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주필)
총기소지 자유를 허용하는 미국의 수정헌법 2조 덕택에 미국인 총기보유자는 우리 한인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고 한다. 그래도 한인들 상당수가 기독교인이고 미국이 청교도들의 집단 이주로 만들어진 사회라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에게 총기는 아직도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이 현실이다.
뉴욕도 80년대 이민 초기에는 범죄율이 높아 불안에 떨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뉴욕만큼은 비교적 잠잠해 그런대로 안전한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곳에서 최근 끔찍한 총격사건이 맨하탄 32가 한인타운 인근에서 일어났다. 직장을 해고당하고 아파트에서 쫓겨난 50대 남성이 직장상사를 쏘아죽이고 무고한 행인 11명을 부상시킨 사건이다. 불특정 다수를 목표로 한 총기 난사 사건이 한인들이 상권을 이루고 있는 삶의 현장 부근에서 벌어진 점에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한국에서도 이와 며칠 간격을 두고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무고한 범죄가 서울의 상업과 주식시장의 중심인 여의도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직장을 잃은 30대 직장인이 전 직장의 동료들을 살해하기 위해 칼을 휘둘렀고, 지나가던 행인들을 향해서도 난동을 벌였다. 이곳 맨하탄 총격사건과 다른 점은 칼이냐 총이냐 차이 일뿐, 두 사건은 우리 한인 이민자들에게 연결성을 느끼게 한다.
두 사건은 모두 상업과 경제의 중심에서 실직자들이 비고용 상태에서 겪은 고통과 분노를 가학적으로 주변에 표출시킨 것이 공통점이다. 그들의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없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와 함께 호흡해 왔던 사람들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대체 왜 이런 도미노 현상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최근의 21세기 경제중심의 현대문명은 이제 크게 재조정을 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경제 자체가 구조조정되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물론, 10여 년 전 한국도 IMF 주도의 구조조정을 겪었었다. 유럽도 지금 유럽 국가 자체가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국가 부도나 유럽연합의 붕괴라는 극단적인 결과가 자명하다.
세계 경제의 최강국인 미국도 이 범주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은 이제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다. 다시 말해 미국 정부 자체가 극한의 구조적인 변화, 변모없이는 전세계적 경제 공황의 낭떠러지에서 번지 점프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속에서 힘없는 각 가정의 가장들은 어디에도 의지할 수 없다는 극단의 공포속에서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일터에 나가고 있다. 가정마다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해고, 실직의 불안감은 늘 상존하고 있고, 그 탈출구를 타인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표출한다면 이러한 사건은 동시다발로 이제 전 세계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이 명약관화하다.
한때,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라며 전세계 정치인들이 전세계 유권자들에게 표와 정책을 강요하고, 경제를 모르면 바보로 취급받던 시절이 불과 10-20년 전인데, 이제 그들의 정책에 우리가 바보처럼 당하게 되었나 하는 한심한 생각도 든다. ‘나라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묻기 전에 우리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먼저 물어보라’는 명언은 이제 허망한 구호로 우리의 귓전만 울릴 뿐이다.
전세계적으로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리고 있는 우리, 우리 스스로의 존립 근거자체가 공격받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개인의 불행을 불특정 다수에 겨냥한 가학행위는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21세기 첨단경제문명의 존립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 분명한 것은 그래도 우리는 “경제를 몰랐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어”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런 우리에게 또다시 ‘고난의 행군’을 강요하는 상황은 최첨단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 아닌가 한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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