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의 가능성을 믿어***지금부터 시작이야
▶ 홈리스*마약복용 부모 밑 학생들의 절망 상처 돌보며 ‘희망의 교육’ 실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총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그 총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냈습니다."
리치몬드시 디잔(De Jean) 중학교 에스더 현(현승림, 24) 교사는 대부분 홈리스셀터에서 등교하는 학생들과 지낸 지 1년 6개월이 넘었다. 처음엔 소리를 지르고 스테이플러를 던지고 수업중 뛰쳐나가 밖에서 배회하다가 잡혀오는 이 아이들이 무섭기만 했다.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너무 힘들어서 펑펑 눈물을 쏟기도 했다. ‘못한다’ ‘안한다’는 그들의 거부에 담긴 깊은 절망과 상처, 무기력함의 벽이 너무 두터워 설자리가 없는 듯했다.
▲너의 한계는 여기까지가 아니야
예일대를 졸업하고 정부 프로그램 ‘Teach for America’(가장 열악한 환경의 학교에서 2년간 교사로 활동할 시 대학 학자금융자 연장, 대학원 진학시 장학금 혜택)에 따라 배정받은 리치몬드시 디잔중학교에서 에스더는 자신의 친구들을 떠올렸다. 고등학교때 꽤나 똑똑했지만 지금은 마약에 빠져 감옥을 들락거리는 친구와 게임에 중독돼 부모에게 짐이 되고 있는 친구들이 바로 이 아이들의 미래로 보였다. 7, 8학년이지만 리딩레벨(reading level)이 4학년 수준인 이들은 학교에 왜 다녀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다. 학교가 그들의 삶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줄 몰랐다.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교육의 위대한 힘을 믿었다. 확신했다. ‘내 한계는 여기까지다’고 선을 긋는 아이들에게 ‘아니다 너는 더 높은 곳에 이를 수 있다. 너의 가능성을 믿어. 자신감을 가져’라고 외쳤다. ‘나도 이 길을 왔는데 너희도 갈 수 있다’고 북돋웠다.
▲알파벳도 모르던 9살 소녀
아버지의 목회지를 따라 9살 때 노스다코다(North Dakota)주로 처음 미국 땅을 밟은 에스더는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알파벳도 모른 채 내린 그곳에는 한국사람은 물론 아시안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개척교회를 섬기는 부모님은 큰딸인 에스더가 교회반주를 맡아야 한다며 노스다코다주립대 피아노 연습실로 딸을 보냈다. 집에 없던 피아노를 찾아간 곳이 그곳이었다. 음악을 전공한 아버지가 에스더를 가르치고 있던 어느 날 그녀의 피아노소리를 듣던 그 대학 피아노과 교수가 무료로 가르쳐주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6년간 로버트 그로브스 교수는 에스더를 자신의 제자로 키워주었다. 궁핍한 살림에 생일선물 크리스마스선물을 받아본 적도 없는 에스더가 청바지 하나 사는 게 소원이었던 그 시절, 그로브스 교수의 가르침을 통해 사랑과 감사를 배웠다. 그 소녀는 당차게 성장해 11학년 때 워싱턴주 벨링햄 고등학교서 클럽을 조직해 우간다 자매결연 학교를 돕고(1만달러 지원) 예일대에서는 아카펠라그룹의 리더이자 지휘자로 전세계 연주회 공연을 다녔다.
▲향상되는 학생들 실력 놀라워
이민자 부모 밑에서 성장한 에스더 이야기에 학생들이 귀기울여준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공동의 감정을 느끼며 학생들은 그녀와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조지아주 한 아파트에 살 때 경찰차가 늘 일정한 시간 순찰을 돌았던 이야기, 총소리를 처음 듣고 황망했던 경험 등을 들려주기도 한다. 요즘엔 인스타그램(instagram, 온라인 사진공유 및 소셜 네트워킹서비스)에 개인 관심사와 만난 사람들을 올리면 학생들의 댓글이 쏟아질 정도로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누군가 관심을 갖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 적도 없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적도 없는 아이들에게 이런 적극적 반응이 놀랍기만 하다. 또 나날이 향상되는 학생들의 작문실력에 놀라기도 한다. 예일대를 졸업한 에스더를 사람들이 다르게 대하는 것처럼 학생들도 자신과 같은 혜택을 누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울증 깊은 학생들이 가끔 칼로 자신의 몸을 자해했다는 문자를 그녀에게 보낼 때는 마음이 힘들다. 이들에 비해 자신이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지 않나 되돌아보게 된다. 한번 떨어지면 회복하기 어려운 것이 중고등학생 시절인데 부모와 학교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면 평생 음지생활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기에 교육은 사람을 살리는 일인 것 같다.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일인 것 같다.
▲CBMC의 도네이션으로 학교는 행복
꼭 한인교회를 다니라는 아버지의 당부로 집에서 가까운 교회를 찾은 곳이 오클랜드연합감리교회였다. 좋은 인연은 줄이어 맺어지는지 지난 12월 8일 교회 권사님 초청으로 북가주CBMC연합회(회장 이상백) 송년의 밤 행사에 참석하게 됐다. 그 자리에서 CBMC측은 그녀의 학교로 1,000달러를 도네이션해주었다. 실비아 그린우드 교장은 이 도네이션을 받고 감사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디잔중학교는 종이, 연필이 매일 부족하다. 연필을 학생들에게 제공하지만 아이들이 다시 가져오지 않기 때문이다. 몇 대밖에 없는 복사기는 맨날 고장나서 교사들 모두 수리의 달인이 됐다. CBMC에서 도네이션해준 1,000달러로 프린터기를 구입하기로 했다.
그녀는 상당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미국 할머니가 전화해서 피아노가 필요하지 않느냐며 피아노를 도네이션해주었고, 피아노를 가르쳐준 그로브스 교수와의 만남도 그렇다. 되돌아보면 가는 곳마다 받은 사랑이 넘쳤다. 앞으로 하버드대학원에 진학해 한국문화와 한국문학을 전공할 꿈을 갖고 있지만 아직 결정된 바는 없다. 격려와 용기를 준 부모님께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에스더는 페미니스트다. 미국사회에서 고정된 아시안 여성의 이미지, 이를테면 조용하다, 착하다, 귀엽다 등의 편견을 깨고 싶어한다. 아시안 여성들도 당당히 리더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해보이겠다는 다부진 포부를 갖고 있다.
<신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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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에서 가장 열악한 교육환경인 리치몬드시 디잔중학교에 자원해온 에스더 현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한 사진. 부모들의 관심과 돌봄을 받지 못하던 학생들은 에스더 현 교사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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