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보스턴에 갔다가 MIT 대학을 구경 했다. 기술 혁신을 선도하는 학교 이미지에 맞게 프랭크 개리가 디자인한 마리아 스타타 센터를 지나게 되었다. 현관과 창문이 튀어나온 독특한 디자인의 외관이지만 빗물이 새고 배수가 안되어 MIT가 디자이너에게 소송을 제기했다는 건물이었다.
그 옆에 대형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는 자그마한 공간 앞을 지나게 되었다. 작년 4월 15일 발생한 보스턴 마라톤 테러 당시 테러범들이 살해 한 션 콜리에 경찰관이 숨진 자리라고 한다. 보스턴 마라톤이 열린 15일 결승선 근처에서 두 차례 폭발이 일어나며 무고한 사람 3명이 죽고 260명이상을 다치게 한 테러범들이 탈취한 차량을 타고 도주하다가 18일 오후 MIT 건물 32동에서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고 이때 사망한 경찰이었다.
바람 불고 흐린 날씨 때문인지 건물 입구 바로 앞인데도 오가는 사람이 없었고 자그마한 기념비 양쪽으로 커다란 유리병에 든 촛대(불은 꺼져있었다)가 놓여있었다. 겨우내 삭막하게 변해버린 나뭇가지 사이로 여러 개의 성조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을 뿐 쓸쓸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었다. 그의 육신은 가고 그의 이름만 차가운 기념비에 남겨져 있어 잠시 머물다 가는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지만 표정이 저절로 딱딱해지는 엄숙한 자리였다.
형 타메를란 차르나예프는 18일 총격전에서 사망했고 동생 조하르 차르나예프는 부상당한 채 도망쳤다가 보스턴 교외에서 검거되어 현재 사형판결을 받은 상태다. 아무리 크고 엄청난 일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 흐려지고 우리의 삶은 여전히 진행되는 것처럼 3월 마지막 주의 보스턴 거리에는 2014년 보스턴 마라톤 예고 깃발이 여기저기 나부끼고 있었다.
1897년 시작되어 매월 4월 셋째 주 월요일에 열리는 보스턴 마라톤은 올해 118회째로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매년 2만명 이상이 참가하며 관람객 수만 50만명이 되는 이 마라톤 대회에 1947년 서윤복이 1위, 1950년 함기용, 송길윤, 최윤철이 1~3위, 2001년에는 이봉주가 우승하였고 현재는 한국에서 온 한국인, 뉴욕의 한인 수백명이 마라톤에 참여하고 있다. 보스턴마라톤 테러 1주기를 맞은 올해도 참가신청이 이어지고 있다 한다.
어떤 도구도 필요 없이 오직 인간의 몸뚱아리 하나만 있으면 되는 마라톤은 많은 이들이 좋아하고 쉽게 참여하고 있다. 주위에는 마라톤 매니아들이 많다. 그들은 하나같이 ‘인생은 마라톤이다’, 또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다’로 양분되어 말한다. 인생이나 마라톤의 공통점은 혼자서 가는 고독한 길로 남이 해줄 수 없는 길이라는 것, 하지만 마라톤은 페이스메이커가 같이 달려주어 동반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또 인생이나 마라톤이나 처음 출발이 좋았다고, 늦었다고, 반드시 마지막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마라톤은 룰을 위반해서는 안 되면 반드시 결승점이 있고 완주는 의미가 있다. 인생 역시 계속 달려가야 하지만 정해진 코스를 반드시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차이는 마라톤은 새로 시도할 수 있지만 인생은 다시 해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인생이란 마라톤을 어떻게 완주해야 할까. 소설가 김연수는 ‘실패한 자들이 마라톤을 완주하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1,000미터씩 35번쯤 달리면 누구든 벽을 만납니다. 처음 나간 대회에서 저도 그 벽을 만났습니다. 온 우주가 저 하나 완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밀어내는 느낌이더군요. 야속했어요. 저 하나 완주하는 걸 막기 위해서 온 우주씩이나 나서다니, 포기할 수밖에요. 그 다음 몇 달 동안 다른 선수들은 어떻게 그 벽을 통과하는 지 살펴봤습니다. 아무리 봐도 방법은 단 하나뿐이더군요. 그냥 뚫고 지나가는 것. 그게 제일 혁신적인 해결책입니다. 지나간 뒤에야 저는 애당초 그런 벽이 없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그러니 멈추지 말고 계속 달려서 벽을 만나면 뚫고 지나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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