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부분의 사무실 책상에 공통적으로 놓인 물건이 있다. 커피 머그다. 커피 잔과 용모와 용도는 다르지만 예전에도 책상마다 터줏대감이 하나씩 자리 잡고 있었다. 재떨이다. 식당에도, 다방에도, 관공서에도, 심지어 병원에도 테이블마다 재떨이가 필수품이었다. 버스와 기차는 물론 비행기 안에서도 승객들이 제트기 엔진마냥 연기를 연신 뿜어냈다.
담배를 한 번도 피지 않은 성인남자는 성인(聖人) 말고는 없을 것 같다. 나는 대학시절 친구들과 맛도 모르고 뻐끔담배를 피웠다. 군대시절 화랑담배를 배급받았지만 핀 것보다 부대 뒤 구멍가게서 라면과 바꿔 먹은 게 더 많았다. 하지만 신문사 입사 후 골초가 됐다. 편집국이 늘 자연(紫煙)에 덮여 있었다. 오래지 않아 그 파란연기의 주공급자가 됐다.
당시 피운 담배는 아리랑, 청자, 솔, 거북선, 한산도 따위였다. ‘미군부대 아줌마’가 방문판매하는 켄트, 카멜, 폴몰 등 비싼 양담배가 인기 있었는데 위험부담이 컸다. 요즘 BMW를 굴리며 말보로를 피는 젊은이들은 이해 못하겠지만 당시 양담배를 피다가 전매청 단속반에 걸리면 엄청난 벌금을 물었었다. 그 때는 양담배가 무조건 밀수품으로 간주됐다.
그 양담배의 본산인 미국에서 꼭 50년전 ‘금연 혁명’이 일어났다. 담배가 각종 질병과 사망을 유발하는 원흉이라는 공식 보고서가 처음 발표됐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임명한 루터 테리 당시 연방의무감은 최고 권위자들을 모아 2년여 동안 광범위하게 조사토록 한 끝에 1964년 1월11일 역사적 보고서를 발표하고 정부에 강력한 금연대책을 건의했다.
그 무렵 미국의 성인은 거의 두명 중 한명(42%)이 골초였다. 케네디 사후 20년 만에 대통령이 된 배우 로널드 레이건도 담배광고 모델이었다. 1949년 한 잡지에 게재된 광고에는 담배를 꼬나문 그의 사진을 배경으로 “순하고 뒷맛이 없는 체스터필드 담배는 애연가들이 가장 기뻐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라는 대사가 그의 서명과 함께 실려 있다.
테리 보고서 이후 담배는 퇴락의 길을 걸었다. 1965년 담배갑에 경고문이 부착됐고 1971년엔 라디오-TV 담배광고가 금지됐다. 이듬해 비행기에 금연석이 설정됐고 1988년 국내 노선부터 시작해 2000년엔 여객기내 흡연이 전면 금지됐다. 무소부재의 담배자판기가 사라졌고 식당, 공원 등 공공장소는 물론 모든 건물의 25피트 반경이 금연구역이 됐다.
엄청난 세금 탓에 담배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팔다 걸리는 업주는 벌금과 함께 면허정지를 당한다. 학생들이 끽연습관에 물들지 않도록 캠퍼스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선포하는 대학이 늘어난다. 담배회사들이 툭하면 고소당한다. 지난 1998년 워싱턴주를 포함한 40개 주정부의 소송을 받은 담배회사들이 물경 2,000억달러를 배상했다.
그런데도 담배회사들은 망하지 않았다. 미국인 흡연율이 50년간 18%로 떨어졌지만 골초는 여전히 4,300여만명을 헤아린다. 지구촌 흡연자는 인구증가와 함께 계속 늘어나 10억명에 육박한다. 중국 끽연자만 3억이다. 이젠 마약인 마리화나까지 워싱턴과 콜로라도 등 일부 주에서 합법화됐다. 담배연기를 맡지 않아도 머리가 빙빙 돌 만큼 세태가 어지럽다.
한국 흡연자도 996만명(2012년)으로 1980년 이후 150만명이 늘었다. 1인당 하루 25개비를 피워 세계평균보다 40%를 더 태운다. 전매청이 민영화돼 KT&G로 탈바꿈한 뒤 에쎄, 레종, 디스 등 아리송한 이름의 20개 제품을 생산 판매한다. 말보로(미국 필립모리스), 던힐(영국 BAT), 마일드 세븐(일본 JTI) 등 다국적기업 양담배도 떳떳하게 필 수 있다.
골초였던 나는 1978년 LA에 연수 왔을 때 물 만난 고기였다. 수십가지 양담배가 널려 있었다. 요즘 한 갑 값으로 한 카튼(10갑)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14년 전 시애틀에 와 산에 다니면서 담배를 딱 끊었다. 공기가 너무나 맑았다. 자연 속에서 깨끗해진 폐가 자연(紫煙)을 한사코 배척했다. 금연을 올해 신년결의로 정한 독자들께 등산을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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