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CSD 건물옥상에 ‘떨어진 별’설치 서도호 작가
▶ 경사 5도의 주택 들어서면 공간감각 혼란 직접 체험할 수 있어 기존 설치작품과 차별 “집 소재로 삼는 것은 실존의 문제이기 때문”
작가 자신도 이것이 실현되리라곤 생각지 않았다고 한다. 7년 전 UCSD의 위촉으로 캠퍼스를 둘러본 설치미술가 서도호가‘떨어진 별’(Fallen Star)의 아이디어를 냈을 때만 해도 작가는 물론‘스튜어트 컬렉션’(캠퍼스 설치예술 프로그램) 관계자들도 7층 건물 꼭대기에 집이 날아와 들어박히는 형태의 설치작품이 건축 기술적, 공학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알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서도호의 특별하고 독창적이며 아름다운 상상력에 매료된 사람들은 그 도전에 무조건 착수했다. 그리고 이로부터 7년 후‘떨어진 별’은 실제로 완성돼 학생들을 위해 문을 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파워풀한 작품이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처음 들어설 때 정원이 주는 느낌이 무척 환상적이에요. 전혀 다른 나라에 온 듯한 느낌, 세상과 격리된 느낌이 기대했던 것보다 큽니다”
‘폴른 스타’의 오프닝에서 만난 서도호 작가는 무척이나 흡족한 표정이었다. 자신의 정교한 아이디어에 따라 지어진 집이지만 미처 예상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효과가 나온 것에 대해 사뭇 흥분한 모습이었다. 예를 들어 집의 내부를 로드아일랜드(그가 처음 미국 유학 와서 살던 곳) 가정집을 모델로 했는데, 정원까지 미 동부지역에서 자라는 나무와 화초들을 가져다 꾸민 풍경이 무척 감동적이라고 기뻐했다. “시간이 가면서 환경에 적응을 못하면 어떤 것은 살아남고, 어떤 것은 죽을 수도 있겠죠. 더구나 고도가 높은 곳이라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어요. 어쩌면 너무 잘 자라 옥상을 뒤덮을지도 모르지요”
‘떨어진 별’은 직접 들어가 보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특별한 공간감각적 체험을 선사한다. 건축물을 삐딱하게 기울여 설치했기 때문인데 단지 5도 경사일 뿐인데도 느낌이 얼마나 다른지 한 발자국 들어놓기가 무섭게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비틀거리는 상태가 된다. 집 자체가 기울어졌고, 내부의 모든 가구와 인테리어 역시 삐딱하게 설치돼 있기 때문에 오히려 똑바로 서 있는 사람이 잘못된 자세인 것처럼 느끼도록 만드는 공간감각의 혼란이다.
테이블, 소파, 의자, 책장, 책상, 램프, 컴퓨터, 가족사진, 그림액자 등 일반 가정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갖가지 소품들이 잘 정돈·설치돼 있는 상태에서 유일하게 ‘똑바로’(!) 위치하고 있는 것은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 하나. 중력의 법칙에 따라 수직으로 내려와 있기 때문이다.
코너마다 작은 창문이 나 있는데 이를 통해 내다보는 세상이 또한 압권이다. 비스듬한 시선 탓에 어떤 창에서는 하늘이 쏟아지고, 어떤 창에서는 지상의 건물들이 일어서 올라온다. 도대체 작가는 이런 효과까지 의도하고 계산한 것일까?
“물론입니다. 약간 기운 것 때문에 느낌이 크게 다를 거예요. 단지 경사 때문이 아니라 바닥과 상응하는 벽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수평과 수직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인공적 개념일 뿐 자연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이 적응해 온 수천년된 조건을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아요”
이 특별한 작품을 통해 서도호는 공공미술이 갖는 문제점, 기존 설치예술의 이슈를 뒤집어보려는 시도 또한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좌대 위의 청동조각은 보는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예술작품’이지만, 빌딩 꼭대기 코너에 아주 위험하게 매달려 있는 ‘폴른 스타’는 직접 들어가 볼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공공 설치작품과는 차별화된다는 것이다.
“조각이라기보다 환경인 것이죠. 또 이 프로젝트는 작가 혼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아주 여러 분야의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야 완성할 수 있는 일종의 소셜 스컵처입니다. 또한 관객이 작품을 액티베이트 할 수 있고, 가든 자체도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청동조각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도호는 바로 지난 3월22일부터 6월3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한국에서의 10년만의 개인전을 가졌다. ‘집 속의 집’이란 제목의 이 전시에서는 지금까지 서도호가 해온 ‘집’ 작업의 총체가 되는 30여점의 작품이 전시돼 젊은 생존화가로서는 더 이상 누릴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화제와 성황을 이뤘다.
그는 3년 전 LA카운티 뮤지엄에서의 한국현대작가 12인전(‘당신의 밝은 미래’)에서도 ‘떨어진 별 1/5’을 전시해 한인사회는 물론 미국인들에게도 대단한 관심과 호응을 끈 바 있다. 라크마는 그의 작품 ‘문’(Gate)을, 모카(MOCA) 현대미술관은 ‘LA홈 서울홈’을 소장하고 있다.
서도호는 왜 집을 자꾸 짓고, 사람들은 왜 그의 집에 매료되는 것일까?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 아닐까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집 있는 사람과 집 없는 사람으로 나뉜다고 말해도 될 만큼, 집에서 산다는 것은 우리 실존의 문제죠. 집을 소재로 작품하는 게 일반인에 공감하는 기본적 요소인 것 같습니다”
그런 그는 어떤 집에서 살까?
“하하, 서울에선 성북동 한옥에서 사는데 사실 그건 내 집이 아니고 부모님 댁이죠. 런던에선 웨어하우스에 살고 있습니다. 뻥 뚫린 공간이죠. 그리고 뉴욕 맨해턴에서는 첼시의 반지하실에서 살고 있어요. 주로 거주하는 곳은 런던입니다” 성북동 한옥은 그가 어릴 때부터 자란 집으로 수많은 작품의 모델이 된 곳이다. 그의 부친(한국화가의 거목 서세원)이 창덕궁 연경당을 실측해 구한 말 마지막 도편수와 몇 년에 걸쳐 그대로 옮겨지었다는 집으로 서도호 작품세계의 근간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특별한 집이다.
서도호는 7일 UCSD의 ‘떨어진 별’에 이어 바로 다음날 또 다른 대학에서 설치작품 오프닝을 가졌다. 시애틀의 웨스턴 워싱턴 대학에서 역시 캠퍼스 아트 프로그램의 하나로 ‘원인과 결과’(Cause and Effect)란 작품을 설치한 것. UCSD의 집과는 전혀 다른 이 작품은 수만개의 사람 모형을 케이블로 잇고 회오리바람처럼 돌려서 19피트 높이의 천장에서부터 매단 설치물로, 개인과 군중, 경계와 정체성에 관한 작업이다.
그는 또 곧이어 노르웨이 오슬로의 광장에 설치작품도 완성하고, 8월과 11월에는 일본 히로시마 미술관과 가나자와의 21세기 현대미술관에서 각각 개인전이 예정돼 있으며 9월 광주비엔날레에서의 대형 ‘탁본 프로젝트’와 덕수궁 함녕전 프로젝트도 잡혀있다. 믿을 수 없을 만치 바쁜 일정인데 다 어떻게 소화하는 것일까?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니까 할 수 있습니다. 아이디어는 내가 내지만 프로젝트를 현실로 만드는 건 도와주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너무 고맙고 행복합니다”
<글 정숙희 기자·사진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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