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 사업을 계기로 하와이는 한국을 비롯한 지구촌 한민족에게 명실상부 ‘미주한인 이민종가’로 새롭게 부각되었다. 100여년간 역사의 무관심 속에 묻혀 있던 사탕수수 농장 이민선조들의 고단했던 삶의 여정과 그들의 속깊은 조국애가 세상 속으로 드러나며 하와이 한인사회는 미주한인사회 자부심이 되었고 오늘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 내 다문화 가정이 지향해야 할 삶의 모델이 되고 있다. 111년의 이민 역사의 풍랑을 헤치고 새로운 이민 200년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하와이 한인사회의 변화를 돌아보며 새로운 역사의 물줄기를 진단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 특집>
하와이 한인이민 111년 역사 속엔 한민족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가 ‘공존’
1902년 12월22일 인천 제물포항을 떠난 겔릭호에 몸을 실은 최초의 한인 이민자들은 일본을 거쳐 망망대해 태평양의 겨울바다의 모진 풍랑을 헤치고 1903년 1월13일 하와이 호놀룰루 제2부두에 첫 발을 디뎠다. 기회의 땅이라 굳게 믿고 호놀룰루 항에 도착한 102명의 이민선조들은 111년의 역사적 풍랑을 헤치며 지금은 미국 50개 주 어디에도 한국인이 거주하는 놀라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민 111년 하와이 한인사회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하와이는 초기 사탕수수농장 이민선조들의 후손들을 비롯 1960년대 후반 제3의 이민물결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 온 미주한인 이민자들에게 자신들의 이민생활 시작의 탯줄이 묻혀 있는 듯 막연한 그리움을 갖고 바라보는 곳이다. 또한 미주 한인사회와 조국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1903년 호놀룰루 항에 첫 발을 디딘 102명의 이민선조들은 오하우(Ohau), 마우이(Maui), 카우아이(Kauai), 하와이(Hawaii) 섬에서 시간당 19센트라는 최저임금만 받고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장 노동자로 일하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영어를 배우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학교와 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수백만달러를 모금해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그런 부모의 땀과 조국사랑을 보고 자란 후손들은 하와이 주류사회 정치, 경제, 법조계에서 깊은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2003년 미주한인이민100주년을 선도하는 ‘자랑스러운 한인’으로 미국 내 한인사회의 위상을 높임은 물론 조국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데도 일조하고 있다.
그들은 미주한인이민100주년 기념사업 이전에는 다민족 사회 하와이 주민으로만 생활해 왔다. 그러나 100주년 기념사업 이후에는 다민족 사회 하와이에서 ‘코리안 커뮤니티’라는 울타리에 동참해 소수민족으로서 한인 이민자들의 권익 옹호를 위해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가 하면 하와이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후손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심어주며 한류열기에 동참해 가고 있다.
지난 11년간 오아후를 비롯한 마우이, 빅 아일랜드 동포들은 예상치 못한 한류열기 속에 다민족 사회 하와이에서 자랑스러운 한인 이민 후손들과 더불어 한국인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오아후의 경우 한인회 정상화 이후 한인문화회관건립추진사업의 재시동이 걸린 이후 60년대 제3의 이민물결 속에 태평양을 건너 온 이민1세들을 위한 노후대책 마련을 위해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와이 한인사회의 지난 11년간의 가장 큰 보람은 한인자본 은행 ‘오하나 퍼시픽 은행’의 설립과 발전이다.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을 성공적으로 주도했던 김창원 회장이 또 한번 은행 설립에 앞장서 불가능의 역사를 ‘가능의 역사’로 일구어 낸 기적으로 회자되는 한인자본 은행의 설립은 드라마 한류열기를 한류 경제활성화로 전환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이런 한류경제의 열기는 한국인 무비자 시대를 열며 한-하와이 관광산업 교류의 물꼬를 넓히고 있다. 그러나 지난 11년간 하와이 한인이민종가로서 조상들의 발자취를 발굴해 내고 관리함은 물론 관광상품화 해 가는 작업은 제자리 걸음이다. 본보는 11월 한 달 간 자랑스러운 한인 주인공들을 찾아 지난 11년의 변화를 들어보고 기자들이 직접 찾아 본 마우이와 빅 아일랜드 한인사회 오늘의 변화를 짚어보는 시간을 독자들과 함께 해 본다.
1) 8선 고지에 도전하는 실비아 장 룩 주 하원의원
1999년 미주 한인 1.5세로 최초로 주하원 의원에 당선된 실비아 장 루크(47 한국명 장은정) 의원은 한인1.5세로 주하원에서 미주한인 이민100주년 기념사업 성공 개최를 위해 20여만달러 주정부 지원금을 한인사회에 배당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장 의원은 하와이대학교와 샌프란시스코 법대를 졸업했다. 학부 시절에 학생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장 의원은 하원의원으로 활동하며 현재는 주 하원 재정위원장을 맡아 주정부 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또한 주내 유명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며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2014 선거 승리를 기원한다. 바쁜 가운데에서도 인터뷰에 시간을 내 주어 감사하다 올해로 미주한인이민111년을 맞았다. 2000년 당시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을 위해 당시 룩 의원이 주하원에서 큰 활약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를 회상해 보고 지난 10년간 하와이 한인사회 변화에 대한 룩 의원의 의견을 듣고 싶다.
지난 10년간 하와이 한인사회는 전보다 더 다양성을 겸비해 오면서 주류사회에서도 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오고 있다. 한국 문화의 대중화에 힘입은 음식문화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지역 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한인 식당들과 사업체들도 탄력을 받고 있고 따라서 한인사회도 이에 발맞춰 현지인들의 요구에 응하며 문화를 함께 공유하기 시작하고 있는 점에 자부심과 기쁨을 느끼고 있다. 하와이 한인사회가 앞으로도 한국의 더 많은 문화 콘텐츠를 지역주민들과 나눌 수 있길 기대해 본다.
-한국일보/라디오 서울은 미주한인 이민200년 역사에서 한인 주지사 탄생 1호의 주인공으로 귀하를 주목하고 있다. 정치인으로서 귀하의 정치철학과 앞으로의 비전을 소개해 달라.
그렇게 좋게 봐주셨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이번 재선에도 성공한다면 현재 대표하고 있는 25지역구 주민들 뿐만 아니라 하와이주 전체의 공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싶다.
-‘자랑스러운 한인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한인사회 행사에서는 요즘 좀처럼 얼굴을 볼 수 없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현재 지역구 의원으로 활동하며 많은 정치활동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정치계로 입문하기 전부터 본업으로 삼아온 변호사로서의 업무도 상당한 편이다. 또한 한 사람의 주부로서 아이의 엄마로서 가정생활에도 충실해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지역 내에서 개최되는 행사들에 최대한 참석하려 노력하지만 때로는 부득이하게 초대를 거절해야 하는 상황도 있어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주 하원 첫 출마 당시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한인사회에 큰 감동을 전해 준 바 있다. 가족관계 및 첫 아들의 근황도 궁금하다.
정계에 처음 진출할 때도 마찬가지이지만 지금도 가족들의 지지와 도움이 없다면 의원으로서의 활동이 불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온 가족이 한 팀이 되어 협심해 도움을 주고 있고 이에 무척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아들은 학교도 잘 다니고 운동부에도 가입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있다. 가능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다.
-주류사회 정치인으로서 한인사회에 당부하고 싶은 사항이 있다면?
얼마 전에 가족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고 왔는데 모국의 역동적이고 생기 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히 놀라울 정도로 맛있는 음식들과 전통시장을 방문한 경험은 가족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후 모국에 대한 더욱 깊은 존경과 자부심을 갖게 됐고 또한 1967년 당시 어린 나이였던 내가 한국을 떠나왔을 당시보다 얼마나 많은 발전을 이룩했는지에 대해 경의심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역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모국의 기운이 한인사회에도 전해져 더욱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길 바란다.
-한인 이민 2세들의 주류사회 진출을 위해 선배로서 당부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최대한 많은 양의 책을 읽길 권장하고 싶다. 미 본토와 떨어진 하와이에 살면서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일들이란 그리 많지 않지만 독서를 통해서 많은 것들을 대신 체험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류사회와 동화되는 것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하고 싶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와이에서 자신이 설 자리를 자연스럽게 찾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마우이 이아오 계곡에 위치한 한국공원 전경>사진<사진설명: 빅 아일랜드 힐로 알라에 공동 묘역에 자리한 이민선조 기념비와 마우이 이민정 모습>사진2<사진설명: 2010년 선거 운동 당시 실비아 장 룩(가운데) 후보 후원의 밤에 참석한 김영해(왼쪽) 전 한인회장과 한태호 전 한인회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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