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주필)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잘난 두뇌를 믿고 언제나 우쭐하며 살고 있다. 인간은 실제로 가진 능력과 기술을 자랑하듯 초고층 건물을 짓고 핵무기 개발에다 인공위성을 발사하고 최첨단의 통신기기를 만들어 지구촌을 하나로 엮을 만큼 그 능력이 끝 가는 데를 모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자연의 거대한 위력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이번 미동부일대를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Sandy)’는 인간의 능력이 자연 앞에 아무 것도 아님을 다시 한 번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번 허리케인에 대비해 사람들은 모두 먹을 것과 물, 초와 손전등을 구입하느라 주말 내내 분주했다. 수퍼마켓과 한국식품점이 사람들로 인산인해였고 주유소의 기름도 동이 날 정도였다. 나 역시 준비를 마치고 비상시 움직일 옷가지와 중요한 물건들을 찾아 가방에 챙겨놓았다. 맨하탄 뉴욕대학도 불안감에 학생전원에 소개령을 내렸다가 취소되는 등 곳곳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부산하게 움직였다.
아니나 다를까. 월요일 출근해서 서둘러 일을 마치고 귀가하고 나니 곧 이어 강풍이 불기 시작했다. 비를 동반한 바람은 밤새도록 쉬지않고 불어닥치면서 유리창과 건물을 마구 흔들었다. 견디지 못한 아파트의 발코니도 바람막이가 날아가 거기서 한발만 내딛으면 천 길 낭떠러지가 돼버렸다.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미동부지역의 주민 모두가 상당한 피해를 겪었다는 뉴스가 실시간으로 들어온다. NYU메디컬 센터가 정전이 되어 환자 200여명을 인근 병원으로 나누어 옮기는 등 피해상황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이미 소개령이 내려진 해변가 주변의 주택이나 가게, 주차해놓은 자동차가 물에 잠기고 남아있던 사람들도 물속에서 한명씩 구조돼 나온다는 소식이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곳곳에서 집 지붕과 벽, 유리창 등이 부서지고 강풍에 나무가 퍽퍽 쓰러지는 광경도 눈에 들어왔다.
모든 대중교통과 항공기, 브릿지 통행이 중단됐으며 학교와 관공서는 물론 일반 업소나 회사들의 경제활동도 전면 중지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집안에 꼼짝없이 갇혔다. 잘났다고 큰소리치던 그 수많은 인간이 한명도 예외없이 자연의 위력앞에 무릎을 꿇었다. 불안과 두려움에 떤 공포의 밤이었다. 시속 75마일의 거센 강풍은 마치 교만한 인간을 호되게 야단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서로의 신변을 염려하는 이메일과 전화들이 오고 갔다. 한 친구는 “강풍이 몰아치던 날, 오전에 가게 문을 닫고 매장 뒤편에서 물이 차올라 업소 안으로 물이 들어올까 염려하면서 집으로 왔다고 했다. 오후에 점심을 먹다가 ‘쿵’ 하는 소리에 놀라 보니 뒤편의 오래된 굵은 나무가 쓰러져 덱 위를 덮쳤고 방금 전에 전기가 나가 적막감 속에서 창밖의 바람 소리를 들으니 장난이 아닌 것 같더라고 했다. 밤새 비까지 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정말 두렵다면서 자칫 바람에 날라 갈 수도 있으니 기상 정보에 유념해서 무사히 다시 보자.”고 하였다.
롱아일랜드의 한 지인은 전기가 나가 자동차 개스를 넣기 위해 퀸즈로 나가려고 한다면서 연결도 잘 되지 않는 전화기를 통해 간신히 안부를 전해왔다. 이번 허리케인지역 주민들에게는 지난 주말부터 이런 종류의 전화나 이메일들이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모두 안녕과 무사함을 비는 것이었다. 불안한 밤을 지새우고 회사에 나와서도 모두들 “살아나왔느냐?”고 인사들이 오고 간다. 고마운 동료들이다.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앞으로는 자연속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더불어 잘 살아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해안지역 일대는 지금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될 만큼 피해가 막심하다고 한다. TV방송 앵커가 뉴스를 전하면서 눈물을 다 흘릴 정도이다. 경제가 어려운데 이런 상황까지 겹쳤으니 마음이 어수선하다. 십시일반 서로 도와 추워지기 전에 이번 피해의 복구가 속히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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