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기왕의 미 대륙횡단 여행기(4)
▶ 유타주 - 아치스 캐년
공원 초입에 있는 붉은 바위산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델리킷 아치(Delicate Arch)
세월이 다듬어 놓은 붉은 조각품의 오묘함
나바호 인디언의 정신은 어디론가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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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난 지 벌써 사흘째. 그렇게 오랜 세월 많은 여행을 다녔는데도 특히 준비하는 기간엔 잠을 설치곤 한다. 이번 여행은 나도 모르게 더욱 흥분과 긴장을 했는지 그 피로가 슬슬 눈으로 나타나 눈꺼풀이 무거워 진다. 이럴 때 잠을 이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가 내 경우 무엇을 먹는 일이다. (며칠 전 지인들에게 여행 계획을 전하였더니 몇몇 분들이 떠나기 전날 선물을 주셨는데 김치, 밑반찬에 심지어 용돈까지 쥐어 주는 분도 있었다.
자기들은 생각만 하고 못하는 일 대신 해달라는 눈물겨운 부탁이다. 그 중 선배 한 분께서 우리가 어렸을 때 즐겨 먹던 캬라멜, 초코렛, 캔디를 한 보따리 주셨다. 바로 이렇게 피곤할 땐 최고의 선물, 캬라멜 향이 입안에 가득 퍼지며 피로가 사르르…… 역시 선배는 선배다) BYU를 지나 약 3시간 남동쪽으로 달려 붉은 황토로 빚어진 아치스 캐년에 들어서면 하늘을 찌를듯한 붉은 바위들의 거대한 숲이 나타난다.
온 우주의 삼라만상이 한 장의 파노라마로 펼쳐져 그 넓은 다른 세상을 자동차로 몇 시간을 달려야 한다. 신들의 정원, 악마들의 정원, 삶의 천국과 지옥을 함께 볼 수 있는 곳, 어제는 솔트 레이크의 천국에서 살다가 오늘은 악마들의 지옥 용광로에 들어온 것인가?
수 억년 전 유타 주는 바다였다고 한다. 이론적으로는 잘 이해가 되질 않지만 바다 바닥에는 수백 피트에 달하는 소금과 광물질이 침전되었고 이 바닥은 지각의 융기와 함께 솟아오르며 유타 주 남동부와 콜로라도 주 남서부를 이루었다 한다. 바위와 흙이 그 위에 쌓이면서 압력을 견디지 못한 소금 층이 빙하가 움직이듯 미끄러져 내리면서 커다란 굴곡이 생겼고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물이 침투하여 소금 층을 녹여 마침내 바위와 흙을 갈고 깎아 험준한 모래 암석의 계곡이 나타나게 되었다.
천만년 전부터 시작된 풍화 작용은 아치스 캐년의 형태를 만들어 오늘날 기기묘묘한 아치 조각품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현재도 이 풍화 작용은 멈춘 것이 아니며 오늘 우리가 보는 아치스 캐년은 이 풍화 작용의 절정기에 있다고 한다.
어떤 작가의 글로 어떤 화가의 붓으로 어떤 언변가의 말로 이것을 표현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아~ 신음소리만 낼 뿐. 아치스 캐년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아마 무신론자라도 신에 대해서 또는 조물주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세월이 다듬어 놓은 갖가지 모양의 사암 덩어리들이 굵직한 것만 꼽아도 2천여 개가 넘는다. 이중에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델리키트 아치(Delicate Arch)라는 바위일 것이다. 밑부분이 잘라진 타원형의 모습을 하고선 높이만도 수십 층 건물에 맞먹는다. 이 바위는 유타 주의 상징물과 같은 것으로 유타 주의 차량들의 번호판의 배경 그림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밖에 이름도 재미있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많이 있는데 데블스 가든, 윈도스 섹션, 코트하우스 타워스, 밸런스 락 등등… 트레일 코스를 통해 이곳을 대충 보는데도 하루는 족히 걸린다.
아치스 캐년에서 남쪽으로 6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모압(Moab)이라는 조그만 마을이 있는데 아치스 캐년의 전진 기지라 할 수 있다. 아치스 캐년이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모압은 관광객을 위한 숙박 시설과 레스토랑들이 많이 들어서서 관광 도시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아치스 캐년을 구경한 다음 남서쪽으로 맞는 편 쪽에 캐년랜즈 국립공원(Canyonlands National Park)이 있다. 아치스 국립공원과 가까이 있고 또 지질학적으로도 유사한 점이 많지만 아치스 국립동원과는 또 다른 맛과 경치를 자랑하는 점이 신기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미국인들은 그랜드 캐년보다 캐년랜즈를 더 알아준다. 이유는 단 하나, 이곳에서는 원하는 모든 것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랜드캐년은 절벽 위에서 계곡을 내려다 보는 게 전부다. 그렇지 않으면 따로 투어를 이용해 래프팅을 하거나 헬리콥터 관광 투어를 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하이킹 코스도 있지만 일반인들은 좀처럼 시도하기가 어렵고 콜로라도 강을 건너보려면 최소 하루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캐년랜드는 다르다. 드라이브와 트레일 코스, 오프로드, 산악 자전거, 래프팅 등등 모든 것이 가능하다.
캐년랜즈를 구경하고 난 다음 191번을 타고 남쪽으로 약30마일 내려와 몬티쎌로(Monticello)에서 491번 남쪽으로 2시간 정도 가면 160번 선상에 4코너 모뉴먼트(Four Corners Monument)가 있다.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Navajo Indian Reservation)에 자리잡고 있는 4코너는 유타주, 네바다주, 아리조나주, 콜로라도주 등 4개 주가 만나는 미국에서 유일한 지점이다.
그곳을 향해가는 동안 군데군데 뷰트(Butte)를 보면서 경이로움에 차는 자꾸 멈춰 서려 한다. 해지기 전에 4코너 네 개의 주에 내 몸을 던져보고 싶은데 말이다. 끝없이 펼쳐진 줄자로 그어놓은 듯한 길을 달려가며 길이란 단어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길이란 얼마나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기울어 가는 저녁 해처럼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이어지는 내 인생의 길 같이 느껴진다. 먼저 떠나가 그대의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고 싶다는 노래가 흐른다. 정말 나는 난 누구를 위한 노을이 되고 싶다.
4코너 입구에 도착하니 5달러씩 입장료를 내란다. 시니어라고 얘기해도 막무가내다. 두 사람 모두 젊고 예뻐서 돈을 받아야 된단다. 그 말이 너무 예뻐서 기분 좋게 10달러를 지불하고 들어와 보니 황무지 한가운데 펄럭이는 네 개 주의 깃발 밑에 초라한 인디언들이 기념품 판매를 하고 있다. 나바호의 옛 영광을 뒤로 한 채.
또한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는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가 있다. 적색사암인 메사(Mesa)와 뷰트(Butte- 메사가 침식되어 더욱 작아져 혼자 서있는 언덕)가 대평원 위에 늘어선 말로 형용하기 힘든 이 독특한 사막의 풍경은 5천만년의 긴 시간 동안 바람과 비 온도 등이 고원의 표면을 다듬고 깎이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낸 위대한 자연의 창조물이다.
끝없는 붉은 황무지의 대평원에 치솟은 거대한 암석기둥, 깎아낸 듯이 수직으로 뻗은 절벽과 절벽, 지속적으로 불어대는 뜨거운 붉은 먼지 바람, 물 한 방울 없는 사막, 죽음의 땅이자 저주받은 지옥의 땅으로 여겨지는 이곳은 백인들과 싸움에서 패해 쫓겨 다닌 나바호 인디언 조상들의 선혈이 배어있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불행한 역사가 기록된 역사의 현장이자 나바호 인디언들의 숭고한 성지이기도 하다.
오늘 하루 캐년들을 돌아보며 조금 많이 걸었는지 피로 몰려온다. 어느 분의 “여행은 다리가 떨릴 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떨릴 때 하는 것”이란 글귀를 떠올리며 숨을 고른다.
악마들의 정원
-장금자
악마들이 장난일까
저 들끓는 지옥의 용광로
온 우주의 삼라만상
한 데 모두어 마구 흩어 놓았네
신의 노여움으로
다시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악마들,
하늘로 하늘로
온몸을 흔들어 힘껏 날으려 하네
<글∙사진 성기왕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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