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시골에 살았던 초등학생 때 끔찍한 꼴을 목격했다. 뒷집 할머니가 고령으로 별세하자 초로의 며느리가 시신을 산으로 가져가 손수 화장했다. 한 나절 하늘로 치솟는 연기를 보며 동네사람들이 ‘독한 여자’라고 했다. 마귀할멈처럼 소복에 머리를 풀고 곡하며 장작을 화덕 속에 계속 던지더란다. 그 화장이 고인의 유언에 따른 것임을 나중에 알았다.
그로부터 20여년 후 군복무 시절 서울 홍제동 화장터(현 벽제 승화원의 전신)에서 비슷하게 찜찜한 일을 경험했다. 제대 말년에 직속상관인 주임상사의 부인이 암으로 죽어 그곳에서 화장했다. 동료 고참 병장들과 함께 고인의 유골을 받아 화장터 뒷산으로 올라가 뿌렸다. 오랜 세월동안 재가 얼마나 쌓였는지 산등성이가 희뿌옇던 걸로 기억된다.
옛날 영화 ‘바이킹’은 멋진(?) 화장장면이 피날레를 장식한다. 이복동생 토니 커티스의 칼에 죽은 커크 더글러스의 시신을 배에 실어 통째로 불살라 화장 겸 수장시킨다. 007영화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에서는 관 속에 갇힌 숀 코너리가 화장로에 삼켜지기 직전 탈출한다. 지난달 아프리카에서 유럽인 2명이 산채로 화장(화형) 당한 영화 같은 뉴스도 있었다.
정치만 빼고 모든 분야에서 눈이 돌만큼 빨리 발전하는 한국이지만 장사문화처럼 확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불과 20년 전엔 망자 10명 중 8명이 매장됐다. 10년 전까지도 10명 중 6명꼴이었다. 하지만 지난해엔 화장이 10명중 7명꼴(74%)로 역전됐다. 경남 사천시는 화장률이 전국 최고치인 93%에 달해 사실상 모든 장례가 화장으로 치러진다.
한국에선 2005년 화장률(52.6%)이 매장률을 처음 능가한 후 매년 3% 정도씩 늘어나고 있다. 2000년 이후 매장된 시신은 60년이 지나면 의무적으로 옮기도록 정부가 법제화한 후 화장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부산(87.8%), 인천(85.8%), 울산(81.8%), 서울(81.5%) 순으로 높고 전남 장흥(35.6%), 전북 무주(30.8%)에 이어 충남 청양(26.5%)이 가장 낮다.
한 등산친구가 최근 벽제 승화원을 ‘관광’하고 왔다고 자랑했다. 공원처럼 아름다운 환경과 깨끗한 시설이 옛날 홍제동 화장터와는 비교가 안 되더란다. 악명 높던 굴뚝도 없고 화장과정이 컴퓨터로 자동처리 된단다. 땅덩어리가 좁아 묘지가 부족하고 고령화로 가족구조가 달라진데다 환경보호 인식이 확산돼 화장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단다.
화장이 보편화되자 장사꾼들이 새로운 업종을 개발했다. 유골을 다시 고열 처리해 보석 같은 구슬로 변형시키는 비즈니스다. 보기 좋고 보관하기 쉽고 위생적이며 일부를 몸에 지닐 수 있다고 선전한다. 하지만 이는 ‘인체의 자연복귀 섭리’를 거스른다는 비판도 있다.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은 한국처럼 다급한 상황은 아닌데 화장 권면 TV광고를 전문업체인 ‘넵튠 소사이어티’가 계속 내고 있다. 지난주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전국 장의사협회 총회에선 유골을 달에 보내거나 산호초 위에 묻는 방법이 제시됐다. 한국처럼 유골로 합성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미국회사 대표 등 전 세계에서 약 6,000명이 총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이 총회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은 것은 버섯포자를 배합한 ‘시신 복’이었다. 이 옷을 입힌 시체는 일반 시체보다 부패 속도가 몇 배나 빠르다고 했다. 관, 특히 철제관을 사용하지 않고, 묘지 안에 콘크리트 벽을 매설하지 않으며, 시신도 화학 방부처리 없이 그대로 묻는 ‘청정 매장’도 관심을 끌었다. 미국에선 화장보다 매장이 여전히 대세인 셈이다.
지난 토요일 친지 모친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화장 아닌 매장이어서 하관예배가 이어졌다. 널따란 장지공원에 묘비가 촘촘했다. 한국의 화장률이 70%를 넘어섰고 홍제동 화장터가 벽제 승화원으로 ‘승화’된 지난 20년간 내 사고방식은 저들 묘비처럼 요지부동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충남 청양이 내 고향 논산에서 멀지 않다는 생각에 쓴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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