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의 아들 집에 내려가 첫돌 맞은 손자와 열흘간 함께 지내고 왔다. 여섯 달 전에 봤을 때 겨우 뒤집기만 했던 녀석이 콩콩 뛰어다닌다. 그 새 기거나 걸음마 하는 과정을 못 본 탓인지 매우 대견했다. 이미 걷는 건 재미없다는 듯 뒤뚱거리며 뛰다가 수없이 넘어진다. 방향전환이나 급정지가 서툴러서 벽을 들이받기 일쑤다. 영락없는 초보운전이다.
하지만 말은 행동에 비해 상당히 늦은 편이다. 하는 말이 고작 ‘움머’(엄마)이다. 아빠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움머다. 배고프다며 우유를 보챌 때도 움머, 네 살 위 누나가 갖고 노는 장난감을 움켜쥐고 빼앗을 때도 움머이다. 일이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목청껏 소리를 질러 울어 제친다. 고집덩어리고 안하무인격이어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모습이 손자보다 열흘 뒤 취임 한돌(4월11일)을 맞은 북한의 김정은을 연상시켰다. 그도 앞뒤 못 가리고 좌충우돌하는 정치 초보운전자이다. 아버지 김정일이 2년 전 갑자기 세상을 뜨자 27세에 권좌를 물려받았다. 외모는 뽀글머리 아버지보다 할아버지 김일성을 빼닮았다. 권위를 높이려고 일부러 그렇게 성형수술을 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었다.
북한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DPRK)이 공식 국명이지만 민주주의나 공화국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알다시피 왕정국가처럼 통치권을 세습하는 실질적 ‘김씨 조선’이다. 그 왕조는 꼭 장남에게만 권좌를 세습하지 않는다. 덕망, 리더십, 비전 따위도 왕위세습 조건으로 별로 고려되지 않는다. 자식 중에 ‘깡’이 가장 센 악질이 후계자로 책봉된다.
김정은은 빨치산 할아버지의 후예답게 ‘3살 때 총을 잡은 명사수’이며 소년시절 별명이 ‘샛별대장’이었던 독종이다. 친형 김정철(2살 위), 이복형 김정남(8살 위) 등 상대적으로 유순한 성격의 라이벌 형들을 제치고 후계자로 지명됐다. 아버지 김정일도 이복동생 김평일과 계모 김성애, 숙부 김영주를 숙청하고 39세에 후계권을 쟁취한 ‘깡다구’였다.
초보운전엔 선의의 깡이 필요하다. 내 아내는 운전면허를 땄지만 깡이 없어 30여년 간 핸들을 잡아보지 못했다. 김일성 3대의 깡은 그런 류가 아니다. 운전하다 행인을 치면 사과는커녕 또 들이받아 요절내는 조폭두목 같은 깡이다. 남한을 초전박살 내려고 일요일 새벽에 기습남침하고,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자르는 미군을 도끼로 찍어 살해한 깡이다.
김정은이 국제여론을 무시하고 핵실험을 강행한 깡도, 요즘 미사일을 만지작거리며 “서울과 워싱턴DC를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연일 위협하는 깡도 새삼스럽지 않다. 마찬가지로 그런 위협을 받는 남한이 태평스러운 것도 이상할 게 없다. 외국인들에겐 그게 불가사의로 보이는 모양이지만 남한국민들은 그런 깡과 위협을 지난 60년간 밥 먹듯 겪어왔다.
김일성 3대는 세를 과시하는 전쟁분위기를 본성적으로 즐기기도 하지만, 북한국민을 긴장분위기로 몰아넣는 것이 보신에도 유리하다. 김일성 3대와 그 추종세력의 지상과제는 조국통일도, 지상천국 건설도 아닌 ‘왕조 보전’이다. 약해 보이면 곧바로 전복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그런데, 딱하게도 남한의 박근혜 대통령 역시 초보운전자이다. 취임 후 좌충우돌하지는 않았지만 좌회전도, 우회전도 않고 전진만 고집하다 막다른 담벼락에 부딪쳤다. 젊은 시절 아버지(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부지부식 간에 터득한 ‘소신 운전’일 터이다. 하지만 아버지 때와는 세상이 너무나 달라졌다. 지금은 소통 없는 소신은 독선으로 매도당한다.
내 손자는 분명히 내년 두돌전에 초보운전 딱지를 떼겠지만 김정은은 두 돌에도, 또 그 후에도 초보운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움머’ 만 연발하는 내 손자처럼 그도 계속 으르렁 거리며 위협할 터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소지는 여전히 많다. 소신보다 GPS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초보운전 딱지부터 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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