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갔다 온 대한민국 남자치고 특등사수 아니라는 사람이 없다. 물론 뻥이다. 낙제생 사수도 많다. 논산훈련소에서 사격 테스트에 떨어진 나도 숱한 낙제생들과 함께 소총을 거꾸로 치켜들고 쪼그려 앉아 ‘오리걸음’ 기합을 받았었다. 부대에 배치된 뒤에도 매주말 ‘총기수입(손질)’ 검사에서 “불량” 판정을 받고 연병장 일주 구보기합을 받기 일쑤였다.
총과의 악연 탓인지가 총이 홍수를 이루는 미국에 30년 넘게 살면서 허구한 날 총격사건 뉴스를 접하며 경기를 일으킨다. 지난 달 말에도 시애틀 북쪽 동네의 매리스빌-필척 고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터져 범인을 포함한 학생 3명이 숨지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 한인학생 폴 이(19)군이 희생된 시애틀 퍼시픽 대학(SPU) 총격사건이 일어난 뒤 4개월 만이다.
매리스빌 사건 꼭 한달 전에 연방수사국(FBI)이 사상 처음으로 ‘다중 총격사건 보고서’를 발표했다. 2000~2013년 전국에서 160건의 대량 총격사건이 발생했고 486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중 366명은 지난 7년간 희생됐다. 전반부인 2000~2006년에 연평균 6.4건 발생했던 다중 총격사건이 2007~2013년엔 연간 16.4건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역대 최악의 다중 총격사건은 2007년 버지니아텍 대학에서 터졌다. 한인학생 조승희가 쌍권총으로 32명을 사살하고 17명에 총상을 입혔다.
부상자가 가장 많았던 건 2012년 콜로라도 영화관 총격사건이다. 58명이 부상당했다(12명 사망). 5개월 후 코네티컷 초등학교에서 꼬마 20명과 교직원 6명이 사살돼 가장 가슴 아픈 다중 총격사건으로 기록됐다.
FBI 보고서를 보면 총 160건의 다중 총격사건 중 범인이 경찰에 사살된 경우는 21건 뿐이다. 범인 23명은 2분 내, 44명은 5분 내에 상황을 끝냈다. 73명이 자살했고 그중 9명은 경찰과 교전까지 벌이다가 자살했다. 2명은 경찰에 투항했다.
뜻밖에도 총격범 중 6명이 여성이었다. 대학에서 발생한 12건의 다중 총격사건 중 2건이 여학생에 의해 저질러졌다.
미국에선 하루 30명 이상, 연간 3만명 이상이 총에 맞아 죽는다. 그 중 절반이 18~35세 연령층이고 3분의 1은 20세 미만의 청소년 및 어린이다. 총기 사망자가 인구 10만명 당 3.2명꼴이다. 한국과 일본엔 비교도 안 되고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등 서구 국가보다도 20배 많다. 미국인이 총에 맞아 죽을 확률이 다른 선진국 국민보다 20배나 많다는 뜻이다.
미국의 민간인 소유 총기는 2억8,300만 정에 달한다. 인구 100명 당 88정, 소유주 1인당 6.9정 꼴이다. 세계인구의 5%도 안 되는 미국인들이 세계 전체 민간소유 총기의 35~50%를 점유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느슨한 총기규제 속에 매년 200만정의 권총을 포함한 각종 신제품 총기 450만정이 자유롭게 판매된다. 중고 총기 거래량도 200만정에 달한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일상화된 총격사건 뉴스에 “또 터졌구먼…”이라며 눈도 꿈쩍 않는다. 연방정부도, 의회도 전국 총기협회(NRA)의 막강한 로비에 휘둘려 속수무책이다. NRA는 수정헌법의 민간인 무장권리 조항을 전가의 보도로 모신다. 총에는 총으로 대해야 한단다. 다중 총격사건의 희생자들도 범인처럼 무장하면 화를 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맹랑하다.
매리스빌 사건은 워싱턴주 중간선거를 10일 앞두고 발생했다. 지난 중간선거에 총기문제와 관련된 중요한 주민발의인 2건이 상정되었었다. 하나는 총기규제를 대폭 강화하자는 I-594이고 다른 하나는 연방규정 이상 강화하지 말자는 I-591이다. I-594는 빌 게이츠 등 여러 갑부들이 지원했고 I-591은 NRA가 지원했다. 다행히도 I-594는 통과되고 I-591은 부결되었다. 많은 한인 유권자들도 지난 선거에서 I-594에 기표했다.
마리화나 합법화도, 동성결혼 합법화도 주민투표로 일궈냈다. 이들보다 총기규제가 우리는 물론 우리 자손들에게 더 중요하다. 워싱턴주에서 미전국 어느 곳보다 강력한 총기규제법이 시행되게 된 것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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