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의 일부 종교인들과 시민단체에서 주장한 ‘대통령 사퇴’ 발언으로 논란이 적지 않다. 이는 얼마 전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을 필두로 일부 개신교 목회자 단체, 일부 불교단체와 원불교, 성공회 정의구현사제단 그리고 YMCA 등등 몇몇 종교단체와 시민단체들이 지난 대선의 불공정과 부정에 대하여 진정성 있는 대통령의 사과 촉구를 넘어 대통령의 사퇴를 주장하는 발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정부와 보수단체는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에 대한 ‘대선불복’으로 혹은 국가의 안전을 혼란하게 하고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종북’발언으로 규정하고 반박과 규탄 성명을 내고 있어 혼란과 갈등이 깊어가고 있다. 특별히 이번 발언이 더욱 주목 받는 것은 일반인이나 정치인의 발언이 아닌 종교인, 성직자, 목회자들의 발언이라는 점이다.
이번 발언은 그 내용이 ‘대선불복이냐 혹은 종북이냐’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넘어, 종교인들의 현실 정치문제에 대한 발언 여부가 쟁점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모든 종교의 일반적인 입장을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기에, 주로 기독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대개 사람들은 정교분리를 내세워 교회가 정치 문제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을 비판한다. 정교분리란 종교와 세속의 정치는 서로 다르고,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발상에서 나온 이론이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여 종교는 국가의 정책이나 정치문제에 대하여 왈가왈부하지 않고, 국가 역시 종교의 일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정교분리 원칙은 근대국가 형성 과정에서 나온 종교와 국가 간의 타협적 원칙으로, 정교일치 혹은 신정(神政)정치를 이상으로 추구하는 이슬람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현재 대다수 국가에서 헌법적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정교분리의 원칙이 정치와 종교의 갈등을 해결하는 전가의 보도는 아니다. 성경의 일부 구절을 인용하여 정교분리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려는 주장도 있으나, 사실 정교분리는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주장이다. 정교분리론은 성(聖)과 속(俗), 정치와 종교가 명확히 구별된다는 이원론적 사고에서 형성되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함께 세상을 성과 속으로 구분 하던 사고는 이제 낡은 사고가 되었다. 현대의 복잡한 세속의 영역에서 일어난 나치즘, 군사독재, 정권의 부정과 부패, 환경위기, 경제적 양극화의 심화 등은 반 인간적, 반 생명적 현상을 초래하였다. 이 점에서 인간성의 존엄성, 인간의 구원,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가 실현되는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종교와 정치 문제는 더 이상 결코 분리 되어 이해될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 정치와 종교는 구분은 되지만, 상호 분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종교인이나 성직자 역시 더 이상 세상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비록 영역은 다르지만 종교인이나 성직자도 사회 발전의 책임을 나누어지고 있는 국민의 일원이다.
그러므로 종교적 신념과 양심에 비추어보아 정부의 정책이 부당하거나,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거나, 그 방향이 비인간적 이거나 반생명적일 경우 이에 대하여 발언하고 증언하고 참여해야 한다. 사실 한국 교회는 일제 강점기에 교회는 세속의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일부 선교사와 교회지도자들의 정교분리론에 사로잡혀 많은 교회들이 독립운동을 외면한 부끄러운 전례를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을 추구하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일들은 일반인이나 정치인은 물론 누구보다 종교인들이 지키고 추구해야 할 소중한 덕목이다. 사회가 부패할 때는 소금의 역할을, 진실이 탄압받는 어둠의 시대에는 빛의 역할을 하는 것이 종교인들의 소명이다. 종교인은 근대화 과정에서 타협적 산물로 나온 정교분리라는 공리(公理) 때문에 주저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과 종교적 확신에 기초하여 깊은 기도와 묵상 가운데 더 진실 되고, 더 깊은 사랑으로, 더 크게 ‘바른 소리’를 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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