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유수 제품의 프로토타입은 내 손에서”
▶ 30여 년간 정밀판금 분야에서 한 우물 파온 장인
록히드 마틴, 테슬라, 솔린드라 등이 그의 고객
40년 가까이 매일 12시간 근무가 성공 비결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37년 넘게 ‘정밀 판금 가공 제조 분야’라는 외길을 걸어온 USK 매뉴펙처링 김문도 대표(62세).
그는 어렵사리 잡은 아메리카 드림의 원천 요소로 “한 우물만 파온 집념과 끈기”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가 미국에서 성공한 기업인, 특히 미주 한인 사회 최초로 이 분야에 뛰어든 한인으로 평가 받는 데에는 그의 고객들 면모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방산업체 록히드 마틴에서부터 지금은 없어진 세계 최대의 태양광 업체인 솔린드라, 테슬라 전기 자동차, 시스코, 반도체 장비업체인 KLA 텐코와 어플라이드 머터리얼, IBM, 램 리서치에 이르기까지 그의 고객은 실리콘밸리에서 잘나가는 유명업체들로 즐비하다.
김 대표는 이들 업체의 신제품 ‘프로토타입(protype)’을 만들어 주는 판금 재단사이다.
‘프로토타입’이란 회사가 개발 디자인한 제품을 대량생산에 앞서 제작해보는 원형을 말한다.
그래서인지 ‘프로토타입’의 가격은 넉넉한 시간을 주어지면 다행이지만 시간이 촉박해 주문이 들어오면 디자인에다 엔지니어링 서포트까지 가미해 제품 완성에는 세심한 기술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제품이 테슬라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케이스와 충전 장비, 에이덱의 MRI 장비 ‘프로토타입’인데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그가 이들 유명 업체들을 고객으로 갖기까지 그의 이민 생활은 성실과 노력이 대변해주고 있다. 한국 금성사(현 LG)에서 전기 기사로 근무하다 어머니 장남필 여사(2011년 작고)와 함께 1977년 도미한 그는 줄곧 북가주 지역에서 거주해온 이곳 토박이 기업인.
그도 이민 초창기에는 적지 않은 고초를 겪었다.
“이민자들의 가장 큰 고통은 현지인들과의 언어적 문화적 소통이죠. 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손짓 발짓 해가면서 의사소통을 이어간 나에게 엔지니어링 일자리가 주어지기란 만무했죠.”일자리를 위해 무려 300여 곳의 문을 두들겼지만 그에겐 대답 없는 메아리 뿐이었다고.
사실 그는 전기 기사 보다는 군대 복무 시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하던 특기를 이용해 미국에서 태권도 사범(국기원 공인 4단)을 해보겠다는 각오로 미국에 건너왔다. 국제 심판 자격증까지 갖춘 그였지만 미국에서의 태권도 관장 자리 역시 쉽게 얻을 수 없었다고 술회한다.
그러던 그에게 머신샵에서의 청소잡이 들어온다. 당시 머신샵은 백인들의 전유물이라고 할 만큼 소수계가 하기엔 여건이 꽤나 불리했다. 머신샵에서의 청소잡이지만 그나마 주류 사회에 다리를 걸칠만한 연결고리를 잡은 김 대표는 낮에는 일을 배우고 밤에는 머신샵 청소를 하는 주경야독의 심정으로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해갔다.
당시 머신샵의 주 고객층은 탱크를 제조하는FMC 등 방위산업체가 대부분이었다.
“백인 매니저가 저를 잘 본 것 같아요.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들을 배워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산호세 주립 대에 진학해 기계공학을 공부하면서 이 분야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자 이제는 독립할 때가 왔다고 판단한 김 대표는 1987년 산타클라라에서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그리고 결혼까지 하게 되면서 생활도 점차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렇게 문을 연 USK 매뉴펙처링은 정밀 판금 제조, 가공 및 기계 조립을 전문으로 하는 금속 제조업체로 성장하게 된다.
유니온 시티에 9만여 평방피트의 공장과 사무실을 갖고 있는 USK는 컴퓨터, 태양광, 반도체 장비, 로봇 산업에 이르기까지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기업들에게 다양한 ‘프로토타입’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있다.
"고객들이 개발하고 디자인한 제품에 저희들이 옷을 입혀주는 것이라 여간 정성이 들어가지 않아요. 이렇게 탄생한 ‘프로토타입’이 양산 작업을 거쳐 최종 제품화되면 그야말로 땀의 결과물인지라 큰 보람을 느낍니다.”IBM에서 만든 초기 개인용 컴퓨터 5대 ‘프로토타입’도 그의 회사에서 나왔다.
“한때 태양광 업체인 솔린드라가 우리의 주 고객이라 회사 매출도 크게 늘어났어요. 그러다가 솔린드라의 폐업으로 매출이 감소되긴 했지만 또 다른 고객들이 찾아와 지난 수년간 회사 매출은 안정적입니다.”‘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주는 정밀 판금업이 호황을 누린다는 소식에 한때 이 분야에 종사하는 회사들도 부쩍 늘어났다.
그러나 호황이 있으면 불황도 뒤따르기 마련. 금융 공황으로 기술력이 뒤떨어지거나 자금력이 부족한 기업들은 문을 닫았고 지금은 탄탄한 기술력을 갖춘 기업들만 남게 됐다.
김 대표의 가장 큰 경쟁업체들은 Samian-SCI Corp, Vander-Bend Manufacturing, MassPrecision, Galgon Industries 등이다.
대부분의 제조업체가 벼랑 끝에 몰리며 경영난과 자금난에 허덕이는 상황가운데서도 단단한 기술력과 서비스 품질 및 납기경쟁력으로 불황의 늪에 빠진 적이 없다는 USK 메뉴펙처링의 김문도 대표.
맨몸으로 창업해 지속적인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던 비결은 역시 김 대표 자신이 지닌 금형 설계 및 제품 개발 분야에서 갖고 있는 뿌리 기술을 꼽는다.
김 대표는 기술력을 외부로 증명하고 성장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제품 개발부터 생산까지 직접 인력채용과 양성에 있어 "각자의 역할이 모두 다르니 기업에서는 맡길 자리에 맞게 뽑고 지원자들은 맡을 자리에 맞게 준비하면 된다"며 "일자리 미스매치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재채용과 양성에 있어 중소기업들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관이다.
그래서인지 USK 매뉴펙처링의 또 하나 성공 비결로 사주와 직원들간의 탄탄한 팀웍을 꼽는다.
50명 직원 대부분이 10년 이상 장기 근속자들이며 20년 이상 근무자도 다수다.
그의 회사 이름은 미국(United State)와 한국(Korea)의 영문 첫 글자를 따서 USK.
한국과 미국의 유산을 모두 내포하겠다는 김 대표의 나라 사랑에 대한 애착이 담겨져 있다.
“은퇴할 나이지요. 그렇지만 40년 넘게 해왔던 일을 쉽게 놓을 수가 없더라고요.”“어떤 악조건 속에도 살아남는 것이 기업 성공의 모범답안”임을 강조한 금문도 대표는 40년 가까이 매일 아침8시 출근에 7시 퇴근의 성실함도 잃지 않고 있다.
김문도 대표는 현재 경영은 아들인 켄트릭 김에게 맡기고 고객 관리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둘째 아들인 크리스 김도 구매 담당으로 아들 둘 모두 회사 일을 맡고 있어 끈끈한 가족애도 돋보인다.
<홍민기 편집위원>
1987년 설립된 USK 메뉴펙처링의 김문도 대표는 30여 년간 정밀판금업에 종사해온 기술의 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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