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는 속담이 있다. 자기 잘못을 시침 뚝 떼고 부인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오리걸음이라는 군대기합도 있다. 소총을 거꾸로 치켜들고 주저앉은 자세로 엉금엉금 걷는 대단히 힘든 체벌이다. 오리고기는 고혈압, 중풍, 신경통, 비만 등 성인병을 예방하고 콜레스테롤 형성을 억제하는 좋은 음식인데도 제사상에 오르지 못한다.
미국에서도 오리(duck)의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Duck에는 ‘책임을 회피한다’는 뜻이 있다. 오리 울음소리의 의성어인 ‘쾍(quack)’은 ‘돌팔이 의사’를 뜻한다. ‘덕 훅(Duck hook)’은 골프코스에서 크게 벗어난 훅, ‘덕 코스(duck course)’는 대학에서 학점을 쉽게 딸 수 있는 과목, ‘덕 수프(duck soup)’는 만만하게 다룰 수 있는 얼간이를 각각 뜻한다.
‘레임덕(lame duck, 절름발이 오리)’도 있다. 거의 100년 전인 1915년 그려진 시사만화에 목발을 짚고 머리에 붕대를 감은 오리들이 의사당에서 나와 백악관 쪽으로 쩔룩거리며 걸어가는 장면이 있다. 그해 재선에서 무더기로 떨어진 민주당 소속 ‘레임덕 의원’들이 우드로 윌슨 대통령에게 정부요직 자리를 청탁하기 위해 줄지어 찾아가는 모습을 풍자했다.
레임덕은 현직 대통령이나 의원들이 재선에 실패한 후 차기 당선자가 취임하기 전까지의 잔여임기 동안 일어나는 통상적 권력누수현상을 일컫는다. 이 기간엔 민심도, 언론의 관심도 차기 대통령이나 의원들에게 쏠리기 일쑤여서 퇴임자들이 홀대받아 소위 ‘영(令)’이 서지 않는다.
예를 들면, 1860년 11월 노예폐지론자인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남부 8개주가 당시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의 레임덕 기간에 연방에서 이탈했고, 다음해 4월 링컨이 취임한 후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대공황 때인 1932년에도 당시 레임덕이었던 허버트 후버와 당선자였던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협력 부재로 사태가 더 나빠졌다.
제 20 수정헌법(1933년)이 이런 폐단을 막았다. 그때까지 3월4일이던 취임일을 연방의원은 1월3일, 대통령은 1월20일로 각각 앞당겨 레임덕 기간을 대폭 축소했다. 레임덕 기간을 악용한 대통령도 있었다. 존 애담스(2대)는 자기 파벌 인사들을 연방판사로 대거 임명했고, 빌 클린턴은 임기 마지막 날 자기 친인척 등 140명을 사면해 구설수에 올랐다.
한국에서도 ‘레임덕’이라는 영어가 그대로 통용된다. 요즘 한국 언론들은 MB(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형(이상득 전 의원)의 구속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며 호들갑이다. 최근 드러난 청와대 고위관리들의 비리도 모두 MB의 레임덕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MB는 이미 취임 초 광우병 촛불 시위사태 때부터 영이 서지 않았다. 임기 내내 레임덕이었다.
한국 대통령들은 5년 단임제에 묶여 레임덕을 피하기 어렵다. 임기를 무한정 연장하려했던 이승만과 박정희를 제외하곤 노태우부터 MB까지 모두 레임덕을 겪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의 레임덕은 꼭 임기 말에만 겪을 성질이 아니다. 본인의 도덕성 문제, 집권당내 계파갈등, 친인척 비리 등으로 임기 중 어느 때라도 불거질 소지를 안고 있다.
레임덕은 원래 정치용어가 아니었다. 18세기 런던 증권시장에서 황소(강세), 곰(약세)과 함께 쓰인 말로 파산한 빚쟁이 브로커를 지칭했다. 일설에 따르면 크리켓 경기에서 무득점을 표시하는 ‘0’이 오리 알처럼 생긴데서 무일푼 된 증권 브로커를 알이 없는 절름발이 오리로 비유하게 됐고, 그 오리가 미국에선 기능을 발휘 못하는 정치인으로 둔갑하게 됐다.
레임덕이 정가나 증권시장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정년퇴직을 앞둔 직장인, 자녀에게 여생을 의존하는 노인, 장기치료를 요하는 환자 등 거의 누구나 레임덕을 겪는다.
<윤여춘/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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