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이주 후 십수년째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낡아서 삐걱거리고 비좁지만 환경이 자연친화적이다. 우거진 숲속의 산책로에다 크고 작은 연못이 다섯 개나 있다. 저녁 산책길에 야생 오리 떼와 자주 조우한다. 어미 오리가 새끼 7~8마리를 이끌고 먹이를 찾아 이 연못, 저 연못으로 옮겨 다니다가 사람을 보면 우르르 몰려온다. 간식거리를 기대해서다.
이들에게 ‘치리오’ 시리얼을 한 줌 던져주면 새끼 오리들이 다투어 쪼아 먹지만 어미는 한 톨도 입에 대지 않고 지켜본다. 한번은 고양이가 새끼 한 마리를 덮쳤다. 내가 고함질러 고양이를 쫓아버리자 어미 오리가 날쌔게 날아올라 달아나는 고양이를 맹렬하게 추격했다. 덩치가 훨씬 큰 고양이에게 달려드는 야생 오리의 모성과 존속보호 본능에 감탄했다.
이번 주 시애틀지역의 톱뉴스가 그 야생 오리의 모성을 새삼 떠올리게 했다. 브레머튼의 6세 소녀를 이웃집 17세 고교생이 폭행, 강간, 살해한 사건이다. 소녀의 사체를 잡풀이 무성한 수렁에 던져 넣고 널빤지로 덮은 후 주민들의 무사귀환 기도모임에 태연히 참석한 용의자의 뻔뻔함 못지않게 소녀의 부모 행태가 괘씸했다. 오리만도 못하다고 생각했다.
이들 부모는 막내딸 제니스 라이트가 지난 2일 밤사이 집에서 사라졌지만 3일밤에야 경찰에 신고했다. 제니스가 동네(모빌홈 파크)를 쏘다니며 아무 집에서나 먹고 놀다가 잠잘 시간에 귀가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그날도 걱정하지 않았단다. 어처구니없다. 평소에 철없는 딸이 하루 종일 혼자 나돌아 다니도록 놔둔 건 부모의 책임을 저버린 범죄행위다.
교인(몰몬)인 아버지는 용의자가 ‘가족이나 마찬가지’라며 교리에 따라 그를 용서한다고 의젓하게 밝혔고, 인디언 원주민인 어머니는 부족과 함께 추모모임을 갖겠다고 말했지만 딸의 죽음을 초래한 본인들의 보호책임 기피에 대해선 말이 없었다. 당연히, 당국은 이들 부부의 나머지 다섯 자녀들 중 성인이 된 첫째, 둘째를 제외한 3명의 양육권을 몰수했다.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성폭행 당하는 여성(소녀 포함)이 근래 크게 늘어나 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여성들이 3명 중 1명꼴로 신체폭행이나 성폭행을 당한다며 이를 ‘전염병’에 비유했다. 폭행자는 대부분 남편이나 남성 동거자이고, 미성년 피해자들은 대개 가정이 불우하거나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유엔은 이라크 북부를 대부분 장악한 후 이슬람국가(IS)를 창설한 수니파 반군이 지역 내 타민족 여성과 소녀들을 1,500명가량 납치해 성노예로 삼고 있다고 엊그제 강력하게 비난했다. 지난 4월엔 나이지리아의 이슬람 무장반군이 여학생 300여명을 납치해 성폭행 했다. 식민지 한국 여성들을 ‘위안부’로 동원해 성폭행 한 일본 군부에게서 배운 모양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시골마을에선 친 여동생을 10년 가까이 성폭행 해오다가 지난 5월 들통난 6명의 오빠가 강간혐의로 구속됐다. 아들들의 망나니짓을 일찍부터 알고도 눈감아 준 부모도 아동학대 혐의로 구속됐다. 제자들을 꼬드겨 성관계를 가졌다가 미성년자 강간혐의로 체포되는 교사들은 숱하게 많다. 제자의 아기를 낳은 여교사까지 있었다.
한국에선 10년전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요즘 ‘윤일병 사건’처럼 엄청난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울산의 여중생을 밀양의 고교생 44명이 1년간 집단 강간한 사건이다. 나중엔 여중생의 동생과 사촌언니까지 당했다. 며느리를 강간한 시아버지가 최근 체포됐고, 아내와 별거중인 아들 대신 돌보던 손녀를 9살 때부터 3년간 성폭행한 할아버지도 잡혔다.
성폭행이 전염병처럼 만연하고 멀쩡했던 사람이 별안간 직립원인 수준으로 퇴보하는 현상을 사회학자나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어떻게 설명하는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자는 딸도 다시보자. 자나 깨나 딸 조심”이라는 말이 우스개 아닌 진리라는 점이다. 먹이를 새끼들에게 양보하고 고양이나 개들이 접근하지 않는지 경계하는 어미 오리에게서 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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