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라고 기억된다. 내가 근무하던 메릴랜드 주립대학의 신문대학 동료교수들 가운데는 국제적으로 알려진 교수가 있었다. 당시에는 문선명 씨의 통일교가 상당한 사회 논란거리였었다. 비행장이나 공공도로에서 꽃을 강매하다시피 하는 젊은 미국인들은 세뇌공작을 당한 것이라는 기사들이 종종 게재되었던 때였다. 또 문선명 씨 자신이 탈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연방감옥에 수감되었었는가 하면 일간지 워싱턴 타임스를 창간하여 1년에 수천만 달러씩 적자를 겪고 있는 모순도 있었다.
그런데 그 교수가 자기 돈 한푼도 안들이고 통일교 주최로 모스코바에서 열린 ‘세계 평화’ 학술대회에 초대받아 다녀온 다음에 “사람들이 왜 통일교를 나쁘다고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문선명 씨가 괜찮은 사람이더라”는 말을 내게 해주어서 깜짝 놀랐다. 선전의 위력, 특히 향응을 받았을 때 사람의 견해나 느낌이 바뀌어지는 경향을 실감할 수 있었다. 통일교 측이 한국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초대했을 때 내가 거절한 이유들 중 하나였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에서 ‘브루킹스의 새 현실’이라는 제목의 기획 기사를 읽고 그 생각이 났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1916년에 설립된 석학들의 종합연구소(Think Tank)로, 연구 결과들이 흔히 정부 정책에 반영되어왔기에 워싱턴의 가장 유력한 싱크탱크로 자리매김해온 곳이다. 현 연구소장은 예일대와 옥스퍼드 출신으로 타임지의 특파원 및 고위 편집진에 속했다가 클린턴 행정부 때 외교관이 되어 국무차관을 지냈던 스트로브 탈보트다.
그런데 탈보트는 종래 여러 기금과 기부금으로 운영되어오던 브루킹스의 재정상태를 강화하기 위해 기업이나 개인 부호들의 헌금을 적극적으로 유치, 그 결과 기부자들이 그 기관의 의제 설정에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고관들이 정부를 떠나면서 제일 바람직한 자리라고 생각하는 브루킹스에는 상주 연구원이 150여명 그리고 비상근 연구원이 250여명이라서 그 경비가 만만치 않다. 탈보트가 2002년에 브루킹스로 왔을 때 그 연구소가 적자였지만 모금운동에 성공해서 2003년 모금 총액이 3,200만 달러이던 것이 2013년에는 1억달러가 되었다니까 그가 모금에 얼마나 성공적인지를 짐작하게 된다.
그런데 기부자들이 연구소의 연구 의제 설정에 영향을 끼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대해 브루킹스 운영진은 모금 대상자들과 연구원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없으며 한 기부자가 운영기금의 2.5% 이하의 액수 한도 안에서만 기부하게 함으로써 잠재적 영향력을 축소시킨다고 응수한다.
그러나 포스트지 기사에 인용된 사례는 돈을 대는 사람들의 영향력이 은연 중 발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피터 루이스란 보험업계 억만장자는 마리화나의 합법화를 자기 필생의 사명으로 삼았던 사람이란다. 그는 콜로라도와 워싱턴주에서 합법화를 이룩하는 밑거름이 되었지만 오바마 행정부나 의회 지도자들로부터는 전혀 호응을 받지 못했었다.
그런데 브루킹스에서 2012년에 루이스의 심복이 주선한 마리화나 세미나가 공동 주최로 열린 다음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브루킹스가 마리화나 합법화 운동의 견해를 지지하는 연구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저명학자들이 세미나에 참석했을 뿐 아니라 적어도 20여개의 연구 논문과 신문의 오피니언 면 기고가 그 결과였단다. 루이스는 2013년에 죽기 전에 브루킹스에 50만달러를 기부했다고 담당자들이 전한 것과 연관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작년 11월에 80세로 죽은 루이스는 마리화나 합법화를 위해 전국적으로 4,000만 달러를 썼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그의 아이디어를 반대해온 것에 대해서는 좌절감을 느껴 왔었다는 것이다. 그의 방문 이후에 열린 브루킹스 세미나는 여러 주에서의 합법화 운동이나 입법에 대해 연방정부가 반응을 보이는 방법 그리고 합법화된 주들의 법이 실시되도록 방임하는데 대한 것이었단다.
피리 부는 사람에게 돈을 주는 이가 곡조를 정한다(He who pays the piper calls the tune)라는 서양 속담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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