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에 관객들의 박수가 터지는 장면이 있다. 패색이 짙어진 왜장 구루시마가 조선수군 대장선에 뛰어올라 칼을 빼들고 이순신에게 달려들다가 오히려 번개 같은 이순신의 칼에 머리가 뎅강 잘린 채 털썩 무릎을 꿇는다. 떨어진 구루시마의 머리를 조선수군이 뱃전에 매달고 기세를 올리자 수적으로 절대 우세한 왜군 전함들이 혼비백산해 내뺀다.
이순신은 명량해전에 앞서 부하 한 명의 목을 자른다. 승산이 전혀 없는 싸움을 접고 병사들의 목숨을 살려달라며 애걸복걸한 녀석이다. 이순신은 전체 수군의 사기를 떨어뜨린 그를 단칼에 벤다. 일벌백계의 공개 참수다. 그 병사와 구루시마 외에도 이 영화에는 왜병들에 참수당한 양민들의 몸통 없는 머리가 수십 개 쏟아져 나오는 엽기장면도 있다.
사람이나 동물의 목을 잘라 몸통과 머리를 분리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가 참수(斬首)고, 이를 응용한 처형이 참수형이다. 참수의 역사는 엄청 길다. 삼국지의 관운장은 청룡언월도를 휘둘러 원소의 명장 안량, 문추의 목을 잇달아 날렸다. 천하무적이지만 골이 빈 여포는 의부인 정원의 목을 잘라 그의 정적인 동탁에게 주고 적토마를 하사 받았다.
참수형의 역사도 길다. 거의 2,000년 전 기독교 이론을 정립한 바울 사도는 이교를 전파한 혐의로 체포돼 로마에서 참수 당했다. 예수와 동시대 인물인 세례 요한도 바울에 앞서 참수됐다. 동생의 아내(살로메의 어머니)와 결혼한 갈릴리 분봉왕(영주) 헤롯의 부도덕성을 비판했다가 그 여인의 간계로 참수된 후 머리가 쟁반에 얹어져 살로메에게 선사됐다.
참수형은 중세기에 영국 등 유럽 국가에서 보편적 사형방법으로 자리를 굳혔다. 보기에는 끔찍해도, 사실은 ‘통증 없이 빨리 끝내는’ 신사적 처형방법이다. 중세기 영국 죄수들은 군인처럼 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명예로 여겼다. 귀족 죄수들의 참수엔 칼을 사용했지만 평민들에겐 도끼를 썼다. 여자죄수들은 대개 마녀로 몰려 참수 아닌 화형을 당했다.
참수형이 일반화되면서 1791년 프랑스 혁명 와중에 단두대인 ‘기요틴’이 발명됐다. 상공에 매달린 육중한 칼이 떨어지면서 밑에 엎드린 죄수의 목을 치는 참수기계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 왕비도 혁명군에 의해 기요틴으로 처형됐다. 히틀러는 집권과정에서 정적 등 2만여명을 기요틴으로 학살했다. 프랑스의 전체 기요틴 처형자보다도 많은 숫자다.
참수에 관한한 한국도 할 말이 많다. 특히 순교와 불가분의 관계다. 이차돈은 바울보다 약 500년 후 불교를 신라에 전파하려다 참수 당해 한국의 첫 순교자가 됐다. 10년 전인 2004년엔 김선일 선교사가 무역회사에 아랍어 통역사로 취직해 이라크에 갔다가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에 납치돼 참수 당했다. 그 장면이 비디오로 공개돼 세상이 발칵 뒤집혔었다.
한국 천주교는 참수자의 피 속에 꽃을 피웠다. 한국최초의 김대건 신부와 한국교회의 ‘반석’으로 불리는 이승훈 등 수천명이 1801년부터 1866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참수 당했다. ‘망나니’라는 직업도, ‘절두산(切頭山)’이라는 지명도 생겨났다. 지난달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광화문 광장의 시복식에서 순교자 124명을 만인 공경의 대상인 복자로 선포했다.
극단주의 이슬람 반군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1년 전 납치한 미국인 스티븐 소틀로프 기자를 지난 2일 참수하고 김선일 선교사 때처럼 실황 비디오를 배포했다. 제임스 폴리 기자의 2주전 참수에 이어 두 번째다. 다음 대상은 영국인 데이비드 헤인즈라고 공표하고 미국과 그 연합국들이 IS 근거지의 공습을 중단하지 않으면 계속 참수하겠다고 위협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말처럼 이들은 인류의 암적 존재다. 빨리 제거해야 한다. 우리에겐 ‘깡패 국가’ 북한에 억류돼 있는 배준호 선교사가 당장 걱정거리다. 참수 당하지 않았지만 눈도, 귀도, 입도 막혀 머리가 없는 거나 진 배 없다. 아무 이유 없이 5년 중노동형을 살고 있는 그가 린우드의 가족 품으로 하루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미국정부가 손을 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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