인터넷 지면을 통해 하와이 한인들에게 신속하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호놀룰루 카운티 시 공무원들은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일보 하와이가 대변하고 있는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은이 특유의 끊기와 근면성을 바탕으로 이룬 업적들은 지금까지 꿈과 희망을 안고 넘어온 수 많은 이민자들의 동경의 대상이었고 목표로 자리 매김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와이의 한인 인구도 3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돼 하와이와 한국을 이어주고 있는 연결고리도 더욱 튼실해 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국일보 하와이가 한-하와이 전통문화와 유산이 공존하는 하나의 교류점이 되어 상호간의 우호증진은 물론 문화 경제 교류역할의 가교로서의 역할을 앞으로도 계속 해 줄 것이라 믿습니다.
호놀룰루 시와 주민들을 대표해 귀사의 건승을 기원하며 다시한번 창간 4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2012년 6월9일
서영길 주호놀룰루 총영사
"역사적 유적지와 한미동맹의 핵심지인 하와이에서 한국일보와 라디오 서울은 한류문화의 전파, 한미 FTA를 포함한 포괄적 안보사항, 이민·역사문화원 건립, 그리고 동포사회의 주요 관심사에 대해 정확한 정보전달, 바른 여론형성, 주류사회와의 가교적 역할 등을 통해 한미우호 증진과 동포사회의 건전한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
한국일보와 라디오 서울 창간 40주년과 개국 12주년을 맞이하여, 주호놀룰루 대한민국 총영사관 전 직원과 더불어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이곳 하와이는 한인 이민이 처음 시작된 이민의 종가이자, 이승만 건국 대통령께서 하와이 한인 동포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주도한 유서 깊은 곳입니다.
아울러 하와이는 아태지역의 안전보장을 담당하는 미 태평양사령부가 위치해 있어, 굳건한 한미동맹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렇게 역사적 유적지와 한미동맹의 핵심지인 하와이에서 한국일보와 라디오 서울은 한류 문화의 전파, 한미 FTA를 포함한 포괄적 안보사항, 이민·역사문화원 건립, 그리고 동포사회의 주요 관심사에 대해 정확한 정보 전달, 바른 여론 형성, 주류사회와의 가교적 역할 등을 통해 한미우호 증진과 동포사회의 건전한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발전과 기여에는 동포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한국일보 및 라디오 서울 관계관 여러분의 희생적인 노력에 기인한 것으로, 그 노고와 열정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앞으로도, 대한민국과 미국의 튼튼한 교량이 되어 양국의 관계 발전은 물론, 하와이 동포사회의 굳건한 동반자로서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 및 선도하는 언론이 되어주시길 간절히 바라 마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창간 40주년과 개국12주년을 축하드리며, 하와이 동포사회에 더욱 사랑받는 언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2012년 6월9일
주호놀룰루 총영사
서영길
이덕희 미주한인재단 이사장
"한국일보 하와이지사가 1973년부터의 한국일보를 하와이대학 한국학연구소에 기증하였다.
1968년부터 하와이에 살고 있는 필자이지만 하와이판 한국일보가 소장되어 있지 않았다면 현대이민사 집필을 시작할 엄두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
1973년 3월 1일자 미주판 《한국일보》 2쪽에 브라질, 씨애틀지역, 샌프란씨스코, 하와이 소식란이 포함되어 있다.
하와이 소식란에는 “이관옥, 한규동 리사이틀” 과 “대규모 한국인 세탁소 개업, 카라카우아에서, 주차장 완비”라는 제목 밑에 2개의 기사가 실렸다.
초기 이민자들의 《국민보》 가 1963년 12월 25일자로 폐간되고, 또한 《태평양주보》가 1970년 2월 6일로 폐간된 이후 하와이 기사가 실린 첫 번째 미주판 한국일보이다.
이른바 현대 이민자들의 신문 매체의 시작이다. 이후 하와이판이 발행되었고, 지금은 2면의 하와이 소식을 보도하는 하와이 한인사회의 유일한 한글 신문이다.
1916년에 남편과 합류하기 위해 2살 된 딸 옥희 Stella와 함께 하와이에 도착한 이화학당 졸업생 전수산은 국민보를 보관하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국민보 뿐만 아니라 국민보 제호로 변경되기 이전의 《신한국보》도 찾아 보관하였다.
전수산이 1969년에 타계하였는데, 전수산이 모아놓았던 국민보를 스텔라가 간직하고 있다가 1987년에 하와이대학교 도서관에 기증하였다.
천안의 독립기념관이 1995년에 국민보 영인본을 발간하고 또 국사편찬위원회가 1997년에 마이크로 필림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 신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민 100년의 하와이 한인 이민생활사를 작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반세기가 넘도록 지속된 국민보와 태평양주보의 영인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밤을 새워가며 영인본을 읽기 시작한 것이 근 20년이 되었고, 요사이도 사실 확인을 위해 들여다 본다.
몇 년 전 한국일보 하와이지사가 1973년부터의 한국일보를 하와이대학 한국학연구소에 기증하였다.
이제부터 지난 40년 동안의 기사를 읽고 현대 이민사를 쓰려면 꽤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다.
1968년부터 하와이에 살고 있는 필자이지만 하와이판 한국일보가 소장되어 있지 않았다면 시작할 엄두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 지난 4월부터 자원봉사자 한 분이 색인 작업을 시작하였는데, 이 작업도 만만치 않다. 기사를 읽어 요약하고, 제목을 분야별로 구분하는 작업이다.
TV와 인터넷을 통하여 지구촌 각 곳에서 일어나는 새 소식을 편리하게 순간적으로 접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신문의 중요성을 그리 느끼지 않고 있다.
한국의 한 인사가 신문의 중요성을 나열하면서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점은 읽다가 덥고 잠을 잘 수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였다.
정말 신문은 따뜻하다.
한국일보 하와이판이 새 소식을 전할 뿐만 아니라 역사를 간직하는 따뜻한 매체로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기원한다.
또한 한글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많은 자원봉사가가 색인 작업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2012년 6월9일
미주 한인재단
이덕희 이사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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