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식 목사(라이코스교회)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과 그의 일가가 약 1,700억 원에 이르는 비자금 추징금을 내놓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천문학적 숫자의 돈을 내놓는다고 해도 국민들의 마음이 착잡하기만 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돈의 문제 이전에 그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국민과 나라를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와 자기 가족을 위하여 살았다는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놀부가 제비다리를 고쳐준 행동은 분명히 치료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고약했다. 놀부는 부자가 되기 위한 자기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사용해서는 안 되는 수단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놀부가 추구한 목적도 아주 더러운 것이었고, 사용한 수단도 아주 악하고 가증했다.
과연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나를 위하여 살아야 하나? 타인을 위하여 살아야 하나? 나도 자 자신과 내 가족을 위하여 산다면 전두환 씨처럼 비난 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자고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남을 위하여 혹은 전체를 위하여 나를 내어 주어야 이 세상은 존재하게 되어 있다. 소우주라는 인체를 생각해 보자. 배가 고파지면 이 정보를 받은 머리가 배를 채우라고 명령을 내린다. 그러면 눈, 다리, 손, 입, 침, 목구멍과 식도--- 모든 기관들이 음식을 나르고 삭이고 해서 위장에 보내고 소화를 시킨다. 그 과정에서 모든 기관들이 백 퍼센트 자기 아닌 남을 위해 일을 한다.
그러면 위장이 혼자 다 가지는가? 아니다. 위장은 그것들을 창자로 보내서 우리 몸에 필요한 온갖 영양소로 분해하여 모든 기관에 골고루 나누어 준다. 기관 하나하나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남을 위하여 혹은 전체를 위하여 제 실속은 차리지 않고 바보들 같이 존재하고 일할뿐이다. 소우주인 인체와 같이 대우주인 세상도 마찬가지 원리이다.
그러면 무조건 남을 위하여 살고, 나라를 위하여 살면 되는 것일까? 일본의 위대한 학자요, 사상가요, 기독교인이었던 우찌무라 간죠오씨는 “나는 일본을 위하여, 일본은 주 예수님을 위하여”존재하고 살아야 한다고 “2J(Japan, Jesus)를 외쳤다. 그에게는 일본나라도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나라도 일본나라 자체를 위하여 행동하거나 다른 목적으로 움직여 나간다면 잘못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일본 민족주의 애국자들에게 심한 공격을 받았다. 사실 나 개인도, 내가정도, 그리고 심지어 국가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떠한가? 교회도 역시 교회 그 자체가 존재 목적이 될 수 없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들이 자기네 교회부흥을 위하여 무서울 정도로 열심을 기울이고 있다.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교회부흥의 목적이 교회 자체를 위한 것이라면 군대가 군대를 위하여 존재할 때 타락하고 부패하듯 교회도 부패와 타락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절대적 가치를 이야기하기 위해 철학자 칸트가 말한 “인간은 오직 목적이다.”라는 명제를 생각해 보자. 이 말은 인간은 그 무엇의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특히 인간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아주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이 말은 새삼스럽게 빛이 난다. 그런데 칸트가 “인간은 목적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신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였을까? 즉 신과의 관계에서도 역시 인간이 목적이고 신은 수단이었을까? 다신론에서는 그럴 것이다. 다신론에서는 어디까지나 사람이 목적이고 신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로마에서는 신의 수가 30만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목적인 사람이 그 목적을 위해 필요한대로 수단인 신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신교인 기독교회에서의 절대적 가치는 주 예수님과 그 분의 나라이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로마서 14:7-8).”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은 그 자체가 절대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천명하는 것이다. 성경은 칸트가 말하는바 진정 인간이 모든 것의 목적이 되고 수단으로 전락당하지 않으려면 인간은 신의 수단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에게 묻는 20가지 질문』이란 책에서 기독교는 일신교인 유대교에서 파생했는데도 로마식 관행(로마의 다신교)을 따라 신의 계율을 수단으로 삼아 인간적인 종교로 바뀌고 보편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으로 평했다. 그러나 필자가 염려하는 것은 기독교회는 절대적 가치인 하나님의 말씀, 특히 그 분이 제정한 법과 정한 시간을 수단으로 보고 변개하였기 때문에 교회의 본래 사명인 세상을 변화시키고 빛을 비추는데 전진은 없고 제자리걸음, 혹은 후퇴하고만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전체가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절대적 가치를 상실한 듯 보인다. 북한 주민들에겐 김일성 주체사상과 김일성 숭배가 거의 절대적이다. 중국인들의 중화사상 역시 그들에게 절대적이다. 일본인들 가운데는 상당수가 그들의 천황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있다. 오늘 우리가 목숨을 걸고 희생하여야 할 절대적 가치는 무엇인가? 인류의 역사는 옳건 그르건 절대적 가치로 여기는 것과 거기에 목숨을 건 사람들에 의해 파괴력 있는 영향력을 끼치며 좋은 방향으로 혹은 나쁜 방향으로 변천해 오고 있다.
미국의 부흥은 미국 교회의 대각성 운동(the Great Awakening) 에서 기인했다. 대각성이란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지체와 머리라는 관계라는 성경적 진리를 깨닫고 오직 그리스도의 뜻만 따르고 목숨을 바치려는 각성이었다. 오늘날 교회와 민족 그리고 인류 사회 전반에 걸쳐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이 각성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가정을 위하여, 가정은 국가를 위하여, 국가는 인류를 위하여, 인류는 주 예수님과 그 분의 나라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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