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덫’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각색해 세계 최장기 공연기록을 세운 연극이다. 지난 1952년 10월6일 런던에서 초연돼 60년만인 2012년 11월18일 2만5,000번째를 기록한 후 지금도 공연되고 있다. 그녀의 모든 소설은 결말을 알고 읽으면 전혀 재미없다. 그래서 소설을 읽거나 연극을 본 후 누가 살인범인지 남에게 일러주지 않는 것이 관례다.
폭설로 고립된 런던 외곽의 한 여관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 ‘쥐덫’도, 중동지방을 달리던 열차 안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다룬 ‘오리엔트 특급 살인’도, 나일 강의 유람선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다룬 ‘나일 강의 죽음’도 등장인물들이 제각각 용의 점을 갖고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혼란을 일으키게 하지만 결국 진범은 전혀 뜻밖의 인물로 판명된다.
한국의 국무총리 인사청문회가 크리스티 소설을 연상케 한다. 살인사건이 발생한 후 명탐정 푸아로의 예리한 추리로 멀쩡했던 등장인물들의 탐심과 비행이 속속 들어나면서 속절없이 살인범으로 몰린다. 한국의 국무총리 내정자도 처음에는 과거의 업적에 초점이 맞춰져 적임자로 떠오르지만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난도질을 당하고는 뜻밖에 낙마하기 일쑤다.
‘국민검사’ 또는 ‘너무 잘 드는 칼’이라는 별명을 들으며 올곧은 검사의 이미지를 자랑한 안대희 총리후보자가 내정 6일 만에 전격 사퇴했다. 국회 청문회에는 문턱도 못 가봤다.
지난해 7월 대법관에서 물러나 변호사를 개업한 뒤 ‘전관예우’를 누리며 5개월 만에 16억원을 벌은 게 결정적 걸림돌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초대 총리후보 김용준에 이어 두 번째다.
김대중 정부가 미국식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한 2000년 이후 5명의 총리 내정자가 낙마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안 전 대법관과 김 전 헌법재판소장은 자진사퇴 했고, 김대중 대통령이 첫 여성총리로 내정한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과 장대환 매일경제 사장은 청문회에서 퇴짜 맞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명한 김태호 의원은 청문회 과정에서 사퇴했다.
이들 실패한 5명의 총리후보는 공통적으로 탐욕이 문제였다.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었고 그를 위해 위장전입 했다. 학력 허위기재, 자녀의 이중국적이 문제되기도 했다.
김태호 의원은 소위 ‘박연차 게이트’(고위 공직자 뇌물수수) 연루 의혹을 해명했다가 거짓말임이 탄로됐다. 모두 총리후보로 내정돼 국가 제2인자의 영달을 꾀했지만 되레 망신만 당한 꼴이다.
물론 한인사회에는 인사청문회가 없다. 하지만 요즘 워싱턴주 한인사회에 인사청문회 양상으로 발전할 조짐이 있는 불씨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다. ‘거지 고아 대학교수’이며 미주 한인사회는 물론 본국에까지 가장 성공한 한국계 미국 정치인으로 꼽히는 신호범 전 주 상원의원과 그가 출석하는 베다니 교회 사이에 빚어지고 있는 갈등이다. 역시 돈이 문제다.
교회 측 주장은 신 전의원이 작년 8월 개인 신탁회사를 차려 경매위기에 처한 베다니 교회의 모기지 180여만달러를 융자은행에서 매입했고, 교회가 경매 처분되는 것을 막겠다던 당초 약속과 달리 그 돈을 회수한다며 경매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 신탁회사의 진짜 속셈은 상업용도인 교회 땅을 차지하려는 것이라는 게 교회 측의 논리이다.
금년 초 치매를 이유로 돌연 은퇴한 신 전의원은 아직 이 문제에 말이 없다. 장로인 그는 교회와 교회부설 샛별문화원의 든든한 후견인이었다. 입양아 위주로 구성된 샛별공연단의 국내외 공연을 종종 수행하며 힘을 실어줬다. 문화원장인 최지연 사모는 신 전의원의 한인사회 홍보를 맡았고 그의 한글 자서전도 대필했다. 교회와 신의원은 ‘치순관계’였다.
신 전의원은 20여년 간 의회를 무대로 한인사회와 주류사회의 교량역할을 했다. 전국 최초로 워싱턴주 ‘한인의 날’ 제정을 성사시킨 주인공이다. ‘한인사회의 자산’으로 오래오래 기억되는 게 좋다.
교회도 돈 문제로 시끄러워지면 지탄을 피하기 어렵다. 치순관계가 견원관계로 치닫지 않도록 ‘은혜롭게’ 풀어야 한다. 이번 문제가 양쪽에 ‘쥐덫’이 되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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